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원의 성과 인권]
사람들은 늘 내게 늦었다고 말했어요
그러나 무언가를 시작하기 딱 좋은 때
미국의 국민화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Anna Mary Rovertson Moses)는 70세가 넘어 미술을 시작했다. 그녀의 그림은 따뜻하다. 그림을 보고 있자면 나를 반겨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과거의 내 할머니는 얼마나 나를 기다리셨는지 늘 신발을 신지 못하고 마루에서 내려오셨다. 그 따뜻함이 그림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할머니가 늘 나에게 해주시던 말처럼···.
“사람들은 늘 내게 늦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사실 지금이야말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에요.
진정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죠.”
나이가 많든, 적든 자유롭게 배우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최근 뉴스를 보다 보니 골프에 취미를 붙여 라운드를 자주 하게 됐고, 골프클럽에 입회하려고 했더니 ‘70세 이상은 입회할 수 없다’는 이해할 수 없는 답이 왔다는 뉴스를 봤다. 골프장 측은 코스가 험해 안전사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 공공 수영장에서는 보호자와 함께한 만 6세 이하 아동에게 보호자가 동반해도 ‘입장 불가’라는 안내를 했다고 한다. 나이가 어려서도 안 되고, 나이가 많아서도 안 되는 참으로 이상한 논리가 펼쳐지는 세상이다.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나이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나이도 어린데 네가 뭘 안다고 끼어드니?” 혹은 “늙었으니 물러나야 한다”고 자신의 주장을 자연스럽게 말한다. 그리고 스스로도 “이 나이에 이런 자리에 끼어드는 건 주책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말과 행동은 연령주의(Ageism)를 기반으로 나타난 사회문화적 차별이다.
우리 사회는 쓸모 있는 사람의 기준을 세워두고 있다. 경제적으로 유용한, 생산적인 사람만을 쓸모 있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가족 중심 사회에서, 은퇴한 후 역할이 사라진 무능한 노인을 한 사람의 주체로 바라보지 않고 사회의 짐일 것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며 보호만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난 죽어도 요양원에 안 갈 거야!”를 입에 달고 살던 노인이 있는데, 정작 본인의 몸을 누군가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당사자의 의사 결정권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최근 정부에서는 소상공인을 돕기 위한 상생 지원금을 국민에게 지급하고 마을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한다. 많은 음식점, 패스트푸드 가게들은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도록 하고 있다. 새로운 문물에서 주문을 척척 해내는 어르신도 있지만 아직도 이것을 보면 겁부터 덜컥 난다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어르신 손님들이 ‘직접 말로 주문하겠다’는 것을 거절하거나, 메뉴를 잘못 눌러 취소하겠다고 하니 취소해 주지 않는 식당도 있다. 다양한 국가정책으로 노인의 삶을 살피는 제도와 혜택이 있지만 이렇게 한쪽에서는 오히려 배제되는 부분이 모순적으로 나타난다.
이를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나이’를 기준으로 비생산적인 존재로 보는 사회문화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노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노인에게 듣고 세대 간 이해하고 교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는 제도가 필요하다.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담겨 있다. 할머니의 100살 생일 축하를 위해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그럼 그냥 하시면 돼요.”
할머니의 말씀처럼 하고 싶은 일을 그냥 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내가 나이가 많다고 무시하거나 자격 미달자로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조건에서 나도 모지스 할머니처럼 뭔가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노년의 연속을 희망한다.
여성경제신문 손민원 성ㆍ인권 강사 qlover@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