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 기간 美 2년 남짓인데 韓 3.5년 
수명만료 다가오는 원전 10기 시험대 
“원전 1기당 최대 1조원 손실 감내해야”

고리2호기 주제어실 모습. 정면 중앙 상단에 ‘원자력 출력 0%, 발전기 출력 0㎿’ 전광판이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고리2호기 주제어실 모습. 정면 중앙 상단에 ‘원자력 출력 0%, 발전기 출력 0㎿’ 전광판이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2029년까지 설계 수명이 만료되는 국내 원자력발전소 10기에 대한 계속운전 심사가 지연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전력 공급 차질, 막대한 경제적 손실 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원전 계속운전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제때 대응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갖는데 국내 계속운전제도가 세계적 추세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9일 여성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원전 계속운전 심사 기간이 국내에선 약 3.5년 걸리는데 비해 미국은 22~30개월 안에 심사가 끝난다. 

이러한 상황대로라면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인 고리 2호기의 경우 계획대로 재가동하더라도 실제 운영 기간은 7~8년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계속운전을 위한 정비 및 설비 교체에 수천억원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용 낭비일 수밖에 없다. 

월성 원전과 같은 가압중수로형의 경우 압력관 교체가 필요해 계속운전 준비 기간과 비용이 늘어 경제성 논란이 재현될 수 있다. 계속운전 심사를 전후해 여론 분열, 주민 갈등 등 높은 사회적 비용도 수반된다.

이처럼 계속운전을 승인하는 속도가 느린 이유는 복잡한 인허가 절차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원전이 설계수명기간이 만료된 뒤에도 연장 운영하기 위해서는 허가 만료일 5~10년 전 계속운전을 신청하게 된다. 다만 관련 법령이 2022년 12월에 개정돼 2029년 이전에 운전 허가기간이 만료되는 원전은 허가 만료일 2~5년 전을 기한으로 적용 받는다.   

한수원은 먼저 자체 안전성, 경제성 평가 및 이사회 의결을 거친 후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주기적안전성평가보고서(PSR)을 제출해야 한다. PSR 제출 이후엔 운영변경허가 신청서도 원안위에 내야 한다. 원안위는 접수한 PSR에 대해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심사를 받아야 하며 이 내용에 대한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 검토와 최종 원안위 회의를 통과해야 계속운전이 확정된다. 

이처럼 주기적안전성평가와 운영변경허가 등의 2가지의 심사가 진행되면서 관련 절차 진행이 늦어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문주현 단국대학교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현재) 계속운전을 위해서는 주기적안전성평가와 운영변경허가 등 2가지 인허가 과정이 필요해 계속운전 심사기간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같이 설비개선에 소요되는 기간 때문에 계속운전 인허가가 승인되더라도 10년의 계속운전기간을 온전히 확보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실제 계속운전 기간을 보장해 계속운전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계속운전 관련 용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며 중복 성격의 평가기준 통합 등 계속운전 평가기준 및 심사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계속운전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가뜩이나 심사 기간이 길어져 가동 중단이 길어지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초래되고 있어 계속운전 기간을 현행 10년에서 미국처럼 20년으로 늘리거나 10~20년 사이에서 사업자가 선택하는 방안도 고려된다. 신청기간을 설계수명기간 만료 20년 전부터 할 수 있게 변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경주, 울산 지역 환경단체들은 설계만료 원전의 계속운전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앞으로 있을 공청회에서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해 주민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던 전남 영광 한빛 1·2호기에선 공청회가 파행을 겪기도 했다. 심사 제도를 서둘러 개선하지 않는다면 주민 수용성 문제와 겹쳐 계속운전 준비 기간과 비용이 늘어 큰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030년까지 허가 기간이 끝나는 원전은 고리 2·3·4호기, 월성 2·3·4호기, 한빛 1·2호기, 한울 1·2호기 등 10기다. 이들 원전의 총 시설용량은 8.46GW에 이른다. 이 정도 규모의 전기를 새로 발전소를 지어 만들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만한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땅과 바다를 파헤쳐야 하고 이를 위해 치러야 할 경제적, 사회적 비용 또한 막대하다.

제도 개선과 더불어 계속운전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이뤄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탈원전을 추진하며 계속 운전에 부정적이었던 문재인 정부로 인해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가 계속운전을 추진할 동력을 잃었다가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원전 생태계 복원 정책이 확정되고 나서야 한수원은 부랴부랴 계속운전을 준비했다. 오락가락하는 정부 정책 탓에 허가 신청이 늦어진 것이다. 

한 원자력 전문가는 “전 세계 가동 중인 원전 439기 중 233기(53%)의 계속운전이 승인되고 177기(40%)는 계속운전이 이뤄지고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허가가 갱신되고 있다”며 “유독 우리나라가 정치적 이념 대립 등으로 계속운전에 방해를 받고 있는데 원전 가동은 AI 시대를 맞아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제때 대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은 인식하고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창현 한수원 안전연구소장은 “한빛 1호기가 1년을 멈추면 4000억원 정도 손실이 나고, 현재 기준으로는 최대 1조원까지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며 “향후 5년 동안 원전 10기가 멈춘다면 손실금은 10조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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