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세상에는 평화가
마음에는 자비가 오기를

불기 2569년 부처님오신날이 지났다. 사무실이 을지로에 있어 가끔 점심시간에 조계사에 다녀오는데 이미 한 달여 전부터 형형색색의 초파일 연등을 만들고 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신실한 불자는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절에 다녔던 터라 누가 종교를 물어보면 불교라고 말하고는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절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제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꾸준히 다니는 절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여행을 가거나 산에 오를 때면 그 지역 절을 찾아 부처님께 삼배도 드리고 절 마당 이곳 저곳을 한동안 둘러보고 나온다.
채 한 시간도 안 되게 머물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법당에 앉아 그간의 나를 돌아보기도 하고 누군가의 건강을, 성취를, 때로는 명복을 기원하기도 한다.
그날도 그렇게 연등 작업을 하는 신도들을 바라보며 잠깐 절 마당에 앉아 있었다. ‘등에 불을 밝힌다’는 ‘연등(燃燈)’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깨달음을 찾아 나선 부처님을 기리며 욕심과 집착으로 어두어진 마음과 세상이 깨달음의 등불로 밝아지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아 등을 밝히는 행위라고 알고 있기에, 수백 개의 연등에 붙어 있는 이름은 말 그대로 수백 명의 기원이겠구나 생각하면서 말이다.
마침 조계사 바로 옆에 위치한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조선시대 화승 의겸의 불화를 모은 기획전 ‘호선 의겸: 붓끝에 나투신 부처님’(5월 20일~6월 29일)이 열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늘 여유가 없어 박물관까지는 들르지는 못했는데 이번에는 시간을 내기로 했다. 지역의 사찰을 방문해야 한 점씩 볼 수 있는 의겸의 불화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라는데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세밀하고 유려한 선과 색으로 ‘붓의 신선(호선)’이라 불리던 화승 의겸은 18세기 영호남과 충청도 지역의 불화 제작을 이끌었는데, 이번 전시를 위해 의겸 스님의 영산회상도, 나한도, 관음보살도 등의 작품들이 국립중앙박물관 및 전국 각 사찰에서 모아졌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관음보살도’ 2점이다. 조선시대 관음보살도의 정수라 불리는 전남 여수 흥국사 ‘관음보살도’(1723, 보물)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관음보살도’(1730, 보물)가 나란히 걸려 있는데 이 작품들을 따로 볼 수 있는 것 역시 최초라고 한다.
다른 작품들보다 이 두 작품을 가장 오래 감상했는데, 아마 요즘 내가 관세음보살(관음보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중생의 소리를 듣고 어디든지 몸을 나투어 고통과 어려움에서 구제해주는 보살, 불교의 핵심가치인 ‘자비’를 대표하는 보살인 관세음보살 말이다.
몇 주 전 우연히 TV에서 배우 강수연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보았고,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임권택 감독과의 두 번째 작업인 이 영화로 강수연은 1989년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녀가 연기한 순녀는 필부필부의 마음을 헤아리며 사람들의 얼굴과 마음에서 부처를 발견하고 나 혼자의 깨달음이 아닌 중생과 함께 하는 깨달음, 대승불교를 자연스레 전해준다.
비구니가 되기 위해 수행하지만 자살하려는 남자를 구하려다 파계하게 되고 이후 자기를 필요로 하는 남자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던져가며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순녀를 주지스님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기다리며 중생과 함께 깨닫는 수행도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한승원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인데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인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가자 가자 넘어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의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조계종의 종정 예하 성파 스님은 올해 봉축 법어를 통해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다”라며 "어떠한 허상에도 속지 않고 한 중생도 외면하지 않은 원력보살이 되겠다는 발원을 하는 불자야말로 부처님이 칭찬하시고 제천과 호법선신이 찬탄하는 참불자의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나도 올 해는 조금 더 부지런하게 내 자리를 돌아보고 비워내고 채워내는 노력을 계속해야겠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나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아주 작게나마 ‘세상에 평안을, 마음에 자비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면서 말이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주 공공기관인, 전 매거진 편집장 hyunjoo7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