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심의 일본 열도 발도장 찍기](28회)
다래나무 덩굴로 만든 흔들 다리가 문화재?!
교토에서 쫓겨난 무사를 위로한 것은 폭포?!
여행 상품을 검색하다 보니 ‘국가 지정 중요 유형 민속 문화재’로 지정된 다래나무 덩굴로 만든 다리를 보러 가는 투어가 눈에 띄었다. 대체 다리가 얼마나 훌륭하길래 문화재로 지정되지? 라는 호기심이 일었다.
사진에는 울창한 숲속 계곡에 살짝 곡선을 그리며 걸려있는 다리가 보였다. 우선 그 경치가 아름다웠다. 게다가 지금까지 가 본 적이 없는 도쿠시마현(徳島県)에 있다지 않는가. ‘일본열도 발도장 찍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나로서는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예약했다.

일본 3대 비경 다리로 꼽히는 ‘이야노 가즈라 바시(祖谷のかずら橋)’는 미요시 시(三好市)에 있다. 성글게 짜인 다리 사이로 계곡 바닥이 보이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릴 것이 틀림없는 다리를 건널 자신은 없었지만, 만에 하나 못 건너더라도 그 경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우리라 생각했다. 흔들다리 가까운 곳에 있다는 ‘비와 폭포(琵琶の滝/비와노 타키)’라는 곳도 관심이 갔다.
‘이야노 가즈라 바시’의 유래에 대해서는 홍법대사가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설과 전쟁에서 몰려 도망 온 헤이케 사람들이 적이 쳐들어왔을 때 쉽게 잘라낼 수 있는 다래나무 덩굴을 이용해 다리를 만들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어느 설이 맞는지는 접어두고라도 산야에 자생하는 다래나무(시라구치 가즈라/シラクチカズラ) 덩굴을 꼬아서 만든 다리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절실한 ‘길’이었을 것임은 상상하고도 남는다.
다리 길이 45m, 폭 2m, 계곡 수면에서 14m 정도 떨어져 있다. 지금도 3년에 한 번씩 덩굴을 교체하고 있다고 한다. 2024년 1월에서 2월에 걸쳐 다리 덩굴 교체 공사를 했다고 한다.

잔뜩 흐린 하늘이 불안하다. 구름이 내려앉은 산을 바라보며 부디 다리를 건널 때까지 비가 오지 않기를 빌었다.
‘가즈라 다리’까지 가는 길은 좁고 굴곡이 심하기는 해도 정비가 잘 되어 있어서 큰 문제는 없다.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에 있는 오솔길을 걸어가다 보니 큰 나무 사이로 녹색 지붕이 보였다. 드디어 ‘가즈라 다리’ 입구인 듯하다. 계단을 내려가니 입장권을 파는 접수처였다. 투어 안내원이 일행의 티켓을 사는 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생각했다. 과연 내가 건널 수 있을지, 나는 저 다리를 건너고 싶은지, 안 건넜을 때 후회하지 않을지.

다래나무 덩굴로 만든 흔들다리, 옛날에는 이곳 심산계곡을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을 것이다. 이 다리가 생겼을 때 마을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어떤 심정으로 다리를 유지했을까. 다리를 보수할 때만큼은 마을 사람들이 똘똘 뭉쳤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살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꼼꼼히 신중히 다리를 점검하고 보수했을 것이다. 그 중요한 생활 수단이었던 덩굴 다리가 지금은 '중요 유형 민속 문화재'로 지정되어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계곡 바닥이 보일 것이라는 것은 각오하고 있었으나 발판 사이로 보이는 강바닥에는 등골이 오싹했다. 건널까 말까. 주저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모처럼 왔는데 당연히 건너겠다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투어 일행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 또한 결심을 굳혔다. 먼저 출발한 사람들의 기쁨의 환호인지 무서움의 비명인지 모를 소리가 들려왔다. 다리 중간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다. 참 용감한 사람들이네.
조금이라도 덜 흔들릴 때 건너려고 마지막까지 남았다. 일행 중에 마지막인 내가 건너려는 것을 보고 안내원이 사진을 찍어 주겠단다. 모처럼 왔는데 찍으라고. “아아… 네 부탁드릴게요…” 엉덩이 위쪽이 오싹거리기 시작했지만, 기념사진을 위해 조심조심 뒤돌아서서 스마트폰을 건네고 섰다. 난간 손잡이를 꽈악 붙잡고 찰칵! 나 홀로 여행 중에 얻은 소중한 기념사진이다.

자, 기념사진도 찍었으니 출발. 흔들다리를 건너서 왼쪽으로 꺾어서 내려가면 '비와 폭포'가 있을 것이다. 폭포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건너자! 발판이 젖어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미끄러진다고 해도 떨어질 위험은 없지만 그 공포를 어찌 감당하겠는가. 가능한 한 흔들리지 않게, 손에 힘을 꽉 주고 엉덩이를 뒤로 살짝 뺀다. 엉거주춤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 발걸음을 뗐을 때의 안도감이라니. 후우~ 깊은숨을 내쉬고 건너온 다리를 뒤돌아보았다. 엉거주춤 다리를 건너오는 어르신들이 보였다. 무서운 시간을 끝낸 자가 그 시간 속에 있는 자를 응원한다.
“간밧떼구다사이(힘내세요.)”
“간바리마스! (열심히 건너볼게요!)”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꺾었다. 이제 '비와 폭포(琵琶の滝)'를 보러 갈 차례다. 사진으로 본 폭포는 아름다운 에메랄드빛이었다. 과연 오늘의 물색은 어떨까. 길가에 나 있는 풀꽃들을 바라보며 촉촉한 오솔길 산책을 즐겼다.
‘비와 폭포’에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헤이안(平安) 시대 말기, 原(미나모토) 씨와 平(타이라노) 씨의 전투-原平(겐페이)의 전투-에서 패한 平씨가 도쿠시마현 이야(祖谷) 계곡에 도망 와서 정착했는데, 그들이 교토의 생활을 그리워하며 폭포에 모여 비파를 연주하며 서로 위로했었다고.
드디어 폭포!!

낙차 50m의 폭포다. 비가 오는 날씨의 보너스라고나 할까. 물양이 많아서 볼만했다. 하얗게 부서지며 떨어지는 폭포와 에메랄드빛 연못, 그리고 물 위에 떠 있는 가을 낙엽. 작은 폭포였지만 좀처럼 발을 뗄 수 없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서 있었다. 마음에 드는 풍경 앞에서 좀처럼 발을 떼지 못하는 것은 나 홀로 여행하며 생긴 버릇이다. ‘나와 너’의 시간이 흐른다.

아차, 집합 시간이 임박한다. 이제 돌아가야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흔들 다리 '이야 가즈라 바시'의 사진을 찍었다. 언제 다시 와볼 것인가. 다시 올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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