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원대 1인 컵빙수 SNS 화제
호텔 빙수 15만원 역대 최고가
물가 오를수록 소비는 양극화
‘먹고, 마시고, 입고, 바르고, 보는' 모든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유통가 뒷얘기와 우리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비재와 관련된 정보를 쉽고 재밌게 풀어드리겠습니다.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 주]

“4400원에 이 맛이면 나는 맨날 사먹지!”
최근 SNS의 한 누리꾼이 커피 프랜차이즈의 4000원대 컵빙수 사진과 함께 남긴 글입니다. 해당 글은 2만회가 넘게 재게시되며 너도나도 ‘가성비 컵빙수’를 사먹어야겠다는 반응이 이어졌지요.
고물가와 소비 위축이 이어지는 요즘, 저렴하고 든든한 디저트를 찾는 소비자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SNS를 타고 입소문이 번지자 매장을 찾는 손님들이 몰렸고 복잡한 제조 과정 탓에 직원들이 업무 부담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사실 옆집 컵빙수가 더 맛있다”는 직원들의 유머러스한 댓글도 이어지며 고객을 다른 매장으로 보내려는 ‘웃픈’ 상황까지 벌어질 정도였지요.
이번 컵빙수 열기의 시초인 메가MGC커피의 컵빙수 2종 팥빙 젤라또 파르페와 망빙 파르페는 지난 4월에 출시한 이후 두 달 만에 누적 판매량만 240만개를 돌파했습니다. 출시 한 달 만에 50만개를 돌파하고 5월 17~22일 닷새 만에 60만개가 더 팔리며 인기를 증명했지요. 매장마다 분당 25잔씩 팔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고 하네요.
1인 컵빙수에 대한 호응이 올해 유독 높아지자 경쟁사에서도 잇따라 가성비 컵빙수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이디야커피는 초당 옥수수, 팥 인절미, 망고 그래놀라, 꿀자몽 그래놀라 등 1인 빙수 4종을 6300원에 출시했고, 컴포즈커피는 팥절미 밀크쉐이크를 4500원에 선보였습니다. 공차는 로얄밀크티와 말차 팥빙수 쉐이크를 6900원에 선보였고, 할리스는 ‘애플망고 듬뿍 컵빙수’, ‘딸기베리 듬뿍 컵빙수’, ‘팥 듬뿍 컵빙수’를 9000원에 출시하는 등 맛·토핑을 다양화하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메뉴를 잇달아 내놓았습니다.
사실 커피 프랜차이즈의 가성비 1인 빙수는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다만 올해처럼 대중적 인기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적은 없었지요. 과거 출시 사례로 보면 이디야커피는 2021년부터 1인 컵빙수 메뉴를 꾸준히 출시해왔고, 요거프레소도 지난해 밀크컵빙수 3종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올해만 이렇게 ‘대란’이 일어난 것일까요? 우선 메가MGC커피의 단돈 44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이 대란을 촉발시켰습니다. 이 가격은 여타 커피 프랜차이즈들의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보다도 더 저렴합니다. 올해 들어 카페 프랜차이즈들의 가격 인상 소식이 이어진 가운데 닫힌 소비자 지갑을 다시 열게 한 셈이지요.
실제로 지난해 말 이후 커피 원재료인 원두 가격 폭등으로 국내 주요 카페들은 대부분 올해 들어 음료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올해 1월 스타벅스와 폴바셋을 시작으로 투썸플레이스, 할리스 등 주요 카페들이 가격을 올렸고, 메가MGC커피, 컴포즈커피, 빽다방, 더벤티 등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도 원가 상승 압박에 음료 가격을 올렸습니다. 지난달 탐앤탐스도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기준 4400원에서 4600원으로 가격 인상 릴레이의 막차를 탔고, 롯데GRS가 운영하는 엔제리너스와 CJ푸드빌이 운영하는 뚜레쥬르도 대선 직전 커피 가격을 올렸습니다.

컵빙수의 대척점에는 고가의 호텔 빙수가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스몰 럭셔리(작은 사치)’라는 소비 트렌드와 함께 값비싼 호텔 빙수의 인기가 주를 이뤘지요. 빙수계의 에르메스라 불리는 특급호텔 ‘망고 빙수’ 대전은 올해도 어김없이 막이 올랐는데요. 해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격에 올해 최고가 망고빙수는 15만원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가장 비싼 호텔 빙수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의 ‘벨 에포크 샴페인 빙수’로 가격은 15만원입니다. 포시즌스의 제주 애플망고(14만9000원)에 근소하게 앞서며 호텔 간 ‘초호화 빙수 경쟁’의 정점을 찍은 것이지요.
이처럼 4000~5000원대 컵빙수와 특급 호텔빙수가 동시에 유행하는 현상은 단순한 디저트 트렌드라기보다, 현대 소비사회의 이중적인 소비 심리와 고물가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물가가 오를수록 소비는 양극화됩니다. 중가 소비는 줄고, 한쪽에서는 가성비 소비가, 또 다른 한쪽에서는 프리미엄 소비가 동시에 늘어나는 것이지요. 한국은행 통계에도 ‘소득 상위층의 소비 여력은 여전’하고 ‘중·하위층은 가성비 중심 소비로 전환’하는 현상이 포착됐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4000~5000원짜리 컵빙수와 15만원짜리 호텔빙수가 각각 서로 다른 계층과 니즈를 만족시키며 함께 유행하는 겁니다.
하지만 소비 침체가 길어지면서 ‘스몰 럭셔리’의 인기마저 예전만 못한 분위기입니다. 실제로 이번 여름 들어 호텔빙수의 인기가 작년만큼 뜨겁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서울신라호텔 ‘애플망고 빙수’의 평일 대기 시간이 과거 코로나 시기에는 2~3시간 정도 걸렸다면 지난해와 올해 들어선 20분 이내 또는 대기 없음 수준으로 크게 줄어들며 값비싼 빙수 수요가 한풀 꺾인 상황입니다. 전체 특급 호텔도 상황이 비슷하며 "대부분 호텔의 빙수 판매량이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감소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고물가·고금리로 MZ세대의 ‘초고가 디저트’ 소비 심리는 갈수록 위축됐고 “10만원 넘는 호텔빙수, 이제는 안 먹는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셈이지요. 이에 더욱 합리적인 가성비 디저트에 수요가 집중되는 분위기입니다. 지난주 만난 한 유통업계 관계자가 “이제는 가성비도 아니다. 초저가여야 손님이 지갑을 연다”고 귀띔했던 것도 바로 이런 사회현상과 맞물립니다.
고물가와 경기침체로 숨 막히는 일상 속, 컵빙수 한 잔은 작지만 소중한 여름의 위로가 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 작은 사치를 찾는 풍경이 올여름 대한민국 곳곳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여성경제신문 류빈 기자 rba@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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