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철의 아리아 속 명작스토리]
욕정을 부추기는, 아름다운 '편지의 이중창'
창 너머의 세상을 향한 여인의 러브레터 명작

[아리아 속 명작스토리]는 문학, 역사, 신화와 미술 등 명작을 ‘오페라’와 재미있게 연결하며 감상하는 코너입니다. 딱딱한 이론이나 사조를 따지지 않고, 오페라를 보다가 떠오르는 소소한 모티브를 매개로 명작을 연결하고 소곤대듯 함께 감상합니다.

모짜르트가 1786년 초연한 『피가로의 결혼』은, 당시 점차 성장하던 시민계급이 쓰러져가는 앙시앙 레짐(구체제)의 권위에 대해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즘 말로 갑질을 하는 귀족에 대해 을인 하인이 역습하는 스토리이며, 자격 미달 귀족들의 부도덕과 무능을 통렬하게 비판한 오페라 부파(코믹한 오페라)입니다.

막이 오르기 전, 모짜르트의 오페라 중 가장 유명하면서도 톡톡 튀고 경쾌한 서곡을 연주합니다. 여자들을 희롱하다가 백작에게 들킨 시동 케루비노가 하녀 수잔나에게 사춘기 심정을 토로하고 있답니다. 그러던 중에 수잔나를 유혹하려 백작이 오자 숨었다가 들키는 등 소란이 벌어집니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케루비노가 백작부인에게까지 관심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백작이 홧김에 그를 부대에 보내 고생 좀 하라고 하지요. 케루비노가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며 휘젓고 다니는 것이 마뜩잖은 피가로는 그를 놀리며 행진곡풍의 아리아 ‘나비는 다시 날지 못하리’를 부릅니다. 

 

음악 천재 모짜르트(1756~1791)
음악 천재 모짜르트(1756~1791)

수잔나와 결혼준비로 들뜬 하인 피가로는 백작이 넓은 신방을 내주어 감사하고 있는데, 수잔나로부터 백작이 계속 유혹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피가로는 백작을 혼내 줄 묘안을 짜내겠다고 큰소리치지요. 그런데, 위기는 또 있답니다. 피가로가 마르첼리나에게 예전에 돈을 빌리면서, 돈을 못 갚으면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차용증서를 써주었거든요. 마르첼리나가 그 증서를 들이밀며, 피가로는 자기와 결혼을 해야 한다고 백작에게 호소합니다. 백작의 측근들은 모두 수잔나를 탐내는 백작의 편에 서고, 이에 반대하는 수잔나와 피가로, 백작부인이 합세하여 모두 7명이나 되는 가수가 서로 입장을 내세우지요. 

피가로가 누구와 결혼해야 하는지를 가리기 위한 판결은 피가로 팔에 있는 문신 때문에 싱겁게 끝이 납니다. 피가로는 예전에 마르첼리나가 잃어버린 아들이었던 거예요. 막장 드라마 같지 않은가요? 그렇지만 이런 황당한 상황을 모짜르트는 해학과 재치가 담긴 ‘6중창’을 통해, 모두에게 행복감과 웃음을 안겨주지요.

이제 피가로와 수잔나의 결혼이 확정되었는데도 백작이 그녀에게 계속 접근하자, 백작부인과 수잔나는 서로 옷을 바꿔 입고 백작을 골탕 먹이기로 하고 백작에게 줄 거짓 편지를 쓰며 주거니 받거니 ‘편지의 이중창’을 부릅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잘나가는 은행원 앤디(팀 로빈슨)는 아내와 그 정부를 살해한 혐의로 억울하게 종신형을 받고 주로 강력범들을 모아 놓은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그러다가 은행원의 특기를 살려 교도소장의 비자금까지 전담 관리하게 되는데, 우연히 LP판을 발견하고 작정하고 교도소 전역에 스피커를 켜지요. 아름다운 소프라노의 이중창은 더욱 더 크게 회색 빛 공간을 자유와 평화의 시간으로 꽉 채우며 감동을 줍니다. 높은 담과 창살로 가로막혀진 그 교도소에 울려 퍼진 노래가 바로 ‘편지의 이중창’이예요.

 

이 편지로 인해 백작은 수잔나를 유혹하는데 성공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백작은 사랑을 고백하며 속삭였던 (변장한) 수잔나가 자기 부인임을 알게 되지요. 백작과 부인은 사과와 용서를 나누고,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용서와 화해하며 기쁨의 앙상블을 부르며 막을 내린답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인연을 맺고 싸우거나 헤어지기도 하고, 또 다시 만나기도 하지요. 서로의 자유의지에 따라서 말이에요. 요즘 문제가 된 스토킹처럼 일방의 강요나 집착에 의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결국, 200여년 전의 시민의식을 보여준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음악적으로도 사상적으로도 모짜르트의 훌륭한 명작임이 분명하지요.

오페라에서 백작의 욕정을 꺾은 첫 단추는 그에게 쓴 거짓 편지입니다. 요즘은 편지보다는 문자나 카톡 등을 주로 애용하는 시대이지요. 그렇다 해도 목 빠지게 기다리다 받은 편지는 감성이 다르답니다. 거기에는 편지지와 봉투에서 남다른 상대의 필체를 느낄 수 있고, 꾹꾹 눌러 절절하게 쓴 사연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여기, 애틋한 사연과 여인의 욕망이 담긴 편지를 표현한 명작이 있습니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페르메이르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주로 그렸는데, 특히 여인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했습니다.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1657)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1657)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1657)을 보면, 왼쪽의 열린 창가에서 빛이 들어와 맞은 편 벽과 오른쪽 커튼을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좁은 방에서 열린 세상을 향한 여성의 욕망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 여인이 방에서 홀로 읽고 있는 편지는 연애편지가 틀림없어 보입니다. 다소 심란한 듯, 고민하는 모습이기도 하지요? 식탁보 위 과일상자에 있는 사과는 이브의 원죄를 상징한답니다. 

 

『러브레터』(1670)
『러브레터』(1670)

『러브레터』(1670)는 더 도발적입니다. 역시 밝은 빛이 왼쪽 창에서 인물을 내리비추는 장면입니다. 러브레터를 숨죽여 읽던 여인은 하녀에게 들키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지요. 하녀는 여인의 연애편지를 다 알고도 “걱정 마세요 마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요”라는 듯 짓궂은 표정이네요. 당시의 풍속화가 여인의 은밀한 욕망을 그리고 있는데, 이 그림에서는 여인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까지 느낄 수 있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