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원의 성과 인권]
재난은 점점 더 자주 다양한 모습으로
시민의 일상을 무너트린다
재난 속에서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지켜낼 것인가

경북 안동시가 친정인 친구의 부모님 댁이 다 타버려 연로하신 부모님이 인근 학교로 피신해 가 계신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몇 차례 방문했던 정겨운 시골 마을이 눈에 선한데 마을이 거의 전소됐다고 하니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놀랄만한 재난이 결코 멀리 뉴스 속의 사건이 아니라 내 일이라는 것, 우리가 다 연결돼 있음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우리는 사고를 경험하고 목격하며 사건을 접하고 참사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또 재난을 겪으며 살아간다. ‘사고’는 교통사고처럼 생각지도 않게 일어나는 불행한 일을 표현할 때 쓰이는 단어다.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다’에서와 같이 ‘사건’은 그 원인을 규명하거나 진실이 필요할 때 붙일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25일 경북 안동시 남선면 인근 야산으로 불이 번지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경북 안동시 남선면 인근 야산으로 불이 번지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우리는 ‘이태원 참사’ ‘세월호 참사’라고 명명한다. 왜냐하면 더 이상 그런 일들이 되풀이돼서는 안 될 것이고 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한 비참한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발생한 ‘어떤 일’을 ‘사건’으로 보느냐, ‘사고’로 보느냐, ‘참사’로 보느냐는 발생의 원인이 당사자의 부주의로 보는가 혹은 안전 시스템의 부재 혹은 미작동으로 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우리는 사건, 사고, 참사, 재난을 바라볼 때 어쩔 수 없는 불의의 사고, 불가항력적 자연재해, 한 사람의 안전불감증 등에서 발생의 원인을 찾곤 한다. 물론 한 사람의 조심성과 투철한 안전의식이 어떤 문제를 줄이는 데 중요한 요인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만을 문제의 원인으로 규정한다면 사건, 사고, 참사, 재난의 고통은 더 빈번하게 우리를 고통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 이미 사건의 징후가 여러 차례 발견되고 신고됐지만 정보의 전달과 소통 체계 같은 것들이 작동하지 않아 참사로 이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사건, 사고, 참사, 재난은 개인의 부주의나 거대한 자연의 섭리만으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과 구조적 안전망의 부재’라는 근본적인 거대한 원인을 바탕으로 해 반복되기 때문이다.

2022년의 폭우로 서울 신림동에 있는 다세대 반지하에 물이 들어와 일가족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반지하 집이 비가 많이 오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몰라서 반지하에 살았을까? 아니면 지자체의 위험 경보를 무시했기 때문에 사고를 당했는가?

기후 위기로 인해 폭우는 더 강력해지고 있고 신림동 일대 4800세대가 물에 잠기고 나서야 지자체는 물막이판을 설치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무료로 설치해 주는 물막이판은 낙인효과와 집주인들의 기피로 제대로 설치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이 차 들어오는 상황에서 오직 물막이판에 의지해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집중호우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

28일 광주 북구청 광장에서 구청 직원들과 후원단체가 산불 피해를 본 경남 산청과 하동 주민들을 돕기 위한 생수, 빵, 라면, 담요 등의 구호 물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광주 북구청 광장에서 구청 직원들과 후원단체가 산불 피해를 본 경남 산청과 하동 주민들을 돕기 위한 생수, 빵, 라면, 담요 등의 구호 물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 /연합뉴스

실질적 문제 해결은 빈곤을 잘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것, 재난 상황이 와도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에 대한 다른 차원의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함을 아는 것, 가난이 재난 상황에서 더 취약함을 가져올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경북 의성군에서 출발한 산불은 광범위한 생명의 손실과 대처하기 힘든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재난’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재난은 인간의 생명과 안전, 기본권에 대한 위협으로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고 있다. 국가는 인권을 보장하고 인권 침해를 예방해야 할 책임이 있다.

재난에 대한 국가적 책임도 마찬가지다. 어디까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100% 불가항력으로 찾아오는 재난은 없다. 그러므로 국가는 기후 위기와 같은 예측 불가능한 것에 대해 그 가능성을 높이는 것에 힘쓰고, 위험에 대한 예방과 대비를 철저히 하며, 작은 위험 신호를 보내는 목소리에도 귀담아들어 주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을 얼마만큼 채워 가느냐에 따라 국민은 사건, 사고, 참사, 재난으로부터 좀 더 안전해질 것이다.

적십자 관계자들이 30일 경북 영덕군 영덕국민체육센터 앞에서 산불 이재민을 위한 점심 식사를 담고 있다. /연합뉴스
적십자 관계자들이 30일 경북 영덕군 영덕국민체육센터 앞에서 산불 이재민을 위한 점심 식사를 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국가에만 재난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요구할 수는 없다. 사회 공동체 구성원들도 안전을 함께 책임지고 연대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기후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며 기업에도 책임을 묻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동으로 옮기는 것 등이 필요하다.

뉴스를 보니 자원봉사자들이 산불 진화에 힘을 보태고, 주변 식당 주인은 일면식도 없는 소방관들에게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호텔 사장님은 화재로 잠잘 데가 없는 사람에게 객실을 무료로 내준다. 이렇게 피해자와 함께 아파하고 피해자 곁에 있어 주는 것 또한 시민으로서 재난 회복을 돕는 시민공동체의 연대하는 모습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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