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철의 아리아 속 명작스토리]
어른 동화 <마술피리> 속 복수심과 사랑
노예무역의 참상을 그린 터너의 '노예선'
살기 위해 일하다가 죽는 일은 없어야

1791년 모차르트가 죽기 몇 개월 전에 초연한 <마술피리>는, 동화 같은 스토리 속에 삶과 죽음 그리고 빛과 그림자 등 동전의 양면을 품고 있는 인생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녹여낸 오페라입니다.

오페라 <마술피리>는 겉으로만 보면 밤의 여왕과 태양계의 제사장, 즉 어둠과 빛으로 양분된 것으로 보인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어둠의 세계와 태양의 세계가 뚜렷이 갈라져 대립하기보다는, 그 둘이 서로 엉키어 동시에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둘 사이에 연결 통로가 있지요. 이 작품은 밤의 여왕이 고음을 오르내리며 어려운 기교를 부리는 화려한 아리아와 함께 용과 뱀 그리고 사자들이 등장하는 동화 같은 장면 등 볼거리가 풍성한 작품입니다.

봉건시대의 모순을 타파하려고 일어난 프랑스대혁명 2년 뒤에 작곡된 이 오페라에는, 당시 지성인들이 평화로운 이상향을 건설하고자 비밀리에 조직하고 모차르트도 가입하였던 비밀결사 조직 ‘프리메이슨’의 실천 사상이 집약되었다고도 합니다. 

지상계의 왕 자라스트로는 악으로부터 성전을 지키겠다며 밤의 여왕의 딸 파미나를 납치 및 감금합니다. 밤의 여왕은 타미노 왕자에게 그녀를 구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어떠한 불행에서도 그를 도와줄 신비한 마술피리를 주면서요. 

'밤의 여왕의 아리아'(조수미)

하지만 공주를 구하러 간 타미노는 자라스트로에게 설득당해 오히려 그의 지침에 따라 고난의 시험을 거칩니다. 그러자 귀한 보물인 마술피리까지 주며 자라스트로를 무찌르기를 바랐던 밤의 여왕은 딸 파미나에게 자라스트로를 죽이라고 합니다.

이때 부르는 아리아가 그 유명한 ‘지옥의 복수심이 불타오른다’이지요. 최고의 기교를 발휘해 부르는 콜로라투라의 대표 아리아입니다. 밤의 여왕은 자라스트로를 죽이지 않으면 모녀의 인연을 끊겠다며 파미나를 압박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어 괴로워하지요. 

파미나는 자신에 대한 사랑 하나로 힘겨운 시험을 거치는 타미노와 함께 시련을 이겨내자고 다짐합니다. “마술피리는 아버지가 참나무로 번개와 천둥, 폭풍의 마법으로 만드신 것, 사랑이 나를 이끌고 나는 당신을 이끌어요.” 둘은 마지막 시험 단계인 불과 물의 시련까지 헤쳐 나갑니다. 

마침내 찬란한 태양계에서 시련을 이겨낸 타미노와 파미나가 손을 잡고 서자, 장엄한 합창이 두 사람의 승리를 축복하지요.

서로 의지하며 갖은 시련을 이겨내는 타미노 왕자와 파미나 공주 /Flicker
서로 의지하며 갖은 시련을 이겨내는 타미노 왕자와 파미나 공주 /Flicker

윤동주의 시 ‘길’에서 시인은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다고 했는데, 잃어버린 것을 찾아가는 삶을 뜻하면서도 어디서, 무엇을 잃는지도 모르고 하루하루를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오페라에서와 같이 빛과 어둠, 시작과 끝은 통한다는 삶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기도 합니다. 모차르트는 절대 선과 악은 없으며 빛과 그림자가 공존함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음악과 사상을 마지막 오페라에 온전히 담았지요.

‘프리메이슨 Freemason’은 잉글랜드 석공 Stonemason들의 길드 조직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조직이 계몽주의와 만나면서 18세기의 인권과 사회 개선을 추구한 엘리트 계층의 사교 조직이 되었지요. 현재 미국에 약 200만명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약 600만명의 회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위키피디아) 이 단체는 지혜와 박애 그리고 자선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고, 사회 및 인류애를 위한 사업을 펼치며 회원 상호 간의 친목을 도모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낭만주의 화가로 분류되는 터너(1775~1851)는 빛 묘사에 획기적인 재능을 보인 화가입니다. 프리메이슨의 사상을 예술로 승화시킨 모짜르트처럼 그 이념을 추구하려는 듯, 터너는 강렬한 색채로 ‘노예선’을 그립니다.

이 그림의 부제는 ‘태풍이 온다-죽은 자와 죽어가는 자를 배에서 버리는 노예주들’이랍니다. 화가의 격정이 그대로 표현되었지요. 빛과 그에 반응하는 대기의 묘사에 재능을 보인 그는 이 그림 또한 빛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빛을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빛 뒤에 가려진 당시 영국 사회의 어둠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지요. 

'노예선' (1840), 윌리엄 터너
'노예선' (1840), 윌리엄 터너

이 작품을 보면, 석양이 붉게 타오르는데 멀리서 폭풍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두운 파도가 배를 금방이라도 덮칠 듯하지요. 자세히 보면 검붉게 물든 핏빛 바다에 새들이 모여 있는데,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답니다. 바로 죽은 사람의 다리예요! 쇠사슬과 함께 떠오른 사람 손도 보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손!

‘노예선’은 1781년 발생한 사건을 다뤘는데요. 운송 과정에서 배변과 오물이 가득한 배 바닥에 한 달여간 방치된 수백명의 노예가 죽거나 병이 들었습니다. 이런 처참한 상황에서 선장은 1/3에 달하는 노예를 그림처럼 폭풍우가 몰려오는 바다에 버렸습니다.

노예가 실종되면 보험금을 받지만 병들거나 자연사한 노예는 지급 대상이 아니었기에, 오로지 보험금을 노리고 바다에 버린 것이지요. 인간의 탐욕이 드러난 노예무역의 참상을 접한 화가는 노예제 폐지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강렬한 색채가 빛나는 화폭에서 화가 터너의 기막힌 분노가 느껴지시나요! 

현대식 건축 현장에서 그리고 달콤한 빵을 만드는 공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살기 위해 일을 하다 죽어야 한다니··· 안타까운 일이지요. 권한 있는 분들의 책임 있는 조치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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