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심의 일본열도 발도장 찍기](32)
천 개의 도리이 ‘타이코다니 이나리 신사’
관광지 중심 거리 도랑에 사는 비단잉어
국가 지정 유형문화재 츠와노 카톨릭 성당

가을의 어느 날, 배낭 하나 짊어지고 여행길에 올랐다. 패키지 투어에 나 홀로 참가한 것이다. 8시 10분 하네다(羽田)에서 출발하여 시마네현(島根県) 하기·이와미(萩·岩見) 공항에 도착했다. 첫 목적지는 '타이코다니 이나리 신사(太鼓谷稲成神社)'다. 천 개의 도리이로 유명하다는 관광 안내문을 본 후 어떤 풍광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컸다.

안내원의 말에 따르면, 일본 전국 방방곡곡에 수천에 이르는 ‘이나리(稲荷) 신사'가 있는데 타이코다니 이나리 신사는 ‘나리'라는 글자를 '荷' 자가 아닌 성공의 '成' 자를 쓴단다. 이 신사에 참배하면 성공하는 일이 많다는 ‘썰’이 있다고.

타이코다니 이나리 신사(太鼓谷稲成神社)

타이코다니 이나리 신사는 ‘나리'라는 글자를 '荷' 자가 아닌 성공의 '成' 자를 쓴단다. 이 신사에 참배하면 성공하는 일이 많다는 ‘썰’이 있다고. /사진=양은심
타이코다니 이나리 신사는 ‘나리'라는 글자를 '荷' 자가 아닌 성공의 '成' 자를 쓴단다. 이 신사에 참배하면 성공하는 일이 많다는 ‘썰’이 있다고. /사진=양은심

촘촘하게 세워진 ‘천 개의 도리이’가 만들어내는 경치에 대한 기대가 컸으나 도리이 안으로 오르고 내릴 수는 있지만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없단다. 게다가 우리가 내린 곳은 도리이 계단을 올라온 곳에 있는 주차장이었다. 그 안을 걸어보고 싶은 사람은 내려갔다가 올라와야 했다. 왕복 약 20분에서 30분 정도 걸린단다. 포기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도리이 안이 아니라 경치였기에.

신사를 방문했을 때 참배하기도 하고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일본인들에게는 종교와도 같아서 대부분의 사람이 참배를 하지만 나는 그런 습관이 몸에 배어있지 않다. 가끔은, 일본 사람들 소원도 들어주기 바쁠 텐데 외국인인 내 소원까지 신경 쓸 겨를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기는 해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때는 손을 모으게 되는 것 같다.

산 위에 빨간 도리이가 보인다. 신사의 첫 번째 도리이다. 도리이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님을 요즘 여행 다니면서 실감하고 있다. 산자락에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강은 츠와노 강이다. /사진=양은심
산 위에 빨간 도리이가 보인다. 신사의 첫 번째 도리이다. 도리이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님을 요즘 여행 다니면서 실감하고 있다. 산자락에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강은 츠와노 강이다. /사진=양은심

신사 마당에서 주변 경치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산속에 빨갛게 보이는 도리이가 보였다. 제1 도리이란다. 신의 구역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는 문이다.

츠와노 강(津和野川)을 앞에 두고 산자락에 자리 잡은 아담한 동네의 모습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갈색 지붕이 인상적이었다. 고등학교 건물과 운동장을 보며, 이곳에도 일상이 있음을 새삼 떠올렸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치를 눈에 담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후 집합 시간이 되어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츠와노의 메인 스트리트, 도노마치 거리(殿街通り)로 향했다. 단체여행이라 버스 이동이었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츠와노초(津和野町)의 메인 스트리트, 도노마치 도오리(殿街通り)

노랗게 물들어 가는 은행잎들. 메인 스트리트 '도노마치 거리'의 모습 /사진=양은심
노랗게 물들어 가는 은행잎들. 메인 스트리트 '도노마치 거리'의 모습 /사진=양은심

시마네현(島根県), 츠와노초(津和野町) 도노마치 도오리(殿街通り). 은행잎이 물드는 계절이면 떠올리게 되는 여행지다.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어서 ‘작은 교토(小京都)’라 불리는 아담한 마을이다.

