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시댁서 명절 손님을 정성껏 맞는 딸은
돈으로 보상받으며 명절 증후군 날려
친정은 차례 없애고 가족 간 친목 모임
명절을 어떻게 보낼지는 선택의 문제

오늘 올라온 칼럼을 읽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꿈이 생각난다. 지독히도 술을 좋아하다 먼저 떠난 남편은 나의 무의식 속 그리움인지 가끔 꿈에 나타난다. 꿈속에선 현실처럼 선명하지만 막상 깨고 나면 두서없는 글처럼 흔히 말하는 개꿈인 셈이다. 그래도 그런 꿈을 꾼 후엔 그날의 남편 모습에 따라 아이들에게 안전을 당부하기도 하고 때론 복권을 사기도 한다.
그날은 큰 잔칫상이 차려진 곳에 나도 한쪽에서 구경꾼들과 서 있는데 저 멀리서 남편이 숟가락을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자리를 찾는 듯했다. 나를 보면 반갑게 소리치며 손을 잡고 끌어당길까 봐 얼른 숨었다. 그리고 잠이 깼다. 하루 종일 찝찝해서 반성 기도를 많이 한 기억이 난다.
그해 추석에 시댁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꿈 이야기를 했더니 시동생이 하는 말,
“흐흐, 우리 형님은 천국 밥상에서도 술을 찾고 다니시네요.” 그런다.
그런 건가? 우울한 기분이 허튼 말 한마디에 개운해졌다.
추석 다음 날인 8월 16일은 남편의 기일이다. 그의 소원대로 군위 가톨릭 묘원 장인·장모님 옆에 안치되었다. 떠나기 3시간 전까지 대화를 하며 편안한 모습으로 헤어져서인지 나는 가끔 살아있는 사람 방문하듯 좋아했던 소주 한 병 들고 가 푸념을 떨다 오곤 한다. 부모님까지 계시니 더 좋다. 잘 조성된 공원묘지를 산책하듯 휘~돌아 나오면 우울했던 기분도 풀린다.
나는 시댁이 집성촌이라 가가호호 인사 다니며 차례 지내던 명절 의식을 오랜 시간 치러오다가 남편이 떠난 후 자유인이 되었다. 그러니 명절의 특별한 모습은 없다. 추석 인사를 하는 친척들에게 "명절날만 빼고 언제든지 오세요"라고 말한다. 명절 당일만 아니면 보리밥에 된장찌개, 라면에 김치를 내놓아도 흉이 안 된다. 명절이면 성당이나 산에서 합동으로 치르는 미사에 참례해 예를 갖춘다.

내가 가장 힘들고 고달팠던 시절이 3, 40대였는데 딸도 어느새 40대 중반이다. 사돈 내외는 평생을 땅을 일구며 살아온 농부다. 해마다 순조롭게 마무리하는 농사와 자식들의 건강과 안녕을 감사하며 명절이면 3대신(성주신, 삼신할미신, 조왕신)들께 드리는 차례상을 올린다. 자연에 순응하며 소박하게 사시는 부모님의 기도에 존경과 감사의 표시로 더 정성을 다한다는 딸이 대견하다.
시어른들이 고령이니 명절에는 특히 더 많은 친척과 지인들이 인사하러 들른다. 당일엔 한 끼 밥상을 다섯 번도 넘게 차리고 술상은 시도 때도 없이 차린다며 사위가 고마워한다. 딸은 어릴 적 부모를 따라 낯선 사람들과 여기저기 몰려다니던 기억이 좋았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많은 손님을 웃는 얼굴로 맞이하고 시부모 기 살려주니 며느리가 고맙고 기특하셨나 보다. 그분들은 귀가하는 며느리를 불러 꼭 안고 애썼다 토닥토닥하시며 당신이 받은 엄청난 용돈을 봉투째 다 찔러 주신다. 내 생각엔 이것이 소통인 것 같다. 돈으로라도 보상이 따르면 며느리들의 명절 증후군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또한 체험의 시간을 겪어봐야 훗날 내 자식 세대의 명절에 대한 대안과 구상도 나올 것이다.
나의 친정은 제사와 명절을 없애고 가족 친목 모임으로 변경한 지 오래다. 시가도 남편의 꿈 사건 이후 가족끼리 명절을 보내고 일 년에 두 번 1월과 6월 친목모임을 한다. 시동생들이 반대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집안 대표의 결단이 필요한 중대한 일인지라 큰형수인 나의 결정에 모두 적극적으로 반겼다. 조상들도 형식적인 제사보다 형제간의 화목과 사랑을 원하시리라 믿는다.

오늘은 추석이다. 아침에 성당에서 지내는 합동 차례 미사에 참석했다. 잔칫상에 초대받은 꿈에서 본 이들은 합동미사 명단에 오른 영혼들인 것 같다. 남편이 꿈에 나타난 이후 명절이 되면 그에게 초대장을 보낸다. 풍성한 상차림 앞에 적힌 이름표를 보며 이젠 자리 찾아 헤매진 않을 거다.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모든 건 살아있는 자의 주관과 해석으로 결정되는지라 ‘이왕이면 다홍치마', 재미나게 해석하고 즐겁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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