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원의 성과 인권]
우리가 뭘 더 해야 했을까?
드라마 '소년의 시간'에서 느낀 것들
양육자의 울타리는 생각보다 얕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소년의 시간(Adolescence, 2025)>이란 영국 드라마를 흥미롭게 봤다. 이 드라마는 제이미라는 한 소년이 범죄에 연루돼 체포되는 과정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원테이크 기법으로 촬영돼 인물이나 장소에 더 공감이 가게 했고, 연출된 기법이 다큐멘터리를 보듯 몰입감을 줘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드라마엔 4개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1편은 주인공 제이미가 경찰에 체포돼 구금되는 장면이다. 평범한 학생 제이미는 같은 동급생을 무참히 살해한다. 믿어지지 않는 살해를 하고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정신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 정말 궁금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2편에선 제이미가 다니는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볼 수 있다. 형사와 교사, 부모는 전혀 아이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것이 제이미의 심기를 어떻게 건드렸는지 전혀 정서를 읽지 못한다.
3편은 체포된 지 7개월이 지난 제이미가 임상심리사와 긴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구성됐다. 이 대화를 통해 제이미가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자극이 무엇이었으며 그 폭력성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짐작하게 된다. 비로소 제이미의 본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4편은 제이미를 낳고 사랑으로 길러낸 부모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새벽까지 불이 안 꺼진 방을 기억하며 “우리가 뭘 더 해야 했을까?” “내 생각엔 우리가 뭔가를 해야 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아”라며 평범한 제이미의 부모는 통탄의 눈물을 흘리고 대화한다. 친구 케이티를 죽인 제이미는 악마여서였을까? 부모가 교육을 잘못시켰기 때문이었을까?
이제 한국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처절하게 두려운 것은 이것이 비단 영국의 모습이 아니라 한국 청소년의 모습과 너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최근 만난 센터에서의 청소년을 생각하면 제이미의 세계와 어쩌면 많이 닮아 있다고 걱정되는 부분이 꽤 많다.
온라인 세상 속에 맡겨진 채 성장하는 우리의 10대들. 한국에서 유아기를 벗어나 청소년이 만나는 현실은 가정의 울타리를 조금만 벗어나면 어마어마한 세상(학교와 경쟁과 온라인 등)과 마주하게 된다. 드라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양육자가 깨끗한 청정구역에 머물게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고, 생각보다 양육자의 울타리는 아주 작고 얕은 울타리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이 기본적인 울타리조차 없이 방치돼 내던져진 아이도 많이 만나게 된다.

어제 만난 중학생들은 처음 만나는 강사가 와서 열심히 강의하는 데도 18명 중 8명 정도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 살짝 살펴봤다. 물론 게임에 대해선 문외한인 나는 그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게임에서 펼쳐지는 이미지들은 상상을 넘는 살인과 잔인함으로 가득했다.
잠깐 본 모습만으로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었다. 이런 날은 강의가 끝나고도 내가 무엇을 더 말해야 했나, 왜 저렇게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강의를 끝내고도 걱정과 두려움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한국의 아이들은 너나없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공부를 잘 해내기 위해 학교에서 돌봄센터로, 돌봄센터에서 정해진 시간이 되면 태권도 학원 버스에 몸을 싣는다. 이리저리 짜인 배움에 애들은 지치고 힘겹다. 또 한편에서는 공부도, 뭣도 흥미가 없고 무기력하다. 앞에서 강사가 떠들든지 말든지 자극적인 스마트폰 게임에 매달려 희망 없는 무기력한 시간을 채우고 있다.
이런 모습들을 비단 10대 사춘기 청소년의 일탈이나 발달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만 두고 보는 것이 맞는 것일까? 제이미 부모의 대화처럼 우리가 무엇을 더 알고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청소년들이 ‘좋은 인간’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를 적극적으로 고민해 봐야 한다.
여성경제신문 손민원 성ㆍ인권 강사 qlov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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