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지금은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눈앞에 놓인 과제들에 주목해야 할 때

지난 회차에 이어 다시 제주 이야기다. 송악산 근처의 평화바람길 트레킹을 마치고 서귀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바닷가 쪽으로 여러 대의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2012년 제주는 2030년까지 탄소 없는 섬을 만들겠다는 ‘CFI2030(Carbon Free Island 2030)’을 발표했고, 바람 많은 제주에 적합한 풍력발전 중심의 에너지 자립 계획을 제시했다. 그래서인지 제주의 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해안은 물론 산자락에서도 하얀색 대형 바람개비처럼 생긴 풍력발전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날 본 풍력발전기들은 돌아가지 않고 멈춰 있었고, 궁금해진 나는 버스에 함께 탄 지역 주민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저렇게 만들어 놓았지만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제주에 있는 풍력발전기들이 거의 그럴걸요. 발전기들을 돌려서 전기를 만들어도 그걸 저장하고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게 어렵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세워두는 거예요.”
옆에 있던 다른 분이 끼어들었다. “그러니까요. 저렇게 크게 만들어 놓으면 뭐 해요, 활용 안하고 세워두는 거면 경관만 해치는 거지.” 재생에너지 생산 기반을 만들어 놓았지만 전력 수급을 위한 계통이 정리가 안 돼 전력 생산 자체를 차단하는 상황이라는 건데, 이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 ‘RE100’을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하겠다 싶었다.
제주도에서 목격한 멈춰 있는 풍력발전기를 떠올린 건 며칠 전 MBC 뉴스에서 본 RE100 캠페인을 주관하는 클라이밋 그룹 최고책임자와의 인터뷰 때문이었다. RE100(Renewable Energy 100)은 국제적인 NGO 클라이밋 그룹이 2014년 출범한 기업의 자율적 동참 캠페인이다.
애플, 구글 등 이미 전 세계 유수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는 이 캠페인은 탄소 제로 달성을 목표로 기업이 사용하는 모든 전력을 2050년까지 전량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구매하거나 자가 생산으로 조달하겠다는 것이다. RE100은 이러한 기업을 대중에게 공개해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고 해당 기업의 물건 구매를 유도한다.
기후 전문기자가 인터뷰한 클라이밋 그룹 최고 책임자 올리 윌슨은 새 정부의 기후 에너지 정책을 환영하며, 향후 5년이 한국의 기후 에너지 상황을 결정할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발간한 RE100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재생에너지 구매가 가장 어려운 국가로 3년 연속 선정되었고, 2024년 한국에서 활동하는 RE100 회원사들의 재생에너지 조달률은 12%에 불과하다. 이는 글로벌 평균인 53%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중국 59%, 일본 36%, 베트남 58%)이다.
올리 윌슨은 "한국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최소한 33% 이상으로 늘려야 합니다. 이 정도는 돼야 한국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재생에너지 수요에 부합할 수 있을 겁니다. 또 하나, 전력시장에서 재생에너지 공급과 유통에 장애가 되는 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한국은 해상풍력 분야에서 624GW(기가와트) 용량의 발전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금은 잠재력의 0.2%에 불과한 124MW(메가와트)만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정부의 의지와 제도만 마련된다면 한국은 단기간에 재생에너지 강국이 될 수 있습니다.”

클라이밋의 최고책임자가 당부한 것처럼 RE100은 앞으로 한국 기업과 국가 경쟁력에 필수 불가결인 조건이 될 것이고, 향후 몇 년이 그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기에 우리나라 상황에 맞춘 탄소중립을 위한 지속 가능한 전환의 노력이 시급해 보인다.
새 정부는 선거 때부터 에너지 공약으로 친환경 재생에너지 대전환과 RE100 실현을 내세웠고 이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업무와 환경부의 기후 업무를 한데 모아 기후 위기 대응 정책을 포괄적으로 수립하고 집행하기 위한 정부 조직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추진 중이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민간투자 확대와 재생에너지 조세를 통한 직접 전력 거래를 위한 전력 구매계(PPA, Power Perchase Agreement) 활성화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법안들도 빠르게 제시되고 있다.
제주도의 사례처럼 전력 생산을 많이 해도 수도권까지 이송할 망이 부족하면 실효성이 떨어지므로 전력 계통 포화 지역에 우선적으로 전력망을 구축하는 에너지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마침 지난 6월 5일 세계환경의 날 공식 행사가 우리나라 주최로 제주도에서 진행됐다. 올해 환경의 날 슬로건은 ‘공동의 도전, 모두의 행동(Shared Challenge, Collective Action)'이었고, 플라스틱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플라스틱 오염 종식(Beat Plastic Pollution)'을 주제로 여러 행사가 열렸다.
행사의 슬로건처럼 환경과 기후에 관한 도전은 전 세계 모두가 직면한 상황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정부와 기업, 기관과 개인 등 전 층위에서 기울여야 한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기후 순환 경제 구축, 생태복원, 수질개선, 탈 플라스틱 사회 등 지향해야 할 과제들도 산적해 있다.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때로는 불편을 감소해야 하고 때로는 용기 있게 앞장서서 나아가는 행동을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를 위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관심이라 생각한다. 내 주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피고 판단하고 찾아봐야 한다. 그래야 움직일 수 있다!
(나만 해도 우연히 마주친 멈춰 있는 풍력발전기에 관한 관심이 없었다면 이 내용으로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도 못 했을 거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주 공공기관인 hyunjoo7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