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나이먹음’에 따라 잊게 되는
여자로서의 감각 다시 찾기
식구들이 일어나지 않은 주말 아침에는 식사를 준비하며 TV를 틀어 놓는다. 보통 그 시간대에는 건강 관련 토크쇼나 다큐멘터리들이 방영되는데 그날 역시 갱년기 여성의 건강을 다룬 프로그램(JTBC 다큐플러스)이 방송 중이었다.
“이제 여자가 아니고, 노인이 되는구나.” 한 출연자의 말이 귀에 꽂혔다. “거울을 보면 쭈글쭈글해지고 살쪄서 얼굴도 펑퍼짐해지고 목도 막 늘어지고 하는데 그것도 속상한데다 몸까지 잠도 못 자고 아프고 하니까”라며 자연스레 꺼낸 이야기다.
‘여자’와 ‘노인’이라. 갑자기 나 역시 ‘여자’라는 감각을 느껴본 게 너무 오래 전이라는 걸 알게 됐다. 여자인 나의 몸을 오롯이 느끼면서 몸을 통해 얻는 기분 좋은 긴장감과 생기를 경험한 시간 말이다.
나만은 아닐 거다. 자궁 등 여성 생식기나 여성 호르몬 문제로 고생을 한(하고 있는) 선후배 이야기는 늘상 듣지만, 근래 들어 내 주변 누구와도 여자로서 즐거움에 관해 수다를 떨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마침 몇 주 전 메일로 받았던 개봉 영화 보도자료가 떠올랐다. “정말 살아있는 느낌이었어, 그 어느 때보다”라고 적힌 포스터에는 만족감으로 가득 찬 표정을 한 60대 여성의 모습이 실려 있었다.
영화의 제목은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번역하자면 ‘행운을 빌어, 리오 그랜드’ 정도인데, 은퇴한 60대 여교사 낸시가 리오 그랜드라는 이름의 섹스 서비스 종사자를 통해 자신의 몸을 긍정한 후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는 여정을 담고 있다(영화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엠마 톰슨이 주인공이라 호기심을 갖고 있던 영화였는데, 이 참에 봐야겠다 싶었다.
수십 년간 결혼생활을 이어왔던 남편과의 관계에서 단 한 번도 오르가슴을 느껴본 적 없는 낸시는 남편과의 사별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열정과 호기심을 마주하려 한다. 오랜 망설임 끝에 리오라는 청년을 예약을 통해 만나지만, 막상 함께한 자리에서는 자신의 선택과 나이든 모습이 그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걱정하며 뒤로 물러선다.
그렇게 이어지는 4번의 만남. 만남의 횟수만큼 낸시는 자신의 현재 모습과 자신이 원하는 것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아마 영화를 관람한 모두가 그랬겠지만) 낸시가 리오에게 행운을 기원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 거울 앞에 나체로 서서 자신을 마주한 신이었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지루하게 생각하고 현재의 모습에 자신 없어 했던 그녀가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자신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에너지 가득한 긍정의 미소를 띄우면서 말이다! 낸시가 경험할 앞으로의 시간이 주체적으로 즐겁게 변할 것이라는 예상을 자연스레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여성들에게는 자신의 몸을 좋아할 수 없는 이유가 매일 새롭게 주입되잖아요. 거짓된 사회적 미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는 노력은 결국 시간, 에너지, 돈, 열정, 호기심 등 모든 것을 낭비하는 건데 말이죠. 이 낭비를 이젠 우리 모두 멈췄으면 좋겠어요.” 엠마 톰슨이 이 영화를 찍은 후 허프포스트와 나눈 인터뷰에서 전한 이야기다.
물론 영화 속 성적 교류의 방식에 관해서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낸시가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 후 매력적인 미소와 긍정의 에너지를 갖게된 것을 떠올리며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나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의 여성성을 고민없이 규정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중년, 노년, 갱년기가 되었다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면 어느 순간 마음 속에 남아있는 열정과 아름다움의 지향을 잊을 수 있다. 나 역시 그 안에서 부족하고 달라진 점만을 바라보며 지내온 것은 아닌지, 그러다 보니 지금의 내가 가질 수 있는 - 젊었을 때보다 조급하지 않게 나를 바라볼 수 있고, 편안하게 나의 장점을 끄집어 낼 수 있는 - 여유와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봤다.
‘갱년기 여성인 여자’, 앞으로는 이렇게 한 단어를 더 넣어 나를 마주해야겠다.
관련기사
- [김현주 더봄] 갱년기 엄마의 육아 돌아보기
- [김현주 더봄] 노인을 위한 디지털은 없다? 있다?
- [김현주 더봄] 두 번째 일을 찾는 정석
- [김현주 더봄] 쉰, 여자가 내 몸을 사랑해줘야 할 때
- [김현주 더봄] 서두르지 않아야 보이는 것들
- [김현주 더봄] 뭔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 [김현주 더봄] 콘텐츠 만드는 일이 역시 좋아요!
- [김현주 더봄] 초로의 록 밴드가 전한 열망에 움직이다
- [김현주 더봄] 가을, 여행하기 딱 좋은 때다!
- [김현주 더봄] 지금의 팀장과 그때의 팀장은 다를까?
- [김현주 더봄] 마지막 순간, 생각해봤나요?
- [김현주 더봄] 평생교육, 재교육을 위한 카드 아세요?
- [김현주 더봄] 조용필의 노래를 들으며, 나의 인생에도 건배!
- [김현주 더봄] 아이에게 좋은 우산이 되고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