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택의 실버행]
역이민 선택하는 이유
생활비·인프라·안정감
문화 차이 갈등 빚기도
귀환·정착 국가적 과제

지난 겨울,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40년의 이민 생활을 정리한 박영수 씨(가명·72)는 인생의 두 번째 항해를 시작했다. 그의 목적지는 '돌아온 고향' 대한민국이었다.
“이제 돌아가야겠어. 남은 세월은 한국에서 살 거야.”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떠났던 젊은 날. 치열하게 아이들을 키우고 가게를 운영했지만 은퇴 후 마주한 것은 치솟는 의료비와 낯선 땅에서의 고립감이었다. 고향의 누이와 통화 끝에 밀려오는 사무치는 그리움은 그를 다시 태평양 너머로 이끌었다.
박씨가 선택한 것은 단순한 집 한 채가 아니었다. 식사, 청소, 의료 연계까지 완비된 '실버타운'이었다. 그의 귀환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K-실버'라는 거대한 흐름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복합적인 질문의 서막이다.
1. 왜 돌아오는가? 향수를 넘어선 현실적 선택
박씨의 이야기는 더 이상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외교부 통계(2023)에 따르면 미국·캐나다 거주 한인 동포 약 285만명 중 60세 이상은 65만명에 달하며, 이 중 약 5만5000명이 적극적인 역이민을 고려하고 있다.
이들의 귀환은 단순히 '정체성 회복'이라는 낭만적 이유만은 아니다. 크게 세 가지 현실적 동력이 작용한다.
압도적인 생활비 절감: 미국 대비 절반 이하의 생활비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 편리한 대중교통, 뛰어난 의료 접근성, 안전한 치안
심리적 안정감: 언어의 장벽 없이, 오랜 친구 및 가족과 교류하는 삶
캐나다 밴쿠버에서 30년을 살다 지난해 귀국한 김은희 씨(가명·68)의 삶이 이를 증명한다.
“밴쿠버에선 병원 한 번 가려면 차로 40분, 겨울엔 눈 때문에 꼼짝 못 했어요. 한국에 오니 지하철이 바로 앞이고, 종합병원은 10분 거리죠. 말이 통하는 친구들과 매일 한식 먹으니, 삶의 질이 비교가 안 돼요.”
김씨는 밴쿠버 시절의 절반 수준인 월 250만원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며, 남는 돈으로 국내 여행을 즐긴다.

2. 귀환의 두 얼굴 : 기대와 현실의 간극
장밋빛 전망 이면에는 예상치 못한 '그림자'도 존재한다. 40여 년 만에 돌아온 고국은 때로 더 낯선 이국처럼 느껴진다. 이른바 '역(逆)문화충격'이다.
"미국 보험 혜택도 충분했지만, 아플 때 말이 통하는 게 중요했죠. 그런데 막상 돌아오니, 40년 만에 바뀐 한국의 '말'이 더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뉴저지에서 귀국한 최성호 씨(가명·70)의 말이다.
이들은 급변한 디지털 환경, 세대 간의 가치관 차이,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이방인이 되기도 한다. 일부 실버타운에서는 기존 입주민과 해외파 입주민 간의 생활 방식 차이로 미묘한 갈등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들의 귀환이 마냥 행복한 결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3. 단순 은퇴자를 넘어 '국가 자산'으로, 패러다임의 전환
이들의 귀환이 가져올 경제 효과는 막대하다. 5만5000명(3만5000가구)이 평균 5억원의 주택을 구매하고, 월 400만원씩 20년간 소비한다고 가정하면, 그 총합은 51.1조원에 달하며, 이는 약 91조원의 생산유발효과와 6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을 단순 '소비 주체'로만 보는 것은 이 현상의 잠재력을 절반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은 40년 이상을 해외에서 생존하며 체득한 글로벌 경험과 지혜라는 무형의 자산을 가진 '시니어 브레인(Senior Brain)'이다. 이들의 경험을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 멘토링이나 청년 창업가 컨설팅에 활용하는 '시니어 브레인 리턴' 정책은, 이들을 부양의 대상이 아닌 국가 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만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될 수 있다.
4. 미래를 위한 제언 : 진정한 '웰컴 홈'을 설계하라
K-실버의 성공적인 귀환과 정착은 국가적 과제다. 복잡한 이중국적 취득 절차를 간소화(온라인 신청 허용, 심사 기간 단축)하는 것은 시급한 첫걸음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첫째, 정착의 골든타임을 지원할 '웰컴 홈 센터'가 필요하다. 공항 픽업부터 귀국 후 72시간 내에 처리해야 할 금융, 통신, 행정 절차를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컨시어지' 서비스는 이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안정적인 첫발을 돕는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다.
둘째, '실버타운'을 넘어 '세대 공감 캠퍼스'를 구상해야 한다. 실버타운을 대학 캠퍼스나 청년 주택 단지 인근에 조성하여, 노년층의 지혜와 청년층의 활력이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새로운 공동체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사회적 고립을 막고 세대 통합을 이루는 길이다.
셋째, 해외 자산의 국내 이전을 돕는 '금융·부동산 솔루션'이 시급하다. 해외 부동산 매각과 국내 송금 과정의 어려움을 해소할 '자산 스왑' 금융 상품 개발 등, 귀환의 가장 큰 걸림돌인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실질적 지원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K-실버의 귀환은 단순한 인구 이동이 아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성숙하게 다양성을 포용하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며, 흩어졌던 에너지를 다시 하나로 모을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거대한 테스트다. 이들의 귀환을 '국가적 축복'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사회적 갈등'의 씨앗으로 남길 것인지는 이제 우리의 준비에 달려 있다.
여성경제신문 문성택 유튜브 '공빠TV' 대표 mst2000@hanmail.net
문성택 유튜브 '공빠TV' 대표
문성택 공빠TV 대표는 한의사로 25년간 의료현장에서 진료하며 행복한 노후의 집을 연구하고 있다. <실버타운 올가이드>,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의 집>, <행복 계약서>를 펴냈고, 유튜브 채널 ‘공빠TV’를 통해 고령자 주거, 실버타운, 요양시설 정보를 24만 구독자와 공유하고 있다. 정부·지자체·학회 등의 정책 자문과 강연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