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심의 일본열도 발도장 찍기](20)
아키타현(秋田県) ‘무사 저택 거리’
미치노쿠의 작은 교토(小京都)
에도 시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
‘일본열도 발도장(47개 도도부현) 찍기’를 시작하고 40개의 현을 돌았다. 이제 7개의 현이 남았다. 수박 겉핥기식이기는 하나 방방곡곡을 돌아다녀서인지, 눈에 익은 곳의 사진이나 영상을 접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마치 지인의 모습이라도 발견한 듯 반갑다.
설명을 읽거나 듣기 전에 그곳이 어디인지 알아맞혔을 때는 더 신이 난다. 그저 정신없이 스쳐 지나온 것만 같았던 관광지들이 나의 추억 저장고에 차곡차곡 쌓여 있음을 느끼며, 결코 쓸데없는 일이 아니었다고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오늘 이야기 할 ‘무사 저택 거리, 가쿠노다테(角館)’는 일본 사람들에게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 싶다. 그래서인지, 인터넷 세상에서 우연히 사진을 접하는 일도 적다. 어쩌면 나의 알고리즘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지만.

2022년 9월, 도호쿠(東北) 지방 1박2일 단체여행 첫날.
이와테현(岩手県)의 겐비케이(厳美渓)와 추손지 곤지키도(中尊寺 金色堂)에 이어, 아키타현(秋田県)에 있는 '가쿠노다테(角館)’다. 여행 안내서에는 ‘정취 있는 무사 저택 거리 산책’이라고 쓰여 있다. 검색해 보니 ‘중요 전통적 건물군 보존지구’라고 나온다.
기후현(岐阜県) 히다다카야마(飛騨高山)에서도 본 적이 있는 표현이다. 동네 전체를 보존지구로 정해서 관리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사소한 집수리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등의 제약이 있어서 불편하겠지만, 그 덕분에 옛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으니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고맙기만 하다.

나 홀로 참가한 단체여행. 주어진 시간은 40분이다. 어떻게 돌면 효율적으로 볼 수 있을까 궁리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마을 입구에 인력거가 보였다. 이용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인력거가 많은 것은 아닌 듯했다.
마침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인력거는 나이 지긋하신 분이 끄는 것 한 대였다. 도쿄의 아사쿠사(浅草)에서 젊은 사람이 끄는 인력거만 봐 와서인지 조금 놀랐다. 걸어서 돌아봐도 좋겠지만 가쿠노다테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용하기로 했다. 다른 일행들은 안내원을 따라 떠나고 나는 혼자 남아서 인력거 이용 요금 등 설명을 들었다. 15분 정도에 3000엔이었던 것 같다.

인력거에 올라앉으니 경치가 달랐다. 갑자기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다. 옛날 지위 높은 사람들이 말을 타고 지나가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휘 둘러봤다. 크게 자란 나무들이 없다면 마당 안까지 볼 수 있을 듯했다.
울타리는 나무로 되어 있고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마당 안에 커다란 나무들이 있어서인지 울타리가 검다고 해서 압박감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멋스러웠다. 그리고 집과 집 사이에는 키 작은 나무를 심어서 경계선으로 삼고 있었다. 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높이다.

나무판자로 된 검은색 울타리는 관공서에서 관리한다고 했다. 현관의 수리도 관공서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마당에 있는 나무도 보호수로 지정되면 번호가 매겨져서 관공서에서 관리한단다. 130년 된 나무가 있다는 설명에는 입이 쩍 벌어졌다. 공원이라면 모를까 가정집에 100년 넘은 나무라니. '중요 전통적 건물군 보존지구' 답게 마을 전체를 보존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보였다.
가쿠노다테의 영주(藩主/번주)는 자기가 사는 성(城) 아랫마을에 무사들을 모아서 살게 했는데, 성에서 가까운 곳일수록 중요한 요직에 있는 무사의 집이었다고 한다. 설명을 듣고 보니 산에 가까워질수록 집들이 커지고 있었다. 울타리도 점점 높아졌다.
에도시대에 들어서면서 ‘성(城)은 한 지역에 하나’라는 정책이 실시되면서 낮은 산 위에 있었던 가쿠노다테의 성도 사라졌다. 성을 없앴을 때 영주(번주) 가족은 산 밑자락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그 아래로 쭉 뻗은 길가에는 무사들의 집이 있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게 남아있는 풍경은 시원하게 뻗은 넓은 길이다. 현대에 와서 길을 넓힌 것이 아니라 에도시대의 넓이 그대로라고 해서 더욱 놀라웠다. 우리 동네 주택가 길보다 넓었다. 어쩌면 그 덕분에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길을 넓히느라 집을 부수는 일이 없었을 터이니 말이다. 성이 없어진 것 외에는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이지 싶다.
인력거 관광을 마치고, 인력거 끄는 분이 알려준 정보를 되새기며 거리를 한 번 더 돌아봤다. 저택의 일부를 개방하고 있는 옛 무사의 집에서는 옛날 서책과 생활용품, 도구들을 보았다. 저택 앞에는 말에서 내릴 때 썼다는 펑퍼짐한 돌판, 말을 묶어 놓는 돌기둥, 말이 먹을 물을 담아두었던 돌확 등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정갈한 현관에 놓여있는 꽃병의 꽃들을 보며 일상에서 꽃을 즐기는 일본인들의 감성과 방문자를 맞이하는 마음이 전해져 온다. 내가 꽃을 좋아해서인지 꽃을 키우거나 꽃이 꽂혀 있는 집을 보면 즐겁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보니 집합 시간이 가까워졌다. 여행 기념으로 카바자이쿠 제품을 사기로 했다. ‘카바자이쿠’는 벚나무 수피를 가공해서 만든 공예품이다. 시어머니가 쓰시던 카바자이쿠 차통이 있는데 찻잎을 덜 때에 쓰는 스푼을 사서 구색을 갖추면 딱 맞겠다 싶었다. 1년이 지난 요즘도 녹차를 끓여 마실 때마다 가쿠노다테의 풍경과 추억을 떠올린다.

울창한 나무와 검은색 울타리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마을. '무사 저택 거리'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타임슬립 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 모습이 마치 교토(京都)를 닮았다 하여 ‘미치노쿠(일본의 동북 지방)의 작은 교토(小京都)’라고도 불린다.
일본 사람들은 '작은 교토(小京都)', '작은 에도(小江戸)'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긴자'라는 말도 그렇다. 도쿄의 곳곳에 '긴자'라는 이름이 붙은 상점 거리가 있다. 일본에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혼란스러웠었다. “이 '긴자'가 그 '긴자'야?” "긴자도 아니면서 왜 긴자라고 하는 건데?" 지금은 동경하는 대상을 닮고 싶은 심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인력거 관광 때에 들은 설명에 의하면, 가쿠노다테는 벚꽃이 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벚꽃 축제도 열린단다. 문제는 숙소를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 낙담하는 나에게 신칸센이 발전했으니 당일치기로 와도 괜찮을 거라고 힌트를 주신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찾게 된다면 벚꽃 피는 계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곧게 뻗은 길과 검은색으로 단장한 나무판 울타리, 낭창낭창 흐드러진 능수 벚꽃.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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