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심의 일본열도 발도장 찍기](19)
세계문화유산 이와테현(岩手県) 추손지(中尊寺)
2024년에 900주년 맞이하는 곤지키도(金色堂)
부처님 머리가 백발?···머리색 하얀 불상은 처음
이와테현(岩手県)이 포함된 여행을 예약해 놓고 아들에게 물었다.
“이와테현은 무슨 요리가 유명하지?”
“왕꼬 소바 아닌가?”
“티브이에서 본 적 있어. 직원이 옆에 서서 그릇을 비우면 재빠르게 소바를 추가해 주는 거 맞지?”
“응.”
그런데 전통적인 왕꼬 소바를 단체여행에서도 먹을 수 있을까? 더구나 내가 여행했던 2022년 9월은 코로나 때문에 가능한 한 사람끼리의 접촉을 피하라는 때였다. 어쨌든 그 대처 방법을 포함해서 어떤 스타일로 먹게 될지 궁금했다. 두 번째 목적지인 추손지(中尊寺)를 보고 나서 왕꼬 소바를 먹으러 간다.
201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추손지(中尊寺)’. 그중에서도 금색 찬란하다는 곤지키도(金色堂)를 보고 싶었다. 버스는 정문이 아닌 뒤쪽으로 가서 멈췄다. 곤지키도와 보물관이 가까워서 관람하기 편하단다.
팸플릿에서 본 적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쭉쭉 뻗은 삼나무가 역사를 가늠케 한다. “멋있네”라고 중얼거리며 사진을 찍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쉽게도 곤지키도 안은 촬영금지였다.

눈에 담아올 각오를 하고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으며 들어섰다. 순간 입이 쩍 벌어졌다. 살짝 어두운 실내에 온통 황금색으로 빛나는 '집'이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금색당(金色堂). 금색으로 빛나는 당이었다. 불상의 표정을 보려고 가까이 가려다가 퉁하고 부딪혔다. 뭐지? 커다란 유리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실내가 어두워서인지 노안 때문인지, 유리 벽이 있는지 몰랐다. 옆으로 돌아가서 볼 수도 없고 그저 정면에서만 봐야 해서 갑갑했다. 약 900년 전의 목조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의 건물 안에 먼 옛날의 작은 건물이 들어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팸플릿에 실린 건물 사진은 곤지키도를 보호하기 위해 1963년에 새로 건축한 ‘신오이도(新覆堂/신복당)’였다. 원래 있던 오이도(覆堂/복당)는 바로 옆에 이축해 놓아서 안까지 들어가 볼 수 있다. '곤지키도'는 팸플릿에 있는 건물 안에 자리하고 있다.

약 900년 전, 1124년. 문화가 번창했다는 헤이안 시대에 창건된 추손지. 곤지키도는 창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단다. 지붕까지 금박을 두르고 있다. 헤이안 시대가 문화가 무르익은 시대였다고는 하나 얼마나 큰 권력과 재력을 가지면 이런 당(堂)을 만들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과연 권력의 힘만으로 이런 금색 창연한 절을 지을까?

검색해 보니 ‘신분이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넋을 평등하게 빌기 위해서 세워진 절’이라는 설명에 머리를 끄덕였다. 내년 2024년이면 900주년이다. 1124년에 세워진 것을 2023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볼 수가 있다. 벽돌이나 콘크리트가 아닌 목조 건물이라는 걸 생각하면 놀라울 뿐이다.

곤지키도를 빠져나와 건물 주변을 살펴본다. 마쓰오 바쇼(松尾芭蕉)의 기념비가 보였다. 이곳에도 왔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전국을 돌았다고 하니 관광지 곳곳에서 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니 조금 떨어진 곳에 보물관 산코조(讃衡蔵)가 보인다. 국보와 중요문화재들을 전시하고 있단다. 이곳도 촬영금지여서 건물 사진만 찍을 수 있었다.
보물관에 들어서니 바로 커다란 불상 3좌가 보였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불상들이다. 처음 갔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머리색이 하얀 불상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부처님 머리가 백발이라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보물관을 나와 경내 지도를 확인하고 추손지 ‘본당’을 향해 출발했다. 하쿠산 신사(白山神社)가 보였지만 집합 장소인 정문까지의 거리를 알 수 없어서 그냥 지나쳤다. 본당 입구에서 들여다보니 경내에 적송(赤松) 한 그루가 보였다. 적송을 바라보며 마당에 들어서니 추손지 전역이 ‘중요문화재'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절에 들어서면 걸음이 느려진다.



