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영의 부국강병]
미국 더 이상 '큰 형님'이 아냐
한국도 독자적인 길 모색하고
중국 러시아와도 잘 지내야
최근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이 지구의 이쪽저쪽을 들쑤셔서 모두를 당황하게 하고 있다. 이웃 국가인 멕시코와 캐나다까지도 관세 폭탄을 퍼붓고 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에도 추가 관세를 물려서 강하게 견제하려 한다. 전통의 동맹, 유럽 연합과 한국도 방위비를 대폭 올리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큰형님’ 노릇을 하던 과거의 점잖고 통 큰 미국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도 과거 소련 시대에 광활한 영토를 지배하던 강국의 모습이 아니다. 위성국가들이 독립하여 영토가 대폭 축소되자 조바심에서 서방으로 경사되는 우크라이나를 침공, 국력을 소진하면서 초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의 막강하던 ‘불곰 러시아’가 아니다. 우크라이나 하나도 쉽게 제압 못 하는 허약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도 미국에 맞먹는 강국으로 발돋움하려 군사력을 대폭 확충했다. 그러나 내수 부진과 부동산발 경제 부실이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 와중에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로 주변국들에 불안한 중국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다.
세 강국의 현재 모습은 과거 냉전 시대와 같이 상호 균형을 이루던 그런 모습이 아니다. 무언가 불안하고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힘의 균형이 흔들리면서 국제질서 재편의 조짐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닐까 한다.
엄중한 시기에 한국은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로 자중지란의 혼란 속에 있다. 그로 인해 외부 변수의 격랑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다.
걱정스러운 것은 미국이 과거와 달리 ‘든든한 큰형님의 자세’를 벗어 던진다는 데 있다. 트럼프가 취임하면서 전혀 다른 미국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우리도 과거와같이 안보를 미국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던 습관을 버리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볼 것 같다.
우리 역시 반성하고 자각해야 할 점은 있다. 한국도 과거의 한국이 아니다. 그런데도 ‘다른 나라의 뒤에 숨어서 가는’ 소국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제는 중견 강국이다. 다른 나라들이 그렇게 보고 있다. 좀 더 자긍심을 가지고 급변하는 국제질서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당당함을 가져야 한다. 미중러 같은 강국은 아니어도 국제질서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책임도 질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방향으로 우리의 위치를 다시 정립해야 할 때이다.

일제 식민지, 625전쟁,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군사 독재 시대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성장 시대를 거쳐서 이제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 또 K컬처로 문화면에서도 강국이다. 다른 나라들이 한국을 ‘과거의 작은 나라’로 보지 않는다. 다들 경이로운 눈빛으로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우리만 자신을 과소평가하면서 경제나 안보를 다른 나라에 의존하려 하면서 아직도 ‘강국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왜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미국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통의 우방인 일본과 유럽에도 안보를 보장받으려면 ‘돈으로 계산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미국이 동맹국들을 품고 가던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더 이상 안보를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니, 형님 왜 그래' 하면서 붙잡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만큼 미국도 이제 먹고 사는데 여유가 없는 듯하다.
따라서 미국만 바라보던 안보 구도가 흔들린다면 이를 탈피하는 대전환을 시작해야 한다. 즉 안보 위협의 대상이었던 중국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이제 그런 전환점에 와 있다고 판단된다. 한반도는 4강의 힘이 부딪치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이다. 70여 년간 미국이 한반도의 이런 이점을 독점하는 대신 안보를 책임져 주었다.
그렇다면 한국도 이런 지정학적인 특혜를 미국에만 주면서 안보를 구걸할 이유가 없어진다. 또 다른 이웃 중국, 러시아와 잘 지내면 된다. 과거와 달리 한국이 독자적인 스탠스를 취하게 되면 북방에서 오는 안보 리스크는 대폭 줄어들게 된다. 불가피하게 우리도 이런 균형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미군의 한반도 주둔은 실상은 중국과 러시아 견제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큰돈까지 내라고 한다면 그건 계산이 전혀 안 맞는다.
한국은 이제 외부 요인만 탓하기보다 스스로 ‘우리는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예일대학의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Timothy Snyder)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또 “한국이 상당히 중요한 큰 나라가 됐지만 정작 한국민은 이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 긍정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꼭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한국은 경제력 세계 10위권, 군사력 5위권, K컬처 문화강국으로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중견 강국으로 발돋움했는데도 ‘이거 좀 도와주세요. 저거 좀 도와주세요’ 하며 남의 도움이나 받고 의존하려는 자세는 창피한 짓이다. 빨리 탈피해야 한다.
대신 국제사회에서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뚜렷이 재정립해야 한다. 그 방향은 우선 안보 면에서 미국 의존적인 자세를 탈피하고 북방과도 좀 더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이다. 경제면에서도 미국과 중국에 집중하는 대신 유럽, 중동, 아시아와 남미 대륙의 다른 국가와 수출 다변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가일층 국제 정치와 경제 관계에서 자신감 있는 나라로 일대 전환을 시도해야 할 때가 왔다. 그저 ‘미국 뒤에 숨어서 가는’ 나라로 머물러서는 미래가 없다.
대한민국, 다른 나라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이것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안일한 자세이다. 미국에 안보를 전적으로 의존하던 소극적인 자세는 이제 버리자. 독자적인 새로운 길을 모색하자. 그런 뜻에서 ‘제3의 길’을 걷자고 한 것이다. ‘제3의 길’은 보통 실용적이고 중도적인 노선을 말한다. 그 길을 걸으려면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줄도 알아야 한다.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국제사회에서 스스로 큰 그림을 그려 나가는’ 그런 나라가 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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