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존엄한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마음

살아간다는 건 매 순간 처음 만나는 길을 걷는 것이다. 누구든 언제 막다른 곳에 다다를지 모른다. /사진=Iam Os by unsplash
살아간다는 건 매 순간 처음 만나는 길을 걷는 것이다. 누구든 언제 막다른 곳에 다다를지 모른다. /사진=Iam Os by unsplash

“미래(未來)는 없다. 말 그대로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래가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건 현재가 있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니까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한 싸움 따위를 하느라 현재를 살지 못한다면 미래를 살지 못하는 것이다. 방점을 미래에 찍으면 결코 미래에 도달할 수 없다.”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홍영아 작가가 출간한 책 『그렇게 죽지 않는다』(어떤 책)를 읽다가 만난 문장이다.

작가는 방송 프로그램을 준비하다가 우리나라 말기 암 환자들이 소생 가능성이 없는 치료를 받으며 다른 나라보다 3배 많은 항암제를 사용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쓴 의료비보다 2배 많은 돈을 죽기 전 한 달 전에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환자와 가족이 최선을 다해 치료에 임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방송과는 다른, 죽음을 앞둔 실제 상황에 대해 다시 한번 써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누구에게나 벌어지지만 직전에도 직후에도 실감 나지 않을 죽음’을 실제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전해준다. 책 속에 실린 사연은 언제든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책을 덮으며 나에게 혹은 내 가족에게 그 순간이 오면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해 봤다. 받아들이지 않고(못하고), 포기하지 않으며(못하며),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하게 될까. 아니면 내가 맞닥뜨린 상황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남아있는 시간의 의미를 채워갈까.

결정을 해야 하는 마지막 순간에 나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가늠하다 보니 어느 순간 등이 꼿꼿이 세워졌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종종 ‘나는 절대 연명치료 하지 않을 테니, 그리 알아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무리 평소에 그렇게 말씀하셨더라도 엄마의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그 말씀을 떠올리며 ‘그만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가끔은 나의 마지막 순간도 생각한다. 천식으로 호흡이 곤란해져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며칠간 호흡기를 입에 대고 누워 있으면서 살아있다는 건 숨을 쉬는 것임을 제대로 느꼈었다. 그런데도 그때는 마지막 순간에 대해 구체적으로 떠올리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병(病)과 사(死)를 자주 접하는 50대가 되다 보니 그 순간이 되면 나는 어떤 마음일지 구체적으로 그려보게 된다.

두렵고, 무섭고, 안타깝고, 슬프고, 화가 나고, 후회될 텐데. 남아 있는 가족, 특히 아이가 눈에 밟힐 텐데.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치료하겠다’라는 마음이 들겠어, 라고 웅얼거리곤 한다.       

마침 지난 16일 관련된 기사를 읽었다. 국립 연명의료 관리기관에서 발표한 자료였는데, 2023년 9월 기준으로 국내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한 사람이 146만 474명이라는 내용이었다.

사전연명치료 의향서는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만을 연장하는 의료행위 즉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공식화하는 서류이다. 

2018년 2월 ‘존엄사법’이라고도 불리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고 이후 19세 이상인 누구라도 미래에 자신이 의사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를 대비해 미리 자신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에 대한 의사를 밝힐 수 있게 됐다.

‘인간으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위와 가치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를 존엄사라고 하는데, 이 법이 제정된 후 존엄사와 삶의 자기 결정권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가 중요하다는 건 현재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존엄한 삶을 만들어 낼 수 있다. /  사진=Joshua Hoehne by unsplash
현재가 중요하다는 건 현재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존엄한 삶을 만들어 낼 수 있다. / 사진=Joshua Hoehne by unsplash

한 종합병원의 2021년 연구에 따르면 연명의료 사전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가족에 미칠 영향’과 ‘존재 상실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고 한다. 아마 나 역시 이 두 가지 때문에 연명치료를 진행하겠다고 할 수도, 받지 않겠다고 마음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당연히’ 다가오는 죽음에 관해 조금 더 자주 응시해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그 순간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 어렵겠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출생부터 죽음까지를 하나의 길로 본다면 누구든 길의 경로를 예측하고 도착시간을 가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길을 따라 걸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길 양옆으로 펼쳐지는 풍광과 바람, 매 순간 달라지는 마음과 그 의미를 차곡차곡 느끼며 걸어가는 것이다. 다시 지금이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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