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심의 일본 열도 발도장 찍기] (27/번외편)
'동궁과 월지'는 신라의 나이트클럽?!
첨성대, 국립경주박물관이 공짜라고?!
경주 여름 여행은 땀띠와의 전쟁
6월 말에 떠나는 경주 여행. 돌아오는 반응은 두 가지였다. '수학여행 때 갔었지'와 '더워서 힘들겠다'. 나는 여고 때 수학여행을 가지 않아서 처음 가는 길이고, 더위보다는 가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경주에 관한 관심은 일본의 교토(京都)를 찾으면서 시작되었다. 일본의 고도(古都)가 교토라면 한국의 고도는 경주 아닌가. 교과서로만 접해 온 '경주'는 막연하지만, 마음이 가는 곳이었다. 그 막연함을 해소하고 싶었다. 일본에서 살아온 날이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날보다 길어졌다. 어쩌면 한국인으로서 루트를 재확인하는 여행일지도 몰랐다.

2박 3일의 일정이다. 이번 여행에서 꼭 가야 할 곳은 불국사와 석굴암이다. 이어서 첨성대, 월정교, 동궁과 월지(안압지), 시간이 남으면 국립경주박물관까지.
서울역에서 KTX에 몸을 실으니 광명, 아산, 대전, 동대구를 지나 약 2시간 후 경주역에 도착했다. 택시로 ‘한옥 펜션 한옥 1번가’로 향했다. 한 번쯤 한옥에서 묵어보고 싶었기에 한옥을 택했다. 방에 짐을 옮겨 놓은 후 바로 밖으로 나갔다. 교촌마을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숙소에서 나와 10여 분. 다리가 보여서 건넜더니 교촌마을 입구다. 한옥 카페가 보이길래 목도 축일 겸 들어갔다. 더웠지만 따뜻한 대추차를 주문하고 강이 보이는 테라스로 나갔다. 바람이 좋아서 무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주변을 살피다 보니 왼쪽에 ‘월정교’로 보이는 건물이 보였다. 예고도 없이 등장하는 유적과의 대면에 기분이 좋아진다. 카페 주인에게 확인했더니 월정교란다. 뜨거운 대추차를 식히며 월정교와 강가 풍경을 즐기는 호강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월정교의 야경이 기대된다.

교촌마을 최부자네
카페를 나와 교촌마을로 향했다. 최부자네 집에서는 어느 친절한 분의 설명을 들으며 알찬 시간을 보냈다. 경주 향교에서는 서양인 관광객을 이끄는 서양인 할아버지의 열띤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걷다 보니 훅하고 나타난 첨성대
향교를 나와 관광지로 향하는 듯한 젊은 여성 둘의 뒤를 따라갔다. 5분 정도 걸었을 때 저 멀리 들판 너머에 첨성대가 두둥! 또 이렇게 훅하고 나타나네.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저 걷다 보면 문화재와 유적을 만나게 되는 게 경주인가? 이 동네 어떻게 된 거지? 이 의문은 다음날 택시 운전사의 말로 납득하게 된다. 경주는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온다고. 경주 사람들에게 ‘신라’는 국사책에서 보는 역사 속의 나라가 아니라 ‘일상’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첨성대는 입장이 무료였다. 세계에 현존하는 천문대 중에 가장 오래된 것에 속한다는데 ‘공짜’라니.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로 잘 보였으나, 교과서나 사진으로만 봐 오던 첨성대다.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고 싶어지는 것은 인지상정. 학생들을 인솔하는 가이드의 말을 엿들으면서 한 바퀴 빙 돌아보았다. 이곳도 야경이 기대된다.

신라의 나이트클럽 '동궁과 월지'
다음은 ‘경주 동궁과 월지’다. 이른 저녁을 먹은 후 해가 떨어지기 전에 들어가서 야경까지 보고 나왔다.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명당 자리인 듯하여 이동했다. 이제나저제나 불이 켜지는 순간을 기다렸다. 드디어 불이 들어오고 어둠이 짙어가는 만큼 야경은 빛을 발했다. 장소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어댔다.

다음날 석굴암으로 데려다준 택시 운전사가 “신라의 나이트클럽 아닌교”라는 말에 무릎을 쳤다. 통일 신라의 영빈관 아닌가. 풍악을 울리며 국빈을 맞이하고 대접했을 것이다. 오늘 내가 본 것 같은 화려한 야경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둥그런 달이 뜬 밤, 등불을 피운 연못가는 환상적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동궁과 월지’를 나와 첨성대와 월정교의 야경을 만끽한 후, 새까맣게 어두운 길을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몇 년 만에 걸어보는 새까만 길인가. 무서웠다. 스마트폰 라이트를 켜고 부지런히 걸었다. 숙소가 동네 입구에서 가까웠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첫날 밤은 땀띠 때문에 가려워서 혼이 났다. 바람이 좋다고는 하나 무더운 날씨에 뜨거운 대추차를 마시고 다녔으니 속에서 열이 났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찬물을 끼얹어 식혔으면 좀 나았을 것을, 벅벅 긁어대며 뒤척인 내가 한심할 뿐이다.
문무왕의 화장터, 경주능지탑지
두 번째 날 방문한 석굴암과 불국사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버스로도 갈 수 있었으나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것도 도중에 갈아타는 것도 번거로울 듯하여 택시를 불렀다. 불국사까지 가자고 했더니 석굴암부터 보는 게 좋다고 하여 그리했다.
가는 동안에 신라 문무왕의 화장터가 있다고 해서 잠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경주능지탑지’다. 신라 시대에 화장이라니, 조금 혼란스러웠으나 문무왕이 지시했다는 안내판 설명문을 보고 납득했다.

눈으로 찍고 또 찍은 석굴암
주차장에서 한참을 걷다 보니 아담한 절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암자다. 안으로 들어가니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유리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정면에 서서 안을 들여다본 순간, 탄성이 새어 나왔다. 석가여래좌상이다. 실내 분위기가 교과서에서 봤던 사진과 달랐지만, 석가여래좌상의 얼굴만은 눈에 익었다.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오래오래 쪼그리고 앉아 눈에 담았다. 한 차례 보고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서 또 한참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으면 얼굴을 떠올릴 수 있을 때까지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선물 가게에서 동으로 만든 종을 하나 샀다. 가장 마음에 드는 소리였다. 나에게는 오래오래 ‘경주의 소리’가 될 것이다.

시간을 잊게 만든 불국사
석굴암을 나와 버스를 타고 불국사로 향했다. 버스로 20분 정도의 거리다. 불국사 대웅전 안에 한참 있었다. 편안했다. 천정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관광객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바라보기도 하고 부처님께 절하는 모습도 바라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편안하다. ‘촬영금지’라고 쓰여 있어서 물어봤더니 법당 밖에서 찍는 것은 괜찮다고 하여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국립경주박물관-'천년의 미소'와의 대면
불국사를 나와 버스를 타고 국립경주박물관으로 갔다. 수많은 유물에 놀라고 아름다운 ‘천년의 미소’에 탄성이 새어 나왔다. 닮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는 미소였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미소가 번진다.
숙소로 돌아오자 오다 말다 하던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마에서 흐르는 빗방울이 디딤돌로 떨어지는 소리는 최고였다. 베란다 지붕을 때리는 소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경주의 마지막 밤은 느긋하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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