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 내 저장시설 용량 규정
설계수명 중 발생량으로 제한
월성원전 2~4호기 셧다운하면
‘대정전’ 우려되는 비상단계 발령

지난달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하 고준위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부지 내 저장시설 용량을 설계 수명 중 발생 예측량으로 제한한 조항 탓에 원전 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0일 원자력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고준위법이 제정됐으나 일부 조항으로 인해 ‘월성 2~4호기’ 등은 정상적인 계속운전이 어려우리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36조6항에서 원전 부지 내 고준위 방폐물 저장시설의 용량을 원전 설계수명중 발생 예측량 이내로 한정해서다. 계속운전할 경우 저장 공간이 부족할 수 있다.
원전업계는 이 조항에 대해 “원전의 수명이 10년 단위로 연장될 수 있다는 점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현행법에 의하면 원전은 설계수명이 30~60년으로 제한돼 있지만 이후 당국의 허가를 전제로 계속운전을 통해 10년 단위로 운영 기간을 늘릴 수 있다.
실제로 정부가 지난달 확정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도 모든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을 전제로 2038년까지의 전력 공급 계획을 수립했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제정되는 고준위법에는 원전의 저장시설 용량을 원전 설계수명 기간내 예측량으로 한정한 것을 두고 “현실적인 필요를 담지 못했다.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 추진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장 큰 우려는 월성 2~4호기다. 월성 2~4호기는 이미 부지 내 건식 저장시설(맥스터)을 운영하기 때문에 추가 저장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계속운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월성 2호기는 2026년 11월, 월성 3호기는 2027년 12월, 월성 4호기는 2029년 2월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상황에서 한수원은 이들 원전의 10년 계속운전을 추진 중이다.

특히 신월성 1·2호기 등 농축 우라늄을 쓰는 경수로와 달리 월성 2~4호기는 천연우라늄을 사용하는 중수로여서 방사성폐기물 배출량이 더 많이 발생한다.
월성 2~4호기의 총 설비용량은 210만㎾(킬로와트)다. 만약 월성 2~4호기 계속운전 불허로 가동을 멈추게 되면 산술적으로 ‘대정전’(대규모 정전, 블랙아웃)이 우려되는 전력수급 비상 단계까지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력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블랙아웃 사태가 한 번만 터지더라도 피해액이 1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만일 월성 원전의 공백을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대신한다면 연간 1조원 이상의 추가 전력 생산 비용이 들 것으로 나타나 전기요금 인상 등의 국민 피해도 예상된다.
다른 원전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고리 2호기는 이미 2023년 4월, 고리 3호기는 2024년 9월에 운영허가가 만료되어 가동이 중단됐다. 이어 고리 4호기 2025년 8월, 한빛 1호기 2025년 12월, 한빛 2호기 2026년 9월, 월성 2호기 2026년 11월, 월성 3호기 2027년 12월, 한울 1호기 2027년 12월, 한울 2호기 2028년 12월, 월성 4호기 2029년 2월 등도 수명 만료될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고준위법 제정을 논의할 때부터 부지 내 저장시설 포화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원안에는 고준위 방폐물 관리위원회가 유사시 저장용량을 바꿀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있었다”며 “하지만 법 제정이 더 늦어질 것을 우려한 여야가 절충하면서 이를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정재학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장은 여성경제신문에 “원전의 계속운전을 포함한 운영 및 해체 전 과정에 걸쳐 예상되는 사용후핵연료를 관리시설 확보 전까지 부지 내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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