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사람 말을 알아듣는 태리가 다녀간 뒤
쫑이도 홈스쿨링 통해 똑똑한 개로 변신
냥이를 싫어하는 이모할머니가 온 그날···
(전편에서 이어짐)
봄이 왔어요. 어느 날 산 너머 사는 쌍둥이 녀석이 할머니 자전거에 실려 놀러 왔어요. 이름이 ‘태리’래요. 태리는 개린이 유치원에 다니며 목욕도 자주 해서 윤이 짜르르 흘렀어요. 매주 옷도 바꿔 입고 머리에 핀도 꽂고 밖에 나갈 땐 할머니 자전거 광주리에 얌전히 타고 동네 구경도 다닌대요.
내 이름은 치즈에요.

할머니 딸이 지어준 건데 올 때마다 아주 사랑스런 눈길로 ‘치즈~’하고 부르며 맛있는 츄르도 챙겨와 먹여준답니다. 그녀가 오면 엄마가 온 거 마냥 행복해요.
우리 집 녀석은 쫑이라 불러요. 태리, 치즈랑 비교하면 촌스럽긴 하지만 동네 할머니 말씀이 귀한 자식일수록 개똥아 하고 부른댔어요. 녀석도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니 귀한 이름이 맞는 거 같아요. 쫑이는 비 오는 날 저절로 샤워하는 거 외엔 정식으로 목욕 한번 한 적 없어서 털북숭이 꼴이랍니다.
태리가 나타나자 쫑이는 새 친구를 만난 듯 신이 났어요. 녀석은 온 마당을 휘젓고 다니며 힘자랑을 했어요. 나도 같이 뛰며 산 너머 형제에게 같이 놀자고 했지요.
그런데 멋지게 차려입은 그 녀석을 마당에 내려놓자 뭐가 두려운지 몇 발짝 걷지도 않고 꽁지를 내리며 할머니 품으로 파고들었어요. 발에 흙 묻히는 게 싫은가 봐요. 아, 교육의 효과인가요? 그래도 어릴 땐 지칠 때까지 뛰어노는 게 신나는 건데···.
태리가 다녀가고 우리 할머니가 변했어요. 사람 말을 알아듣는 태리가 보기 좋았나 봐요. 할머니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으로 쫑이도 홈스쿨링을 하게 되었답니다.

태리같이 정규과정 대신 쫑이는 실용 언어를 배웠지요.
"잡아!"
"그만!"
"장갑 가져와!"
"가위 가져와!"
쫑이는 정말 똑똑했어요. 한 개를 가르치면 두 개를 척척, 습득을 너무 잘해서 할머니의 자랑거리가 되었답니다. 쫑이는 누가 와서 밭 가에 서 있으면 장갑을 물어서 갖다줘요. 방문하신 분들이 일부러 밭 가에 서성이며 배꼽을 잡고 웃는 모습을 보면 똑똑한 쫑이가 자랑스러워요.
때론 도망가는 쥐를 가리키며 "잡아!"라고 명령하면 우리는 합동작전으로 쥐나 두더지 몰이를 성공시켜요. 나는 맛있는 간식으로 보상받을 때도 좋지만 콕 집어서 내 이름을 부르며 칭찬해 줄 땐 나를 더 사랑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느껴요.
저도 교육을 받았냐고요? 음··· 우리는 능동적인 행동으로 해야 할 일에 솔선수범할 뿐 누가 시키는 일은 안 해요.
‘우리는 사람에게 복종 안 한다.‘
언젠가 어느 높은 분이 그러더니만 그 말은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 조상들의 신념이랍니다.
사람들은 교육열도 대단하지만 심리상태도 예측 불가예요. 당신 똥도 누러 가기 힘들다며 만사 귀찮다던 산 너머 할머니는 태리 덕분에 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른대요. 우리 할머니도 그래요. 가끔은 태리처럼 노란 고무줄로 쫑이 머리를 칭칭 묶어주며 안아줄 땐 샘이 나요.
우리는 그럭저럭 할머니의 소망처럼 무위자연을 꿈꾸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답니다.

사고가 난 그날은 이모할머니가 와 계셨어요. 이모할머니는 개를 키워서 그런지 나를 안 좋아해요. 그냥 무섭고 싫대요. 억울하지만 저마다의 성향이니 내가 이해해야지요. 가끔 오래 키운 고양이가 귀신이 된 이야기, 주인에게 버림받은 고양이가 인간으로 변신해 복수하는 이야기를 진짜처럼 하며 내게 눈총 주는 걸 몇 번이나 느꼈어요.
실은 나도 자존심이 있어서 이모할머니 곁을 절대 가지 않아요. 이모할머니가 온 날은 쫑이 기분도 하늘 높이 솟아 은근히 자랑하듯 나에게 깝죽거렸어요. 그날도 미워서 냥 펀치를 날리며 한 판 붙으려다가 참고 할머니께 일렀어요. 내 목소리를 들으면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와 ‘쫑이 그만~’하고 혼내거든요.
“할머니이···. 쫑이가 자꾸 괴롭혀요.”
(다음 회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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