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AI가 함께 놀아주는
즐거운 소풍 길이었지만
마을 노인들 인솔하느라
기억나는 건 화장실뿐

마을 노인회에서 경주 여행을 가기로 했다. 버스 안에서 먹을 간식거리를 싸고 있는데 열댓 명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린다. ‘스마트 마을 방송’이다.
내일 **리 어르신 가을 나들이를 가니 어디 어디 어디로 정해진 시간에 맞춰 나오시라는 연락망이다. 동네 스피커 소리에 온 동네 개가 따라 짖던 시대도 가고, 이제는 각자의 스마트폰이 방송국이 되었다. 어른들에겐 휴대폰이 신기하면서도 두렵다. 아침 날씨가 쌀쌀하니 일찍 나오지 말라고 다시 한번 시간과 장소를 일러 준다.
나는 10년 전 이곳으로 이사 왔다. 낯선 마을 사람들은 홀로 들어온 나를 업둥이 자식같이, 동생같이 안아 주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으로도 은혜를 갚고 싶었는데, 드디어? 나도 고령인의 대열에 끼여 봉사라는 핑계로 함께 밥도 먹고 어울린다. 이번에 소풍을 신청한 어르신 33인 중 아홉 분이 80대이시고 90대도 다섯 분이 계신다. 연령이 연령인지라 인솔 책임을 맡은 나는 전날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길을 잃으면 어쩌나, 사고가 나면 어쩌나, 힘들어하면 어쩌나, 밤을 꼴딱 새운듯한데 알람이 울린다. 7시다. 안개가 자욱한 아침, 미리 주문한 따뜻한 떡을 찾으러 나가는데 윗동네 한 어른이 쌈빡하게 차려입고 길에 서 계신다. ‘9시 출발인데··· 내가 몬산데이~ 추운데 감기 드시면 어쩔라 카누···’ 가슴이 벌렁거린다.
8시 즈음, 혹시나 하고 모이기로 한 세 군데 길목 정류장을 들러보니 벌써 다 나와 계신다. 방송은 들었지만 그냥 나온 거란다. ‘아~ 어쩌란 말이냐’ 노래가 절로 나온다. 버스 기사에게 양해를 구하니 시골을 자주 다녀봐서 알고 있다며 곧 도착할 거란다.
날씨까지 좋으니 입이 귀에 걸린다. 다리가 아파 자주 왕래 못한 이웃과 오랜만에 만나 손을 잡고 흔들며 흥분한다. 짝꿍 손 꼭 잡고, 어쩌고저쩌고··· 출발과 함께 인사와 주의 사항을 떠들어도 귀가 잘 안 들리는 분들에겐 허공에서 왕왕거린다.
“학생들, 다 알아들었지요?~”
“네에~”
마음은 초등학생 목소리에 우렁찬 박수 소리가 응답이다. 그렇게 한 시간을 앞당겨 출발한다.

관광버스인지라 기사님이 고속도로에 오르자마자 차분한 음악을 틀어주신다.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속닥거리는 소리에 분위기를 더한다.
단풍이 절정인 불국사를 들러 우왕좌왕하다가 포항 죽도시장에서 점심을 드시고 다시 우왕좌왕 시장 구경을 한다. 구경만 해도 힘들 터인데 싱싱하고 좋은 생선을 보니 김장 준비에 자식 생각에 찬거리를 잔뜩 사신다.
걷지도 못하면서 장은 또 얼마나 많이 보셨는지 보따리 든 양 팔이 감전된 듯 흔들린다. 한 손엔 어르신을 부축하고 한 손엔 보따리를 건네 들고 느리게 느리게 보조를 맞춰 걷는다. 그렇게 한 장소로 흩어진 어르신들을 찾아 대기시킨다.

이후엔 버스로 드라이브하듯 차창 관광을 하고 저녁까지 먹고 귀갓길, 기사님은 남은 시간을 고령의 분위기에 어울리게 흥겨운 꽃 타령을 트신다.
“기사 양반, 축 늘어진 노랫가락 말고 빠른 걸 틀어봐.”
기분 좋게 취하신 한 어른이 나와 음악이 느리다고 투정하신다.
네~ 네~ 어르신, 얼른 분위기 맞춰 바꾼다. 잠시 후 한 어른이 노래가 너무 빨라 정신없다며 조금 천천히 하는 걸로 바꾸란다.
네~ 네~ 어르신, 다시 바꾸니 조금 후 또 한 어른이 노래방 기기로 바꾸라신다.
네~ 네~ 어르신, 오늘을 위해 미리 적어 온 애창곡 번호를 각자의 주머니에서 꺼낸다. 미처 준비 못 한 어르신이 노래 책을 뒤적이다가 접으시며 글자가 파리똥같이 작으니 고객을 위해 큰 글씨 책으로 바꿔 놓으라고 소리친다. 옛날엔 나훈아 저리 가라 했던 음성인데 목이 잠겨 소리가 안 나오니 마음만 혼난다. 다시 메들리로 틀라는 주문이 이어진다.
네~ 네~ 인상 좋은 기사의 재치로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다가 적당히 남은 시간엔 젊고 상큼한 AI 가수를 불러낸다.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과 노래와 춤으로 정신을 쏙 빼놓는다. 모두 아랫도리는 앉혀놓고 윗몸은 따라 흔들어 본다. 기사님은 버스 내부를 모두 AI시스템화하여 노래가 바뀔 때마다 분위기가 바뀌고 차 안에서도 여행이 되는 컨셉으로 투자했다며 자랑한다.
맨 앞에 앉아 안절부절 겸연쩍어하니 어르신들은 입으로만 떠드셔서 그나마 가장 편한 고객이란다.
“걱정 마세요, 나이 들어보니 몸이 늙은 거지 마음은 아직 청춘입디다.”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불국사도 죽도시장도 화장실만 기억이 난다. 종일 긴장하고 용을 썼더니 내가 감전된 듯 덜덜 떨린다. 어른들 행사에 다시는 앞장서지 않으리라 밤새 뒤척이며 다짐한다.
아침에 대문을 여니 백세가 다 되어 가는 두 어르신이 어제 산 생고등어를 들고 서성이시다가 내 손을 잡고 큰절을 하시는 말씀에 마음이 다시 흔들린다.
“정말 고마워요. 귀신들 끌고 다니느라···.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