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투자 4000억 달러 요구는 ‘무리수’
상법 개정 강행 수순에 사실상 진퇴양난
단순 경제 협상 차원으론 해결 어려울듯
尹석방·국방비 등 패키지딜 논의될 수도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한국에 ‘최고이자 최종적인 협상안(best and final trade deal)’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데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의 관세 협상이 내일 끝나지 않을 수 있다고 발언했다.
한미 상호관세 협상 시한(8월 1일)을 앞두고 31일 미국과 벼랑 끝 승부를 기다리고 정부가 중대고비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한국의 협상안에 아직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상당 수준의 양보가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더 나아가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 협상을 실질적으로 조율하는 ‘키맨’으로 알려진 만큼 ‘관세’를 넘어 이재명 정부에 예민한 의제인 ‘외교·안보·국방’ 등을 포괄한 패키지 딜이 논의될 수 있다는 전망도 따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백악관으로 들어가는 길에 취재진의 ‘한국과의 관세 협상을 내일 끝낼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내일 무엇을 끝낸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에 질문자가 ‘관세’라고 하자 “관세는 내일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과의 협상이 상호관세 발효 전까지 마무리되기 쉽지 않음을 내비친 것이다. 러트닉 장관도 한국의 협상안에 불만족을 표시해 이러한 우려를 짙게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러트닉 장관이 최근 스코틀랜드에서 김 장관·여 본부장과의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종적인 안을 제시할 때 “모든 것을 가져와야 한다(bring it all)”며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연합(EU), 일본, 영국 등 주요 파트너와 이미 다수의 무역 협정을 체결한 상황에서 왜 한국과 새로운 협정이 필요한 것인지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WSJ는 “트럼프 정부 관계자와 회담을 진행하는 한국 정부의 움직임은 8월 1일 관세(25%) 부과 전에 협상을 신속히 마무리하려는 한국 정부의 긴급성을 반영한다”고 논평했다. 러트닉 장관은 이날 CNBC와 인터뷰에서 “8월 1일은 미국이 새로운 관세 세율을 책정하는 날”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압박 속에 구 부총리는 이날 미 상무부 청사에서 러트닉 장관과 통상 협의를 실시했다. 김 장관과 여 본부장도 함께한 이번 협의에서 한·미 양측은 관세 협상 타결을 위한 최종 협상 카드를 조율한 것으로 보인다. 구 부총리는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출국 당시와 마찬가지로 “조선 협력”을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한국에 4000억 달러(약 552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고수한 것으로 알려져 협상의 막판 쟁점이 되고 있다. 한국 측이 1차로 제시한 1000억 달러의 4배에 이르는 액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국이 꽤 괜찮은 카드를 여러 개 제시했는데 (미국이) 계속 ‘더 가져오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어디까지 양보해야 타결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를 단순히 통상 협상 차원에서 보면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31일 최종 협상에 나올 미국 베선트 장관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 협상을 실질적으로 조율하는 ‘키맨’으로 알려져 있다. 관세를 넘어 이재명 정부에 예민한 의제인 ‘외교·안보·국방’ 등을 포괄한 패키지 딜이 논의될 수 있다는 전망도 따른다.
국방비 증액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28일 관세 협상 과정에서 국방비 증액과 미국산 무기 구매도 협상 목록에 포함됐다고 밝혔지만 어느 정도 수준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말하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은 한국 국방비를 GDP의 5%(직접 국방비 3.5% + 간접 안보 비용 1.5%)까지 늘릴 것을 희망하고 있다. 이 경우 최대 70조원 이상의 예산 증액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농축산물 시장 개방의 규모 확대를 요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한미 관세 협상에서 농축산물 시장 개방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 “미국 측의 압박이 매우 거센 것은 사실”이라며 “농축산물 요구도 있지만 가능한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양보 폭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프레드 플라이츠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FPI) 부소장은 이달 초 이재명 정부의 ‘안보 수장’인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만나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불공정한 수사·재판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밝힌 데 이어 지난주 미국 워싱턴 DC를 찾은 한미의원연맹 의원들과도 만나 같은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프레드 플라이츠는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으로 트럼프 행정부 1기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트럼프 2기 정부에서 CIA 부국장직 제안을 받기도 한 대표적 친트럼프 인사다. 그만큼 플라이츠와 트럼프 대통령간 핵심 사안을 밀접하고 긴밀하게 공유해올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한 달 가까이 윤 전 대통령 대우 관련 어떠한 공식 입장도 내지 않으면서 미국이 이번 관세 협상에 압박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 경제·외교 전문가는 “냉정하게 말해 정부의 제안서는 트럼프가 원하는 것 중에 하나도 제대로 만족하고 있는 게 없다고 보면 될 것 같다”며 “국방비는 중국과 북한 눈치를 보며 증액에 부담을 느끼고 기업활동을 옥죄는 상법·노조법 개정이 강행되는 상황에서 일본이나 유럽 만큼 대미 투자 규모를 늘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일 협상에서 대미 투자 규모를 파격적으로 늘리지 않는 한 외교, 안보, 국방 카드와 연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여진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유준상 기자 lostem_bass@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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