일본 사람들은 '작은 에도(小江戸)' '작은 교토(小京都)'라는 표현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정치의 중심지에 대한 동경심에서 그와 닮은 마을을 만들어 가려 했던 것이리라는 짐작을 해본다.

심지어 ‘긴자(銀座)’라는 말은 전국 상점가에서 볼 수 있다. ‘~긴자 상점가’. 처음 봤을 때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여기에 왜 긴자가 있어?’에서 시작해서 ‘왜 이렇게 긴자가 많아’라는 의문으로 이어졌더랬다. ‘긴자’라는 이름을 애용하는 이유는 도쿄의 긴자처럼 상점과 음식점이 즐비한 번화가가 되기를 바라는 희망을 담은 것이라는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납득했던 경험이 있다.

'츠와노'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된 털머위(츠와부키). 마을 곳곳에 피어 있었다. /사진=양은심
'츠와노'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된 털머위(츠와부키). 마을 곳곳에 피어 있었다. /사진=양은심

도노마치 도오리에 도착하니 지역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마을의 이름은 털머위(ツワブキ/츠와부키)에서 유래한다는 이야기였다. 계절은 가을, 털머위의 노란 꽃이 마을 곳곳에 피어 있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함께 파스텔로 그린 그림과 같은 온화하고 싱그러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길 양쪽으로 나 있는 용수로에는 졸졸졸 물이 흐르고, 그 물길에는 커다란 비단잉어들이 살고 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어째서 비단잉어가 길가에?’ 일본 정원 연못에서나 보던 비단잉어를 길가 도랑에서 감상할 수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느긋이 꼬리를 치며 헤엄치는 비단잉어들, 그 자유로움이라니!

메인 스트리트의 물길에 사는 비단잉어들이 풍류를 자아낸다. 400마리 정도가 있다고 한다. /사진=양은심
메인 스트리트의 물길에 사는 비단잉어들이 풍류를 자아낸다. 400마리 정도가 있다고 한다. /사진=양은심

옛날 어느 날, 길 가 도랑에 정취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가 방류한 것이 시작이었단다. 약 400마리 정도가 헤엄치고 있는데 비단잉어 수가 줄어들면 사다가 방류하기도 한단다. 누구나 자유롭게 먹이를 줄 수 있어서, 비단잉어들이 통통하게 살이 찐 것은 관광객이 던저준 먹이 덕분이라는 설명에 웃음소리가 퍼진다.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는 간판은 자주 봐 왔지만 ‘먹이를 줘도 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투명하리만큼 깨끗한 물과 풍부한 먹이, 살이 찔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하.

400여 년 동안 전승되고 있는 해오라기 춤(鷺舞)

해오라기 춤(鷺舞/さぎまい/사기 마이) 동상. 해오라기 춤은 1542년 교토에서 들여왔으나 일단 사라진다. 그 후 1643년 풍년과 전염병 퇴치를 기원하며, 다시 교토에서 들여와 부활시킨 후 지금에 이른다. 동상은 1994년 강을 복구한 기념으로 세워졌다. /사진=양은심
해오라기 춤(鷺舞/さぎまい/사기 마이) 동상. 해오라기 춤은 1542년 교토에서 들여왔으나 일단 사라진다. 그 후 1643년 풍년과 전염병 퇴치를 기원하며, 다시 교토에서 들여와 부활시킨 후 지금에 이른다. 동상은 1994년 강을 복구한 기념으로 세워졌다. /사진=양은심
강가에 있는 해오라기 동상 앞에 단체 여행 일행인 노부부가 앉아 쉬고 있었다. 강가에는 초등학생들이 과외수업을 하고 있었다. 문득 과거, 현재, 미래를 본 듯한 착각이 들었다. /사진=양은심
강가에 있는 해오라기 동상 앞에 단체 여행 일행인 노부부가 앉아 쉬고 있었다. 강가에는 초등학생들이 과외수업을 하고 있었다. 문득 과거, 현재, 미래를 본 듯한 착각이 들었다. /사진=양은심
강가에서 과외 수업 중인 초등학생들 /사진=양은심
강가에서 과외 수업 중인 초등학생들 /사진=양은심

