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들여서 영입한 김화진 이중 플레이
기관투자자 가세하면 경영권 무력화
순환출자 문제·상속세·지분 부족까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기아 오토랜드 광명에서 전기차 전용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기아 오토랜드 광명에서 전기차 전용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직면한 승계 구도가 한층 더 복잡해졌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2차 상법 개정안에 포함된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순환출자 미해소, 상속세 부담, 지분 확보 난항에 이어 새로운 변수가 됐기 때문이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다올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집중투표제가 본격 시행되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는 근본적 개편을 피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단순한 배당 확대나 자산 스왑만으로는 총수 지배력 유지가 불가능해졌다는 얘기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임할 때 1주당 선임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해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는 제도다. 소수 주주도 연합하면 이사 선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총수 지배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현대차그룹엔 치명적이다.

현대차그룹의 지배 구조는 ‘기아→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사슬 위에 놓여 있다. 하지만 기아와 현대모비스가 보유한 지분 비중이 높아 외부 주주와 기관투자자가 집중투표를 활용할 경우 총수 중심의 의사결정이 흔들릴 수 있다.

정의선 회장은 배당 확대를 통해 지분 매입 자금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지만 상속세 부담이 워낙 커 실효성이 제한적이다. 현대모비스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6조 원 이상이 필요하지만 현재 재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같은 지배구조 개편 카드가 다시 거론되고 있으나 이는 2019년 이미 주주 반발로 실패한 전략이다. 당시 2조5000억 원이 넘는 시장 손실이 발생했던 만큼 재추진은 쉽지 않다.

특히 집중투표제와 상속세 부담이 동시에 작용한다면 현대차그룹은 삼성과 달리 지배력 방어에 필요한 ‘핵심 지분’마저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채 불안정한 총수 체제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가 결정적 변수로 지목된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현대모비스 사외이사이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산하 지배구조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더벨 기고문에서 집중투표제가 소액주주 보호라는 취지와 달리 현실에서는 대주주 방어 논리로 작동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겉으로는 제도의 한계를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연금이 보다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논리적 기반을 제공하는 셈이다.

재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제도 논평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모비스 핵심 이사회 안에 사실상 ‘승계 견제론자’를 들여놓은 것과 다름없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집중투표제가 본격 시행되면 국민연금은 모비스(8.05%), 글로비스(8.88%) 등 주요 계열사에서 2대 주주로서 캐스팅보트를 쥔다. 김 교수가 지닌 이중적 위치는 향후 이사 선임과 지배구조 개편 국면에서 정의선 회장의 승계 전략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구조적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의선 회장은 평판 관리형 리더십으로 평가받지만 이번에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집중투표제 하에서는 기관투자자의 의사결정 구조 자체가 승계 구도에 직접 연결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제는 배당과 자산 스왑만으로는 부족한 사면초가 국면”이라며 “지배구조 담론  정면돌파와 시장 설득이라는 고강도 전략 없이는 경영권 유지는 점점 더 어려워 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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