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로 끌고 부정선거 의혹 '성동격서'
계엄군 사전투표 명부 관리 서버 촬영
與, 이재명 집권 플랜 우려 탄핵 반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당시 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선관위 시스템 서버를 촬영하는 장면이 담긴 CCTV를 6일 공개했다. /연합뉴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당시 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선관위 시스템 서버를 촬영하는 장면이 담긴 CCTV를 6일 공개했다. /연합뉴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1300만 관객으로 최근 청룡영화상을 받은 영화 <서울의 봄>이 2024년 12월 3일 '서울의 밤'으로 재현됐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45년 만의 비상계엄령 발동으로 한밤중 국민은 불안에 떨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발표 이후 모든 언론의 시선은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국회로 향했다. 하룻밤에 역사가 뒤바뀔만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경찰의 느슨한 국회 출입 통제와 계엄군의 늦은 의사당 진입 및 의원 체포 미실시로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돼 사태 주도권은 국회 쪽에 완전히 기울었다.

결국 실패한 국회 봉쇄는 이목을 끌기 위한 '성동격서' 전법이 아니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무장한 계엄군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국회(280명)보다 더 많은 297명이 투입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계엄군은 과천 청사, 관악 청사, 선거연수원으로 각각 와서 야간 당직자 등 5명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점거했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지 6분 만인 3일 10시 30분에 과천 소재 중앙선관위 청사에 계엄군 10여명과 경찰 10여명이 도착했으며 11시 50분쯤에는 경찰 90여명이 왔다. 그로부터 또 1시간 뒤인 4일 오전 0시 30분에는 계엄군 병력 110여명이 증원되어 청사 주변에 배치됨으로써 계엄군이 과천 청사(120명)·수원 선거연수원(130명) 및 관악청사(47명)로 진입해 출입 통제와 경계 작전을 실시했다.

12·12 쿠데타 때도 선관위는 장악하지 않았다. 선관위는 권력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쿠데타 목적이라면 굳이 300명에 달하는 무장 병력을 보낼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계엄군은 선관위를 단순히 장악한 게 아니라 특정 부서를 처음부터 노리고 들어가서 특정 자료를 목표 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계엄 사태를 주도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부정 선거 의혹과 관련한 증거 확보를 위한 것이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뜻"이라고 밝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이 공개한 CCTV에 따르면 실제 계엄군은 사전투표 명부를 관리하는 통합명부시스템 서버를 비롯해 보안장비가 구축된 컨테이너 C열 서버, 통합스토리지(저장장치) 서버 등을 촬영했다. 박정현 민주당 의원은 "선관위 내부 CCTV로 확인된 계엄군의 전산실 진입 시각은 22시 31분으로 확인됐다. 대통령 계엄 선언 발표 종료 2분 만에 계엄군이 선관위 전산실이 위치한 2층에 진입한 것"이라며 "이는 사실상 대통령의 계엄 선언 이전부터 계엄군이 선관위 진입을 준비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비상계엄의 1차 목표는 선관위가 아니었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게 된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5일 페이스북에 "저와 아크로비스타에서 처음 만난 날 '대표님, 제가 검찰에 있을 때 인천지검 애들을 보내서 선관위를 싹 털려고 했는데 못 하고 나왔다'가 첫 대화 주제였던 사람이 윤석열 대통령 아니냐"라고 했다.

전광훈 목사가 2023년 11월 2일 오전 서울 사랑제일교회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광훈 목사가 2023년 11월 2일 오전 서울 사랑제일교회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비롯한 극우 단체는 지난 4월 총선에서 야당이 192석을 얻게 된 건 부정선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도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극우 단체는 선관위 과천청사 내 정보관리국 산하 통합관제센터를 수사 대상으로 지목했다. 실제 이곳을 털어서 부정선거 증거를 찾아내고 이를 통해 선거 결과를 엎으면 일거에 야당의 국회 장악을 무너뜨릴 수 있는 카드가 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는 의심이다.

여론조사 기관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계엄군이 선관위에 간 걸로 봐서 황교안, 민경욱 등 극우 유튜버들이 이야기하는 부정선거 의혹을 대통령이 믿은 게 아닌가 싶다"며 "4월 총선이 크게 질 선거가 아니었는데 부정선거 때문에 졌다는 인식과 맥이 닿아 있기에 장악하러 간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극우 유튜버는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도 깔려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선관위 관악청사에 있기 때문에 장악 대상이 된 것"이라며 "그런데 계엄이 해제돼 버리면 그 자료를 갖고 나와도 불법 취득이 돼버리잖느냐. 전산실 집계 프로그램은 몇 번 검증이 된 건데 거기 뭐 새로운 게 나올 게 있을까 잘 모르겠다"고 했다.

