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드라마를 보며 엄마에게 드리는
인사 “폭싹 속았수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나라 걱정하는 것 빼고, 요즘 지인들과 가장 많이 나누는 이야기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넷플릭스)다. <나의 아저씨>의 김원석 감독과 <동백꽃 필 무렵>의 임상춘 작가가 함께하는 제주도 배경의 드라마라니, 거기에 아이유 박보검 문소리 박해준 나문희 김용림 염혜란 등의 배우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다니 기대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촬영 전부터 화제가 됐던 이 드라마는 한 달 전 방영을 시작했고 매주 새로운 화들이 올라올 때마다 사람들의 입을 타며 화제가 되었다. 작가는 가난으로 가족조차 돌보기 힘들었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시대, 어떤 고생을 하더라도 자식만큼은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랐던 부모를 둔 우리 세대의 삶을 그려낸다.

195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의 3대의 삶을 비추지만 각 시대에 벌어진 특정 사건이 도드라지는 시대물이라기보다 그때의 삶의 모습이 배경이 되는 가족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애순이 엄마 해녀 광례는 병으로 남편을 여읜 후 어린 딸 애순을 친가로 보낸다. 자신의 힘으로는 ‘요망지고(똑똑하고 야무지다는 제주말)’ 공부도 잘하는 딸을 원하는 만큼 공부시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배곯지 않고 학교 마칠 수 있게 해 달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누구보다 억척스레 물질을 하며 언제나 애순이를 지켜보고 응원하지만 애순이 열 살이 되던 해 병사한다.

코흘리개 때부터 친구였던 애순과 관식은 서로의 첫사랑이 되어 부부가 된다. 작가는 이렇게 애순과 관식,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둘러싼 가족과 지인들이 어떻게 그 시대를 살아왔는지 무리하지 않게 그러나 그 시절을 겪어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은 같은 경험을 했을 만한 소재를 통해 풀어낸다. 각자의 자리에서 부모를, 자식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며 담아두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말이다. 

애순이의 엄마 광례는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자신이 항상 미안하다. /사진=넷플릭스
애순이의 엄마 광례는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자신이 항상 미안하다. /사진=넷플릭스

지난 주말 오랜만에 만난 대학 친구와 선배들의 모임에서도 역시나 ‘폭싹 속았수다’는 빠지지 않았다. 나를 비롯해 그 자리에 함께한 지인들이야말로 드라마 속 ‘애순이’ 세대의 엄마를 둔 ‘금명이’ 또래이니 자연스러운 일이다(드라마 속 금명이가 87학번이다). 그날 모인 우리들은 애순과 금명 모녀의 에피소드 몇 가지를 빗대어 각자 자신의 대학 시절 혹은 그보다 더 어렸을 때 엄마와의 추억을 끄집어냈다.

나 역시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니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모두 선명하지는 않지만 드라마가 떠올리게 한 순간들은 분명히 있었다. 금명이처럼 맏딸인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의 자랑이었다. 좋은 성적을 받아오고, 학급 반장을 하고, 나중에 크면 이런 일을 하겠다(물론 당시 어른들이 좋아하는 직업으로 말이다)고 당차게 말할 때 엄마가 얼마나 뿌듯해하시고 기뻐하셨는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빠의 사업으로 경제적으로 부침이 많은 살림살이에 몸도 마음도 고생스러웠지만 ‘현주 엄마’라고 불리는 순간만큼은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받았고, 그게 엄마의 큰 행복이라는 걸 나 역시 모르지 않았다. 항상 다음 단계를 계획하고 노력하는 모범생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에는 그 이유가 컸다. 

“엄마도 고등학교 때 공부 참 잘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대학만 보내줬으면 살림 밑천인 맏딸 노릇 제대로 했을 텐데, 그렇게 보내 달라고 했는데도 딸은 안 된다고 하시더라.” 칠 남매의 맏이인 엄마에게 대학 진학은 언감생심이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경리직으로 취업을 해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때쯤 첫사랑 아빠를 만났고 가진 것 없는 두 사람은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할 때까지 긴 연애를 했고, 결혼했고, 딸과 아들을 연이어 낳았고, 자식의 뒷바라지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셨다. 엄마 애순과 아빠 관식의 인생을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빗댄 16부작의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 역시 엄마와 아빠의 지나온 시간을 돌아봤다. 

금명이와 이야기하는 애순의 모습에서 엄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사진=넷플릭스
금명이와 이야기하는 애순의 모습에서 엄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사진=넷플릭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금명이가 날아올랐음 좋겠어. 상을 차리는 사람이 아니라 상을 막 엎는 사람이 되었음 좋겠어”라며 이야기하던 애순처럼 엄마도 나에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은 다 해 봐. 요즘 시대에 남자 여자가 어디 있니”라며 내가 해보려는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고 도와주시려 했다.

더 나이가 들어 30대 40대가 되었을 때도 내가 힘들어하면 “잘했어. 그만하면 된 거야”라고 응원해 주셨고, 일하며 아이를 키우느라 갑작스레 도움을 요청할 때도 한 번도 거절하지 않으시고 손녀딸을 돌봐 주셨다. 엄마와 함께한 오십여 년 동안 엄마도 분명 외롭고 고달픈 시기가 있었을 텐데 자식들에게는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아빠를 돌보시며 지내는 지금이야말로 그런 마음이 드실 텐데도 가능한 나에게 부담을 주시지 않으려 노력하신다. 

가끔 두 분을 모시고 서울 외곽으로 식사를 나가곤 하는데 그때마다 창밖을 보시며 ‘꽃이 참 예쁘네’, ‘나무가 이제 여름이네’, ‘딸 덕에 이렇게 계절이 바뀌는 걸 보네’ 하시며 좋아하신다. “생각에 잠겨있구나 봄바람 불어오누나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봄봄봄봄봄이여” (김정미의 봄) 드라마 오프닝에 나오는 노래처럼 기억에 남은 아름다운 어느 시절의 엄마를 떠올리셨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 엄마에게 다시 한번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폭싹 속았수다, 엄마!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엄마!  

여성경제신문 김현주 공공기관인, 전 매거진 편집장 thebom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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