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원의 성과 인권]
사랑이란 이름의 가정 폭력들
실상은 지배·통제를 위한 것
사회에선 용납 안 될 범법 행위
존중하고 존중받는 관계 돼야

우리는 가정이라 하면 ‘사랑’ ‘화목’ ‘평화’ ‘안락’이 존재하는 공간이라 생각한다. 여기 이런 가족 구성원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보자.

# 초등학생 A는 오늘은 집에 가는 것이 두렵다. 숙제를 안 했기 때문에 집에 가서 엄마에게 맞을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 고등학생 B는 고민이 많다. 여자 친구가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 같은데 집착이 심해 내가 언제 집에 들어가고 누굴 만나는지, 어떤 헤어스타일을 해야 하는지도 말한다. 나를 너무 사랑해서라고 하는데 어떤 때는 나의 행동에 대해 거짓말해야 할 때가 있고 그것으로 가끔 싸울 때도 있다. 그런 이유로 헤어져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가족, 사랑하는 연인은 정말 가깝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여야 하는데 이들은 가족이란 이름 혹은 연인이란 이름으로 울타리를 쳐 놓고 서로를 공격하며 피를 철철 흘리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가족, 사랑하는 연인은 정말 가깝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여야 하는데 이들은 가족이란 이름 혹은 연인이란 이름으로 울타리를 쳐 놓고 서로를 공격하며 피를 철철 흘리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대학생 C는 최근 환경과 기후 문제에 관심이 많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환경 문제와 관련된 NGO에 취업하고 싶지만,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로스쿨 입시 보는 걸 기정사실로 했다. 시험 준비 강의 시간표도 다 짜주신다. 부모님의 오랜 바람을 저버릴 수는 없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성장하고 보니 부모님은 나를 가스라이팅하고 있는 게 아닌가 느껴진다. 그렇지만 나는 내 주장을 밀고 나갈 용기가 없다.

# 노인 D는 너무 외롭다. 집에서는 같이 밥 먹자는 사람도 없고, 말 한마디 섞질 않는다. 여기저기 아파도 관심도 없고, 그냥 하루 종일 방에서 TV만 보는 게 일이다. 나는 투명 인간이다.

# 부인 F는 남편이 두렵다. 욱하는 편이라 사소한 것 하나까지 모든 것을 정하고 통보한다. 마음이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결혼 후 쭉 참고 산다. 이제는 참는 게 이골이 났다. 그렇다고 내가 경제적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을 위해 나 한 사람 희생하면 되지···’라는 심정으로 견디고 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례는 모두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한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가족, 사랑하는 연인은 정말 가깝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여야 하는데 이들은 가족이란 이름 혹은 연인이란 이름으로 울타리를 쳐 놓고 서로를 공격하며 피를 철철 흘리고 있다.

이것은 가정폭력이고 교제 폭력이다. 이들이 머무르는 공간은 고통을 받는 사람과 고통을 가하는 사람이 같이 있다.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신고하거나 외면하지 못한다. 길게는 평생을 그 울타리에서 견디다가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연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뉴스들인 ‘재결합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살해’ ‘위장 이혼 거부에 아내 살해’ ‘전 연인 살해’ 등은 아마도 시작은 위의 작은 폭력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이들의 사랑은 금이 가기 시작했을까?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들의 변명은 이런 것들이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꿔서” “헤어진 후 다른 남자를 만나서” “외도를 의심해서” “자신을 무시해서” “말대꾸해서” 등이었다. 공통적인 이유는 ‘여자 친구로서’ ‘남자 친구로서’ ‘부인으로서’ 당연히 장착하고 있어야 할 본분을 안 한 것이다.

“연인, 아내, 남편의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고 폭력을 사용하는 건 안 되지.” 이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진실이다. 그런데 폭력을 가하는 사람은 폭력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때리거나 괴롭히는 걸까?

그들의 변명은 주로 이것이다. “술이 웬수지!” “배운 게 없어서?” “분노 조절 장애가 있어서?”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서?” “나도 모르게 우발적으로?”

누군가가 누구를 때린다면 내가 때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다. 한마디로 때릴 수 있는 만만한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누군가가 누구를 때린다면 내가 때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다. 한마디로 때릴 수 있는 만만한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무엇이 맞을까? 모두가 아니다. 누군가가 누구를 때린다면 내가 때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다. 한마디로 때릴 수 있는 만만한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더 센 사람(권력, 돈, 물리적 힘 등)이 앞에 있다면 그렇게 폭력을 가할 수 있을까? 결국 상대방을 지배하고 통제해도 된다는 왜곡된 욕구와 불평등한 차별적 인식이 폭력의 출발이 된다.

길을 지나갈 때 누군가가 나를 치면 폭력으로 신고한다. 그러나 연인과 가정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사랑’ ‘화목’ ‘평화’ ‘안락’을 만들어 가야 하므로 누군가는 일방적으로 참거나 묵인한다. 그래서 가정폭력이나 교제 폭력은 신고율이 아주 낮다.

그리고 은밀한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피해 당사자가 말하지 않으면 알 수도 없다. 더구나 신고해도 기소되고 처벌이 되는 것은 작은 신고 건수 중에서도 10%도 되지 않는 범죄다.

그것을 개인의 문제로 보고 그대로 방치하게 되면 곪아 터져 사회문제로 더 큰 범죄들이 연일 보도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이를 심각하게 보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폭력은 가정 안에서도, 어떤 관계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인식이 분명하게 필요하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사랑’ ‘화목’ ‘평화’ ‘안락’을 채우고 싶은가요? 서로에게 누구보다 힘이 돼 주고 사랑하는 연인이 되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친밀한 관계에서는 지배와 통제가 아니라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관계가 돼야 함을 잊지 마세요. 화목과 평등은 어떻게 만들어 가고 지켜 나가야 할지를 고민하세요. 우리의 관계를 살펴보고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된 건 아닌가 살펴보세요.

여성경제신문 손민원 성ㆍ인권 강사 qlover@naver.com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