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임대주택 공실 활용한 '살던집' 프로젝트
복지부 사업 일환···광주 광산구서 최초 진행
요양병원 퇴원자 위한 회복·자립형 주거 공간

/게티이미지뱅크
요양병원에 계속 있긴 싫지만 혼자 살긴 불안한 노인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자립과 의존 사이에 놓인 이들을 위해 지자체가 공공임대주택을 ‘케어형 주거모델’로 전환했다. /게티이미지뱅크

# “요양병원 퇴원하고 싶은데 갈 곳이 없어요.” 가벼운 뇌경색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했던 박모 씨(78)는 회복 후 퇴원을 권유받았지만 선뜻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혼자 있다가 또 쓰러지면 아무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병원에 머물기엔 답답했고 자유도 없었다.

요양병원에 계속 있긴 싫지만 혼자 살긴 불안한 노인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자립과 의존 사이에 놓인 이들을 위해 지자체가 공공임대주택을 ‘케어형 주거모델’로 전환했다. 돌봄과 주거를 공간 안에서 통합한 새로운 형태의 복지 인프라가 현장에서 첫발을 뗐다.

4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광주 광산구는 지난 7월부터 보건복지부의 ‘주거인프라 연계 돌봄서비스 시범사업’을 통해 공공임대주택 공실을 활용한 ‘살던집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다. 광주도시공사가 보유한 임대주택 일부를 리모델링해 돌봄이 필요한 고령자에게 제공하고 인근 복지관에 조성한 ‘케어홈센터’를 거점으로 생활 돌봄 서비스를 통합 공급하는 방식이다.

광산구는 지난달 9일 우산동 송광종합사회복지관에서 ‘살던집 케어홈(돌봄전담)센터’ 개소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광산구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에 지속해서 있을 필요는 없지만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고령자의 지역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구조다. 공공임대주택 내 ‘중간집’은 병원·시설 퇴원 후 전환기에 있는 주민을 위한 회복 및 자립 준비 공간이다. 모든 주민들은 케어홈센터를 통해 의료·돌봄 서비스를 연계받을 수 있다. 센터에는 간호사,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등 전담 인력 8명이 상주하며 개별 사례 관리를 통해 방문돌봄, 건강관리, 정서 지원 등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살던집’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광산구청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할 수밖에 없던 이들을 위한 대안으로 ‘중간집’이 효과적”이라며 “병원 퇴원이 가능하지만 갈 곳이 없는 의료급여 수급자 등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주거와 돌봄을 연계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 주민과 ‘중간집’ 입주자가 섞여 있는 공공임대 단지를 활용해 지역 전체의 돌봄 공백을 메운다. 기존 입주민 대부분이 고령의 저소득 1인 가구다. 이들이 요양병원으로 가지 않도록 센터에서 사례 관리와 돌봄 연계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며 “현재 '중간집' 총 30호 중 예정자까지 포함해 7명이 입주했다. 입주자 선정 기준은 공공임대주택 입주 자격 기준”이라고 했다.

입주자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광산구청 관계자는 “요양병원에 계속 있었다면 건강이 더 나빠졌을 것이라는 반응이 많다”며 “거동이 살짝 불편했던 한 입주자는 병원에서는 휠체어 사용을 강요받아 걷는 능력이 퇴화했지만 ‘중간집’에 온 뒤 걷는 양이 늘고 우울증 약도 끊게 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광산구는 이 모델이 내년 시행되는 ‘지역사회통합돌봄지원법’에 명시된 ‘퇴원 환자 지원’ 구조에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 병원 입원 기간이 제한된 현실에서 가족 돌봄이 어려운 노인들을 위한 효과적 주거 대안이 될 수 있으며 공공임대 아파트의 유휴 자산을 활용해 재정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는 설명이다.

복지부 주거인프라 연계 돌봄서비스 시범사업 담당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이번 시범사업의 핵심은 ‘집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 설계’”라며 “단순한 주택 공급보다 어르신이 기존에 살던 집에서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의료·돌봄·가사 지원 등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관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주택 기반 서비스 모델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설계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또 “내년부터 시행되는 지역사회통합돌봄법 안에서 케어안심주택, 지원주택 등 다양한 주택 모형이 시도되고 있다”며 “이름은 달라도 결국은 지역 내 '에이징 인 플레이스(AIP)' 실현이라는 공통된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전국적 확산 가능성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확대 계획은 없다”며 “내년까지 운영하면서 성과를 모니터링한 뒤 사업 모델에 대한 방향을 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광산구처럼 기존 주택을 활용한 결합 모델은 유의미한 방식이다. 사업이 잘 진행된다면 향후 주거 모델까지 함께 고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고령자의 주거 형태가 지역·개인별로 매우 다양한 만큼 일률적 주택 공급보다는 주거 형태에 맞춘 맞춤형 서비스 설계가 중요하다”고 했다.

전문가들 역시 이 같은 방식이 요양병원 중심 체계에서 벗어나 주거 기반 복지로 전환하는 실질적 접근이라고 평가한다. 유선종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요양병원에서 퇴원하는 환자를 위한 주거 연계 돌봄 모델이라면 타당성이 있다. 급성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회복해 퇴원을 앞둔 이들이 ‘집에 혼자 있긴 불안하다’는 이유로 귀가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혼자 살지 않아도 되고 돌봄을 제공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끌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자체나 복지부가 기존 빈집 등을 활용해 주거·의료·돌봄 인프라를 연계해 주는 방식은 ‘에이징 인 커뮤니티(AIC)’ 개념에 부합한다. AIP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지금 커뮤니티 기반 융합 돌봄 체계로의 전환 시도는 충분히 의미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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