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50대의 내가 앞으로 살고 싶은
인생을 그려본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듣게 된 ‘인생 반환점’이란 단어가 걸어온 길과 남아 있는 길을 떠올리게 했다. /사진=Unsplash의 Matt Fox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듣게 된 ‘인생 반환점’이란 단어가 걸어온 길과 남아 있는 길을 떠올리게 했다. /사진=Unsplash의 Matt Fox

지난 주말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MBC)를 보게 됐다. 방송인 기안84의 하루를 보여주는 내용이었는데 새로 옮긴 작업실에서 렘브란트의 화집을 뒤적이며 큰 캔버스 안에 빛을 그려 넣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필력을 높이기 위해 영감을 주는 작가들의 작품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해 보는 중이라는 그는 얇은 붓으로 연신 바다 위를 비추는 빛무리를 만들어갔다. 잘하고 인정받은 웹툰을 계속하는 게 맞는 건지, 잘한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게 맞는 건지 고민이라는 그는 자신의 나이를 언급했다.

‘마흔두 살, 남은 시간 길게는 40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메모를 쓰며, 자신을 포함한 또래의 친구들이 요즘은 인생 절반 살았으니 남은 절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한다고 말한다.

돌이켜보니 ‘핸들도 안 잡고 흐르는 대로 가는’ 시간을 살았던 것 같다며 앞으로는 ‘남이 하는 대로 따라서’가 아닌 핸들 제대로 잡고 진짜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아가겠다는 말도 덧붙인다. 사격에서 영점 조정을 하는 것처럼 지금 이 시간이 앞으로의 인생 조정시간인 것 같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나도 그 시절을 떠올렸다. 

서른다섯이 되던 해였다. 35년을 살았으니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이 35년쯤 되겠거니 했다(그때는 지금과 기대수명이 달랐다). 인생의 반환점을 찍었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나를 응원하고 축하해주고 싶었다. 쉽지 않았지만 잘 버텨내며 원하는 삶을 향해 나아가며 살아왔다고 말이다. 그리고 내가 지나온 그 시간 동안 내 옆에 머물며 함께 즐거워하고 위로해 주던 친구들과 선후배들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사람 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냐는 생각으로 나에게 소중했던 사람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술 한잔 대접하기로 했다. 어릴 적 살았던 고향 같은 동네 청파동의 작은 카페를 하루 저녁 통째로 빌렸다. 4~5개 테이블과 바 테이블 의자가 몇 개 있는 2층 카페였는데 지인이던 사장님께 잘 말씀드려 술은 그곳에서 식사가 될 만한 안주들은 밖에서 공수해 와 한 상을 차렸다.

국민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친구들은 물론 함께 일했던 직장동료와 선후배, 사회생활을 하며 죽이 맞아 친구가 된 이들까지 족히 40~50여명이 넘는 지인들을 불렀던 것 같다. 당시엔 톡이나 SNS가 없었으니 일일이 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하며 초대했다. 친구들은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시간 되는대로 카페에 와 주었다. 나의 지인이란 이름으로 모인 이들은 대부분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테이블을 옮겨 가며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이 대학 친구들과 합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일하다 만난 친구들과 고등학교 친구들이 즐겁게 술을 나누며 어울리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잊지 못할 장면이다. 난 그렇게 내 인생의 반을 함께 한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반환점을 도는 행사를 치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들이 전해준 내 모습을 들으며 남은 인생 반을 계획했다. 

나에게 집중했던 20년 전과 다른 방식으로 삶의 지향을 조정 중이다. /사진=Roberto Nickson
나에게 집중했던 20년 전과 다른 방식으로 삶의 지향을 조정 중이다. /사진=Roberto Nickson

그 이후 20년이 흘렀다. 언제 이리 시간이 흘렀는지 놀랍기만 하다. 인생 후반기가 그 전의 시간과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세상의 중심은 나였고 나에게 몰두하는 시간이 인생 전반기라면, 그렇게 혼자만을 위한 결정과 결단만으로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게 인생 후반기다.

삶의 전반기와 달리 후반기에는 온전히 나를 위해 내 시간을 채울 수 없게 된다. 현재의 나는 나 혼자 살면서 만들어진 게 아닌 누군가의 배려와 양보, 희생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나만 보이던 삶에서 주위가 보이고, 해야 하고 챙겨야만 하는 일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더 바쁘고 경황없는 상황들이 생기고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지난주만 해도 계단에서 넘어지신 친정아버지 때문에 응급실로 병원으로 입퇴원하느라 혼쭐이 났고, 고3 생활을 본격 시작한 딸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정리해 주느라 쉴 틈 없이 보냈다).

따지고 보면 지금이 인생의 2/3는 족히 지난 때일 테니, 나머지 1/3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가늠해 볼 필요가 있겠다. 20년 전에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계획하며 나를 위한 격려의 시간을 가졌다면, 지금의 나는 주변의 소중한 이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 그들에게 내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은 무엇인지 생각하며 작게라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나에게 집중하는 삶이 아닌 내가 아닌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으로 눈을 돌리는 삶으로, 나 역시 영점 조정 중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