선관위 작전은 극비리에 진행됐다.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선관위에 병력이 투입된 줄도 몰랐다"고 증언했다.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은 “계엄군에 의한 내부 자료 반출은 없었다”면서도 “추후 피해 여부를 지속적으로 면밀하게 확인하고 점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계엄군이 선관위에서 찍은 사진 외에 확보한 자료가 있다면 어디로 가져갔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윤 대통령이 방첩사령부에 자료 조사를 지시해 그 결과를 정국 흐름의 반전 카드로 삼으려는 건 아닌지 궁금증이 모아진다. 만약 이런 의심이 사실이 아니거나 원하는 자료 확보에 실패했다면 윤 대통령 다음 수순에 따라 유추가 가능하다. 하지만 국회 탄핵안 표결을 몇 시간 앞뒀음에도 추가 대국민 담화는 없는 상태다. 

현재로선 그야말로 즉흥적이고 충동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말이 되는데 평생 검사로 법을 다룬 윤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계엄을 선포했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막판에 히든카드가 공개되면 사태를 이해하는 퍼즐이 맞춰지는 셈이다.

앞서 광화문 인근은 11월 한 달 내내 ‘정권 규탄’ 집회와 ‘정권 지지’ 집회 두 개로 갈라져 있었다. 전광훈 목사의 자유통일당은 지난 토요일 동화면세점과 교보문고 광화문점 등 앞에서 집회 계획이 있었으나 취소했다. 부정선거 의혹을 파헤치라는 최후통첩 때문이었다. 이 세력이 물러나 진보 좌파 세력에 자리를 내주면 윤석열 정권은 김건희 특검, 명태균 상설 특검, 채상병 국정조사 등과 맞물려 2016년 촛불집회를 되풀이로 직면할 위기였다. 선관위를 장악한 계엄 이후에는 전광훈 목사 측이 광화문 집회를 재개했다.

윤 대통령은 탄핵이 안 될 거로 예측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상계엄 하면서 절차를 지켜서 추후 내란죄 혐의를 다툴 명분을 쌓아뒀다. 국회 통고는 정식으로 안 했지만 대국민담화 생중계 행위 자체가 통고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사퇴 촉구 탄핵 추진 비상시국대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비롯한 야당 의원과 참가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사퇴 촉구 탄핵 추진 비상시국대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비롯한 야당 의원과 참가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이 하야하거나 탄핵당하면 바로 조기 대선으로 가서 현재 가장 유력한 차기 주자인 이재명 대표가 당선될 게 뻔하기 때문에 여당 내 친한계도 탄핵에 동조 못 할 거라고 계산하는 상태로 보인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여당 중진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한동훈 대표 말(직무 정지)에 동의하는 중진 의원들이 있었냐'는 질문에 "거의 없었다"며 "우린 (탄핵 반대에) 한마음 한뜻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요건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 재적 의원 3분의 2(200석) 이상 찬성이다. 현재 범야권은 192석으로 여당 의원 8명의 이탈이 필요하다. 안철수, 조경태 의원이 탄핵 찬성을 밝힌 가운데 친한계 6명의 동조가 없으면 탄핵안 통과는 불가능하다.

현재 야당이 본회의에 보고한 탄핵안은 급조된 탓에 허술한 내용도 담겼다. 여당에 반대 명분을 내줘서 1차 부결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본지 관련 보도: [깐팩] 야당의 윤 대통령 탄핵안에 담긴 5가지 '가짜뉴스')

탄핵안이 가결돼도 헌법재판소가 3분의 1이 공석인 6인 체제이다. 심판 정족수 조항은 '탄핵 결정을 하는 경우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정한다. 규정대로라면 6인 체제에서도 만장일치로 찬성만 한다면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9인이 아닌 6인의 재판관이 내린 결론에 대해 정당성 논란이 뒤따를 수 있다. 현재는 야당 몫 2명과 여당 몫 1명이 추천된 상태로 이달 말 청문회를 진행하고 본회의 처리까지 마치면 연내 9인 체제 복귀가 가능할 전망이다.

국회에서 선출한 헌법재판관도 헌법 제111조에 따라 임명은 대통령이 해야 하는데 윤 대통령은 탄핵안이 가결되면 직무가 즉시 정지되므로 한덕수 국무총리가 임명하는 것에 적절성 여부를 다툴 여지가 있다. 다만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이 대법원장 몫으로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한 사례가 있다. 이 상태로 시간을 끌면 이재명 대표가 1심에서 징역형을 받은 선거법 위반 사건 2심과 3심이 5개월 내 이뤄질 것으로 기다릴 수 있다. 

한덕수 총리는 윤석열 정권과 운명 공동체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최규하 전 권한대행이 야당에 정권을 내주는 선택을 하지 않은 것처럼 중요한 국면에서 여권에 유리한 편에 서서 버틸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황교안 전 권한대행도 최순실 특검 연장 승인을 거부했다. 부정선거 자료 조사 결과가 탄핵 후 늦게 나오더라도 한 총리가 있을 때 공개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탄핵안이 부결되더라도 즉각 재발의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중에는 다시 제출할 수 없으므로 정기국회 회기가 끝나는 10일 이후 임시국회를 소집해 탄핵안을 다시 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으로선 친윤계 주도로 전열을 재정비할 기회를 얻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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