[한형철의 아리아 속 명작스토리]
버림받은 여성, 코르티잔의 처연한 아리아 '안녕, 지난날이여'
파리 신사의 일상과 관음증을 드러낸 명작 그림들

19세기에 들어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프랑스 등 유럽에는 부의 분산을 막고 자본주의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모순된 사회윤리가 널리 퍼집니다. 재력가 남자들이 후처를 두면 상속으로 인해 자본이 분산되므로, 결혼하는 대신 공개적으로 자랑해도 좋을 만큼 젊고 아름다우며 교양을 갖춘 여성을 후원하면서 같이 지내는 것이 묵인됩니다. 당시에 학식과 교양을 겸비한 일종의 매춘 여성이 바로 사교계의 꽃으로 알려진 ‘코르티잔’인데, 상당한 문학적 감수성과 예술적 소양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기생 황진이와 유사합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사회윤리를 비판한 문학 작품이 나타났는데, 뒤마 피스가 사교계의 여인과 헤어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동백 아가씨’(La Dame aux Carmelias)』가 연극으로도 큰 명성을 얻습니다. 당시에 미혼모와 사랑에 빠졌던 베르디도 주위의 반대에 직면했는데, 그가 파리에서 이 연극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오페라로 만든 것이 『라 트라비아타』입니다. 

사랑에 대한 편견이나 위선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고발함으로써,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의 결합을 정당화하려는 듯 베르디는 이 작품에 자신의 영혼과 모든 역량을 담았습니다. 당시 오페라의 주 관객이었던 부르주아들이 이 작품을 외면하여 초연 결과는 참담했으나, 점차 인기를 얻어 현재는 베르디의 가장 인기있는 오페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탈리아의 에바 메이(좌)와 비토리오 그리골로가 2008년 9월 30일 스위스 취리히 중앙 기차역에서 스위스 TV의 실황중계리에 벌어진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공연 중 각각 비올레타와 알프레도 역을 열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탈리아의 에바 메이(좌)와 비토리오 그리골로가 2008년 9월 30일 스위스 취리히 중앙 기차역에서 스위스 TV의 실황중계리에 벌어진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공연 중 각각 비올레타와 알프레도 역을 열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막이 오르면, 비올레타의 집에서 화려한 파티가 열리고 있습니다. 가난했지만 타고난 미모를 바탕으로 일찌감치 파리 사교계의 유명 코르티잔이 된 비올레타가 주최한 파티입니다. 파티에는 성공한 부르주아 집안의 아들이지만 경제관념도 없이 인맥 형성 등을 위해 파리의 사교계에서 지내는 알프레도도 참석합니다. 

알프레도는 비올레타와 유명한 2중창인 ‘축배의 노래’를 부르는데, ‘사랑의 잔’을 마시자는 알프레도에 대해 비올레타는 ‘이 순간을 즐기자’고 대꾸합니다. 알프레도는 은밀히 비올레타에게 지난 1년간 그녀를 사랑했다며 고백하는데, 비올레타는 혼란스럽고 심란합니다.

오랜 기간 동안 자기를 사랑해 왔다는 남자, 그 마음이 진심일까? 내게 아픔만 주었던 사랑이란 것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처지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사랑을 어떻게든 거부하려 몸부림치지만, 알프레도의 끈질긴 구애를 결국 받아들입니다.

파리 생활을 청산한 비올레타가 어렵사리 모은 재산으로 장만한 보금자리에서 알프레도와 행복하게 생활을 한 지 3개월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비올레타 앞에 알프레도를 찾아 헤매던 아버지 제르몽이 나타납니다.

혼맥을 통해 재산과 가정을 지키려는 제르몽은 자신의 딸 혼사가 오빠의 행실 때문에 깨지게 되었다며 아들과 헤어지라고 압박합니다. 남자의 마음은 믿을 것이 못 되며 그녀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면 결국은 애정도 끝날 것이라고 회유하지요.