밖으로 나와 조금 걸으니 파란색 우체통이 보였다. 추손지가 있는 이와테현 히라이즈미(平泉) 시 버전이라고 한다. 우체통은 빨강이라는 인식이 강해서인지 다른 색 우체통을 보면 놀라게 된다.

도쿄 아라카와 구(荒川区)에는 올림픽 금메달을 딴 구민을 기념하는 황금색 우체통이, 우에노 공원 동물원 앞에는 '팬더 우체통'이 있다. 그리고 기후현(岐阜県) 히다다카야마(飛騨高山)에는 검은색 목제 우체통이 있다. 빨간색 우체통이 등장하기 전부터 사용되던 것으로 아직도 현역이란다.

집합 장소가 있는 추손지(中尊寺) 정문을 향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정문까지 걸리는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어서 긴장했지만, 일행의 모습을 확인한 후로는 안심하고 걸을 수 있었다. 무사히 합류하고 기대하고 있던 이와테현 명물 ‘왕코소바'를 먹으러 간다.
안내서를 보니 ‘모리다시식(盛り出し式)'이라 쓰여 있다. 한꺼번에 세팅해서 가져다주는 듯하다. 우리가 점심을 먹은 곳은 바쇼칸(芭蕉館)이란 메밀 국숫집이다. 정식 요리명은 ‘히라이즈미 왕꼬 소바(平泉わんこそば)’다.

여기서 잠깐 요리명의 유래를 알아보자.
소바는 옛날부터 도호쿠 지방의 주식 중 하나였다. 계절에 맞춰 조리법과 먹는 법을 다양하게 발전시켜 왔는데 수타 소바를 잘라서 삶으면 단시간에 불어버려서 그 풍미가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큰 그릇에 담지 않고 작은 그릇에 조금씩 담아내고, 먹고 나면 바로 추가하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 그때 사용하는 그릇을 ‘왕꼬’라 불렀고 ‘왕꼬 소바’라는 요리의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일상은 정신없이 돌아간다. 그런 일상에서 옛날 선조들의 소박한 식생활을 즐길 수 없을까 연구한 끝에, 왕꼬에 소바를 소분해서 한꺼번에 여러 그릇을 제공하는 ‘모리다시 식(盛り出し式)’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안내받은 자리에 앉아 방 안을 둘러보니 유명인들의 사인이 걸려 있었다. 특히 내 눈길을 끈 것은 한때 장수 자매로 유명했던 ‘긴상 킨상(ぎんさんきんさん)’이다. TV에서 봤을 뿐인데도 동화책에 나오는 꼬부랑 할머니 같은 귀여운 인상이어서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단체 관광객인 우리의 메뉴는 정해져 있었고 미리 세팅되어 있었다. 커다란 쟁반에 한 입 분량의 소바를 담은 왕꼬가 12개, 그 옆에 찬거리와 양념이 놓여 있다. 양념을 바꿔가며 소바의 다양한 맛을 즐기란다. 똑같은 것을 두 번 더 받을 수 있는데, 나는 한 번으로 족했다. 물론 36 왕꼬를 먹은 사람도 있었다. 결코 화려한 음식이 아닌데도 다시 먹고 싶어지는 요리다.

식사를 끝내고 소화도 시킬 겸 주변 산책에 나섰다. 가까운 곳에 작은 신사가 있었다. 일본 어디를 가든 보는 풍경이다. 방치된 듯 조용히 서 있지만 절대 방치되지 않은 것이 신사가 아닐까 싶다.


이제 버스를 타고 옆 동네 아키타현(秋田県)에 있는 무사(武士)의 마을 가쿠노다테(角館)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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