츠와노는 일본의 중요무형문화재 ‘해오라기 춤’이 보존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해오라기 춤'은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추는 춤이다. 16세기에 전염병 퇴치를 기원하며 교토(京都)에서 시작되었는데, 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 곳은 츠와노 뿐이란다. 교토와 인연이 깊어서인지 기온 마쓰리(祇園祭)가 열리는 기간 중, 츠와노에서는 7월 20일과 27일에 해오라기 춤으로 신에게 제사를 올린다.

관공서와 츠와노 가톨릭 성당

이곳은 옛 건물을 쓰고 있는 관공서다. /사진=양은심
이곳은 옛 건물을 쓰고 있는 관공서다. /사진=양은심
츠와노 가톨릭 성당(津和野カトリック教会). 1996년 국가 지정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사진=양은심
츠와노 가톨릭 성당(津和野カトリック教会). 1996년 국가 지정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사진=양은심

옛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관공서에도 놀랐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가톨릭 성당(津和野カトリック教会)의 존재다. 1996년에 국가 지정 유형문화재로 등록된 곳이란다.

안에 들어가 보지는 않고 밖에서 사진만 찍었다. 작은 교토라 불리는 마을에 가톨릭 성당이라니. 지역 가이드분이 한국에서 오직 이 성당만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서 놀랐다는 말을 들려준다. 성지 순례를 하는 분이지 싶었다.

문학가이자 의사였던 모리 오가이(森鷗外)의 출신지

2022년은 모리 오가이 사후 100년, 츠와노 역 개통 100년이 되는 해였다. /사진=양은심
2022년은 모리 오가이 사후 100년, 츠와노 역 개통 100년이 되는 해였다. /사진=양은심

동네를 둘러본 후 출출해진 배를 채우려고 들어간 간식 가게에 모리 오가이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모리 오가이와 무슨 관계가?’라는 의문에 검색해 보니 모리 오가이(森鷗外/1862~1922)는 시마네현 츠와노에서 나고 자랐다고 나온다.

츠와노 번(津和野藩)의 의사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열 살 때에 아버지와 도쿄로 상경하기 전까지 살았단다. 상경해서 12살 때에 두 살 나이를 속여서 도쿄 의과대학 예비과에 입학하여 19살 때에 의과대학을 졸업했단다. 최연소 졸업. 모리 오가이는 문학가이자 의사였다.

도쿄 분교구(文京区) 센다기(千駄木)에도 모리 오가이 기념관이 있어서 도쿄 사람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었는데 아니었다. 그러니 지레짐작은 금물.

츠와노의 메인 스트리트에 있는 상점가 /사진=양은심
츠와노의 메인 스트리트에 있는 상점가 /사진=양은심

소박하기 그지없는 여행지가 인상 깊게 뇌리에 박혀 있는 경우가 있다. 생생하게 그 거리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고 지인의 안부를 묻듯 마음이 가는 곳이 있다. 시마네현의 츠와노가 그런 곳이다.

새해를 맞이하며 ‘작은 교토’ 츠와노의 겨울을 상상해 본다. 고다츠(일본식 난방 테이블) 위에 정월 요리를 꺼내놓고 오는 해를 맞이하고 있을까. 도노마치 도오리 물길에 사는 비단잉어들은 추위를 잘 견디고 있을까.

학교로 쓰였던 건물 /사진=양은심
학교로 쓰였던 건물 /사진=양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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