그녀가 잠시 떠나 있겠다고 사정하고, 알프레도만이 자신에게 위로를 주기에 이별할 수 없다고 저항도 해보지만, 아버지의 완고한 뜻을 이길 수는 없었답니다. 결국 제르몽에게 딸처럼 안아 달라며 흐느낍니다. 

그녀가 떠나자 알프레도는 자신을 배신했다고 오해하여 파티장에 찾아가, 이제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녀를 매춘부를 대하듯 모욕합니다. 이런 비신사적인 행동에 분개한 비올레타의 후원 남작은 알프레도와 결투까지 벌입니다. 제르몽도 아들의 부끄러운 행위를 나무랍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폐병이 심해진 비올레타는 침대에 누워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르몽에게서 온 편지를 읽는데, 알프레도는 남작과 결투로 인해 외국에 피신했으며 아들과 함께 용서를 구하러 찾아오겠다는 내용입니다. 변함없는 사랑을 품고서도 희생하고 죽어야 하는 마음을 담아 아리아 ‘안녕, 지난날이여'를 처연하게 부르는데, 그녀를 위로해준 알프레도와의 사랑을 회상하는 아름다운 선율이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알프레도가 드디어 돌아오지만 비올레타는 이제 성당에 가려고 옷을 입을 힘도 없답니다. 그녀는 알프레도를 위로하며 그의 품에 쓰러지고, 울부짖는 그의 머리 위로 막이 내려옵니다.

19세기의 많은 화가들은 당시 사회에 널리 퍼진 매춘의 흔적을 그렸는데, 이 시기의 대표 작품은 마네의 1863년 작품인 ‘풀밭위의 점심식사’와 ‘올랭피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풀밭위의 점심식사’는 당시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었지요.

이 작품에 매춘부로 보이는 여인과 두 명의 신사가 등장하는데, 이런 장면은 당대 파리 신사들의 흔한 일상이었습니다.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은 마네는 당대 시민들의 평범하고 사실적인 삶의 모습을 찾아 그리고자 했습니다.

 

         ‘풀밭위의 점심식사’(1863), 에두아르 마네
         ‘풀밭위의 점심식사’(1863), 에두아르 마네

살롱 낙선전을 찾은 파리 관객들은 이 작품이 저속하다며 맹비난했습니다. 그들이 우산으로 전시작품을 훼손하려 할 정도로 불편해 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남자들과 함께 앉아 있는 누드 여인이 시선을 관객에게 고정시키고 있기 때문이지요.

전통적인 회화에서 누드화는 신화 속 여신일 경우만 용인되었으며, 여신은 관객을 빤히 쳐다보지는 않았습니다. 여체를 발가벗기고 누드를 그려 관객의 관음증을 충족시키면서도, 그것은 여신이고 신화 속 에피소드를 표현한 것이니까 괜찮다며 즐겼으니까요. 그런데 이 그림 속에서 나체 여인이 관람자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것이 당시의 파리 신사들에게 상당히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The Star’(1877), 에드가 드가
                       ‘The Star’(1877), 에드가 드가

한편 드가는 발레리나의 모습을 여러 작품 남겼는데, 'The star'는 발레리나가 독무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꽃장식이 있는 발레복에 조명이 비추고, 목의 검정 리본이 하늘거리는 순간을 포착했습니다. 

발레리나들의 발레 수업 등을 여럿 그린 드가는 낮은 계급 출신인 그녀들의 고달픈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림의 왼쪽 막 뒤에 서있는 얼굴이 가려진 신사는 그녀를 스폰하고 있기에 무대 뒤까지 올 수 있습니다. 발레리나가 공연을 마친 뒤에는 스폰서인 그 남자와 사적인 만남을 갖기도 했는데, 그런 일은 당시에 아주 흔했다고 합니다. 그 불편한 일상의 매춘을 드가는 감추지 않고 은근히 고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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