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심의 일본 열도 발도장 찍기](37)
일본의 104대 총리를 배출한 나라현
세계문화유산 도다이지(東大寺) 대불
중생의 삼생을 구제한다는 자오곤겐

목조건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다이지(東大寺). 에도시대에 재건축된 건물이다. /사진=양은심
목조건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다이지(東大寺). 에도시대에 재건축된 건물이다. /사진=양은심

2025년 10월 21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씨가 일본의 104대 총리로 취임했다. 1885년 내각제도가 시작된 이래 실로 130년 만에 탄생한 여성 총리다. 나라현 출신이란다.

문득 3년 전 가을에 방문했던 나라현의 풍경이 떠올랐다. 선명히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도다이지(東大寺)의 대불과 나라 공원의 사슴들, 긴푸센지(金峯山寺) 자오도(蔵王堂)에 모셔져 있는 세 좌(座)의 자오곤겐(蔵王権現) 상(像)이다.

한참을 서서 올려다보았던 도다이지의 대불 /사진=양은심
한참을 서서 올려다보았던 도다이지의 대불 /사진=양은심

도다이지의 대불은 사진으로 보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대좌에서 머리까지의 길이가 약 21m에 달한다. 키가 150cm 정도인 나의 눈에는 이층집보다 더 높지 싶었다. 그런 큰 불상을 모시는 도다이지 본당 건물은 또 어찌나 거대하던지. 대불을 올려다보며 벌어진 입이 좀처럼 닫히지 않았다.

압도적이었던 절 기둥들. 이 또한 내 눈길을 끌었다. /사진=양은심
압도적이었던 절 기둥들. 이 또한 내 눈길을 끌었다. /사진=양은심

도다이지는 나라 시대(A.D710~794)에 창건된 이래 세 번 수리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에도(江戸)시대에 다시 지은 것이란다. 넓이는 원래 크기 삼분의 이로 줄인 것인데도 목조건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란다.

종종 궁금해진다. 옛 일본인들은 지금보다도 더 몸집이 작았고, 건축에 쓰이는 중장비도 없었는데 어째서 절이나 신사 중에 거대한 건물이 많은지. 또 어찌 실제로 지을 수 있었는지.

그 시대의 건축 기술자와 노동 인력으로 동원되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권력의 힘’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해 버리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국보나 중요 문화재 등으로 불리며 소중히 보존되고 있는 것들은 무명의 장인들과 그 외 수많은 일손에 의해 만들지고 빚어진 것들이니 말이다.

중생을 위해 악을 물리친다는 세 좌의 자오곤겐(蔵王権現)이 모셔져 있는 긴푸센지(金峯山寺) 본당 /사진=양은심
중생을 위해 악을 물리친다는 세 좌의 자오곤겐(蔵王権現)이 모셔져 있는 긴푸센지(金峯山寺) 본당 /사진=양은심

긴푸센지(金峯山寺)에 있는 세 좌의 자오곤겐(蔵王権現)은 새파란 몸에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천정과 맞닿는 벽에 모셔져 있어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덮쳐올 듯했다.

하지만 자오곤겐(蔵王権現)은 석가여래, 천수관음보살, 미륵보살이 중생들의 과거 현재 미래를 구제하기 위해, 악마를 제압하는 모습으로 출현한 것이라고 한다. 입장료를 내고 참관했다. 흰 헝겊이 드리워진 자그마한 방에 들어가 자오곤겐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올려다보고 있자니 어느새 무섭다는 첫인상은 사라지고 믿음직하고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당시 취준생이었던 큰아들을 돌봐 주십사 기도했던 것 같다. 그 덕분인지 자그마한 일터와 인연이 닿아 선배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잘 적응해 잘 다니고 있다.

자오곤겐(蔵王権現) 은 촬영 금지여서 포스터를 찍었다. 2022년 당시의 포스터 /사진=양은심 
자오곤겐(蔵王権現) 은 촬영 금지여서 포스터를 찍었다. 2022년 당시의 포스터 /사진=양은심 

나라현을 여행하던 2022년 11월, 나라현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2025년 8월, 40여 일간의 여름휴가를 얻은 김에 영어 어학연수를 떠난 피지 공화국에서 나라현 사람을 만났다.

난디(NADI) 공항에 도착한 날, 공항에서 픽업되어 학교 설명을 듣고 홈스테이 집을 소개받으며 이동하는 사이에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라(奈良)에서 왔단다. 나라에 여행 갔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사는 도쿄 사람은 아니어도 내가 아는 곳의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친근감이 들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걸 알고는 한글 공부도 하고 있다며 반가워한다. 알고 보니 그녀는 영어 교사였다. 그녀는 최상위 클래스이고 나는 중간 클래스여서 다닐 학교가 다른 곳에 있었다. 친해졌는데 떨어져야 하는 게 아쉬웠지만 영어를 배우러 왔으니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더랬다.

그 후 두어 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잘 통했다. 나라에 한 번 더 가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때는 자기 집에 와서 묵으란다. 내가 “진짜로 갑니다”라고 말하니, 빈말 아니라며 빈방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꼭 오란다.

나라 공원 안은 그야말로 사슴 천국이었다./사진=양은심
나라 공원 안은 그야말로 사슴 천국이었다. /사진=양은심

하지만 우리의 재회는 나라(奈良)가 아니라 도쿄에서 먼저 이루어질 예정이다. 그녀가 11월에 볼일이 있어서 도쿄로 온단다. 우리 집에서 재울 형편은 못 되니 밥이나 한 끼 대접해야겠다. 도쿄에 가면 만날 사람이 생겨서 좋단다. 물론 나도 나라에 아는 사람이 생겨서 좋다. 어쩌면 내년 봄쯤, 벚꽃이 흩날리는 나라현으로 달려갈지도 모를 일이다.

여성경제신문 양은심 번역가(영상/책)·작가 eunsim03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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