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고민과 의지를 담은 가사에 공감하며
나의 일상에도 담아보는 비트(beat)

내 나이 21/ And I got a lot of problem to solve / 길 잃은 청춘이지만 / 그게 내 길이고 / 우린 반의 반쪽짜리 육체를 다듬어 / 당당히 날 몰아붙인 위선과 거짓 다 깔고 기립해 / 막연히 끄덕이고 조아리긴 죽기보다 싫으니 / I don't give a about what u said
요즘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힙합이 가득하다. 지금도 지난주 <쇼미더머니 11>에서 이영지가 발표한 음원 ‘NOT SORRY’를 듣고 있다. 스물한살 청년이 세상에 던지는 이야기에 ‘라떼’는 어땠는지 돌이켜보면서 말이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는 어떤 마음으로 살았었는지 견주면서 힙합을 듣는 게 요즘 리스너의 태도는 아니겠지만 어쩌겠나, 그렇게 들어야 더 와닿는 것을.
지난주에도 딸아이와 이 프로그램을 함께 시청했다. “한동안 힙합을 안 들어 잊고 있었는데, 힙합 m.c.들이야말로 치열하게 고민하며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젊은 시인들 같아”라는 내 말에 “엄마, 누가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런 식으로 정리를 해, 교과서도 아니고. 그냥 듣는 거지, 귀에 꽂히는 음악이 있으면 다시 찾아 듣고.”
16살 딸아이는 모든 상황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어떤 일이든 가치를 평가하는 어른들의 습관처럼 느꼈을 지도 모른다. 하긴 이영지도 ‘막연히 끄덕이고 조아리긴 죽기보다 싫다’고 말하지 않았나.
<고등래퍼 3>의 우승자로 데뷔한 후 지금은 Z 세대의 아이콘이 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그녀가 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 시청자들은 ‘이영지가 어떤 랩을 보여줄까’ 관심도 있었지만, ‘굳이 왜 이 프로그램까지 나온 거야’하는 의구심도 보였다.
힙합 래퍼로 자신이 ‘진짜 불타는 게 뭔지 확인하고 싶어서 나왔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자신의 출연이 단지 다른 래퍼들의 자리를 뺏고 있는 일인 건지, 자기 확신이 없어진다며 눈물을 보였던 그녀는 그런 자신의 현재 마음을 ‘미안해, 하나도 하나도 아무것도 미안하지가 않아서, 그저 나답게 살아가고픈 것뿐’이라 노래한다.
솔직한 화법과 꾸밈없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이영지의 콘텐츠들을 좋아했는데, 그녀 역시 이 세대의 다른 친구들처럼 세상의 시선에 부딪히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이루려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게 드라마처럼 보이니 프로그램에 몰입을 안 할 수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드라마를 가진다. 각자의 상황 안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며 화해하고 성장한다. 어떤 시기는 로맨스물이 되기도 하고, 어떤 시기는 가족 드라마가 펼쳐진다.
랩은 이렇게 자신이 맞닥뜨린 상황을 섬세하게 들여다본 후 고백하듯, 독백하듯, 때론 외치듯 가사가 되어 등장한다. 20대의 래퍼가 많이 출연한 프로그램이니 외면하거나 순응하지 않고 끝까지 부딪쳐 보겠다는 식의 가사가 많은 건 그래서일 거다.
이영지가 ‘only me myself and I’라고 노래 부를 때, 저스디스가 ‘니가 나의 모든 걸 뺏어갔어도, 모두가 내 꿈에 바리케이드를 쳐도, 내가 나의 기름 더 불을 붙여줘, 빛이 나는 My Way’(같은 프로그램에서 팀 음원 미션으로 발표된 ‘마이웨이’)라며 팔을 높이 흔들 때 사람들은 그들의 드라마를 짐작하고, 자신의 인생을 곡에 대입시키며 공감한다.
힙합을 찾아 들으며 현재의 나의 드라마를 되짚어 본다. 어느 때부터인지 하고 싶거나 이루고 싶은 그림이 없는 상태에서 시간에 맞춰 흘러가듯 생활하고 있다. ‘누구나 다 그런 거지’, ‘의미 없어’, ‘몸이나 챙기며 지내야겠네’라는 말을 되뇌이며 말이다.
오십 대에 욕망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끄집어내며, 토로하는 일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한다. 그럼에도 플레이리스트에 힙합이 점점 쌓여가는 건 가사에 인생을 실어 노래하는 젊은 친구들을 응원하는 것은 물론, 나 역시도 다시 한번 뜨겁게 인생의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서일 게다. 고민하고 움직이고 ‘빛이 나는 마이웨이’를 다시 만나보고 싶은 마음!
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비트(Beat)는 어떤 걸로 시작해 볼지, 플레이리스트를 열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