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가왕 조용필이 발표한 9년만의 신보,
그의 노래가 전하는 또 한번의 격려

11월 18일, 9년만에 새로운 음반을 발표한 조용필 /사진제공=YPC
11월 18일, 9년만에 새로운 음반을 발표한 조용필 /사진제공=YPC

퇴근길 버스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조용필 신곡이 몇 분 전에 공개됐다는 뉴스를 봤다. '로드 투 투엔티-프렐류드 원(Road to 20-Prelude 1)', 정규 20집 앨범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중 2곡을 서곡처럼 미리 선보였다는 소식에 냉큼 음원 사이트로 들어가 플레이를 눌렀다.

이전 앨범이 9년전에 발표한『Hello』였으니 오랜만의 신곡 발표다. 그때도 ‘바운스(BOUNCE)’를 들으며 예상 외의 젊은 사운드에 입을 벌리고 감탄했었는데, 과연 이번에는 어떤 음악을 선보일지 기대가 됐다. 

먼저 ‘찰나’부터 들어봤다. 73세의 아티스트가 표현하는 ‘아주 짧고 빠른 시간’은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했다(불교에서는 인생을 찰나라고도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바뀌는 운명적인 순간을 세련된 팝 록 분위기로 풀어냈는데, 흥겨운 사운드와 함께 뻗어내는 탄탄한 보이스에 몸이 저절로 움직여졌다. '반짝이는 너, 흐트러진 나, 환상적인 흐름이야' 중간 중간에 나오는 이 유머 있는 가사를 따라 부르면서 말이다. 

‘찰나’가 변하고 있는 현재를 로맨스에 빗대어 유쾌한 톤으로 섬세하게 전한다면, ‘세렝게티처럼’은 선배가 후배에게 큰 팔 벌려 위로하고 있는 듯 조금 더 에너지가 실려있다.

이 노래는 조용필이 1999년 탄자니아 정부 초청으로 세렝게티를 찾은 경험을 토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세렝게티는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산 서쪽에 위치한 국립공원이다. 사자, 코끼리, 들소 등 300만여 마리의 대형 포유류들이 살고 있는 이곳은 세계 최대의 평원지대로, 들어서는 순간 야생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곳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감동을 담아 그는 '사람들 틈으로 구겨진 어깨를 두려움이 없이 열어’보고, ‘여기 펼쳐진 세렝게티처럼, 넓은 세상에 꿈을 던지고, 그곳을 향해서 뛰어가보자’고 우리를 격려한다.

 

신곡 '세렝게티처럼'에는 세렝게티 같은 넓은 세상을 향해 달려가자고 격려하는 내용이 담겼다. /게티이미지뱅크
신곡 '세렝게티처럼'에는 세렝게티 같은 넓은 세상을 향해 달려가자고 격려하는 내용이 담겼다. /게티이미지뱅크

조용필을 탄자니아로 이끌게 한 노래는 짐작하다시피 그가 1985년에 발표한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다. 킬리만자로에서 고독하게 산을 오르다 결국 설산 위에서 죽고 마는 표범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쓴 양인자 작사의 곡인데, 꿈을 향해 쫓아가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젊은이의 모습을 신산하게 표현해 이후로도 여러 드라마에서 이야기의 소재로 사용되곤 했다.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가 아니라 굶어서 얼어 죽더라도 산정 높이 올라가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되겠다는 다짐. 국내 최고 가수로 평가받고 있는 30대 중반 조용필의 고백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제 73세가 되어 ‘눈 앞의 조그만 것들로 가끔 잊어버릴지’ 모를 ‘맨 처음의 꿈’과 ‘맨 처음의 우리’를 생각하며 세렝게티처럼 넓은 세상으로 뛰어나가자고 다독인다. 

얼마나 멋진 스토리텔링인가! 이 격려가 더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조용필의 평소 태도 때문이다.  조용필은 음악 작업 때 늘 악보를 손수 그리고, 녹음을 할 때도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부르는 ‘원 테이크’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이번에 발표한 두 곡의 작사가로 참여한 김이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음절, 한 마디의 비트도 가장 완벽하게 부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며 그와의 작업에서 얻은 감동을 전했다.

60대에 발표한 앨범『Hello』에서는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사용했고, 그리고 이번에 발표한 두 곡에는 록 사운드 가득하다. 이렇게 그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당대의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음악적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 그의 모습이 가요계 관계자와 팬들을 감동시키고, 가왕으로 불리게 한다.

그의 공연을 다녀온 지인이 전한 말이 기억이 난다. 무대 위에서 선보이는 모든 곡을 처음 발표했던 당시의 원곡 느낌으로 똑같이 부르는 성실함이 놀라웠다는, 그래서 자신도 중학교 시절 오빠를 외치던 감정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내 청춘에 건배’. 오랜만에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들어봐야겠다. 나의 청춘도 따뜻한 눈으로 돌아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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