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어른을 만났다

60년 넘게 운영한 남성당 한약방에서 김장하 선생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맞이했다. /사진=㈜시네마 달
60년 넘게 운영한 남성당 한약방에서 김장하 선생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맞이했다. /사진=㈜시네마 달

오십 대 중반이 되었으니 나는 어른이다. 여기에서 어른은 사전에서 정의하는 일반적인 의미인 성인(成人),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어른이라는 단어를 존칭으로 사용할 때는 ‘큰 사람(大人), 그러니까 말과 행실이 바르고 점잖으며 덕이 높아 존경받을 만한 사람을 가리킨다.

흔히 요즘을 ‘어른이 없는 시대’라고 한다. 오히려 어른이라는 단어가 자신들이 살아왔던 때만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강요하는 ‘라떼’ 집단이라는 느낌을 전하기도 한다. 나보다 앞서 살아온 이를 보면서 본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게 어려운 시대라는 말이다. 내 주변에 덕이 높고 존경을 받는 어른이 있는지 떠올려 봤는데 생각해 내기 어렵다. 

누군가는 세상이 바뀌어서라고 이유를 든다. 이전의 사회와 지금은 삶의 속도와 방식이 다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거기에 맞춰가며 살아가다 보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볼 새가 없다. 먼저 살아왔던 어른이나 지금의 젊은이 모두 나 혹은 내 식구만 바라보며 하루하루 버티기에 급급하다. 자연히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에 대해 눈을 돌리기가 어려워진다. 앞에 떨어지는 불똥을 끄기에도 바쁜데 가치 있는 삶,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휴먼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포스터 /사진=㈜시네마 달
휴먼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포스터 /사진=㈜시네마 달

이런 시기에 '어른 김장하'를 만났다. 몇 년 전 MBC 경남의 다큐멘터리를 재편집해 극장에서 상영했을 때는 아쉽게 놓쳤는데, 소위 ‘김장하 키즈’인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 주목받으며 극장과 OTT를 통해 재개봉하게 되면서 볼 수 있게 됐다.

2019년 헌법 재판관 임명을 위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27년 동안 법관 생활을 했는데 재산이 너무 적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제가 결혼할 때 다짐한 게 있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좀 넘어선 것 같아 반성하고 있다”고 답한 그의 말이 진심으로 느껴졌고, 이런 그의 태도가 김장하 선생으로부터 연유했다고 들었던지라 도대체 그분이 어떤 영향력을 가진 분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김장하 선생은 경남 진주에서 19살부터 60년 넘게 한약방을 운영한 분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벌어온 돈을 지역 사회에 각 분야에 아낌없이 기부했다. 1983년 설립한 명신고등학교를 1991년 국가에 헌납했고, 형평 운동(1923년 진주에서 일어난 차별받던 백정들의 신분 해방운동)과 지역 언론, 지역 문화와 예술, 여성 인권 등 다양한 분야를 후원했다.

가난으로 학업을 잇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형편이 어려워 공부하기 힘든 이들이 배움의 기회를 잃지 않도록 1천여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한 것도 유명하다. 앞에 나서 이야기하기보다 항상 구석에 앉기를 선호하지만, 자신이 필요한 자리에는 어떤 식이라도 참여해 도움을 전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간섭하지 않으며 드러내지 않고 지역 곳곳에 기여를 해 온 선생은 평생 자동차 한 대 없이, 안감이 닳은 옷을 입으며 살아가고 있다.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그리 걸어가면 돼”라는 김장하 선생의 말씀처럼 지금부터 내 자리에서 내가 전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다. /사진=㈜시네마 달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그리 걸어가면 돼”라는 김장하 선생의 말씀처럼 지금부터 내 자리에서 내가 전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다. /사진=㈜시네마 달

문형배 재판관의 모습도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81년부터 1986년까지 김장하 장학생이었던 그는 선생의 생일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한다. “사법시험 합격 후 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갔더니, 자기한테 고마워할 필요는 없고, 자기는 이 사회에 있는 것을 너에게 주었을 뿐이니, 혹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아라, 제가 조금의 기여를 한 게 있다면 그 말씀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울컥 울음을 터뜨린다.

중년의 셰프는 고등학교 입학식 날 ‘이분처럼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지금은 파스타집을 운영하며 지역의 생활보호 대상자와 새터민 가족을 초청해 음식을 대접한다고 한다. 이렇게 선생의 대가 없는 도움과 격려를 받은 이들은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에 갚을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간다.

영화 속에서 선생의 목소리가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옛날에는 약값을 기술료라고 해서 엄청 많이 받았거든. 나는 기술료보다는 수가를 줄이겠다, 내가 돈을 벌었다면 결국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벌었다. 차곡차곡 모아서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서 이 일을 시작한 것이다"라는 말씀과 더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는 제자에게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야”라고 전한 격려가 마음에 남는다.

나 역시 100여 분의 러닝 타임 동안 많은 위로를 받았다. ‘아, 세상에 이런 분이 있구나’, ‘참 고마운 분이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 거지?’란 생각을 동시에 하면서 말이다. 이런 어른을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다니, 다행이다. 이 나이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가족만을 생각하며 살고 있지 않은지, 나를 위해서가 아닌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 있을지 돌이켜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는 영화 포스터 속 문장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 원고를 쓰던 중 ‘빈자의 성인’이라 불리는 프란체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을 들었다. “이웃의 고통에 둔감해선 안 된다”고 말씀하신 교황은 즉위 후 한국을 방문해 “인간의 고통 앞에 서게 되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됩니다.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라는 말을 남기셨다. 간소하고 검소한 모습으로 사회의 약자를 위해 실천하는 삶을 보여주신 이 시대의 큰 어른께 애도와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주 공공기관인, 전 매거진 편집장 thebom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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