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탄소중립 시대 개막으로
전력수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차일피일 통과 미뤄지는 전력망法

윤석열 정부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두 해를 보냈다. 공약했던 정책 효과가 하나둘씩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솎아내야 하는지 분별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기대했지만 이전 정부와 별반 다를 바 없어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정책들도 거론된다. 출범 3년 차에 진입한 윤석열 정부가 실타래를 풀어야 할 정책 과제가 무엇인지 되짚어봤다. [편집자 주]

 

한 데이터센터 내 구축된 전력망 /한국전력공사
한 데이터센터 내 구축된 전력망 /한국전력공사

인공지능(AI)과 탄소중립 시대를 겨냥해 달리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예상치 못한 ‘전력망 부족’이라는 변수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데이터센터,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산업에 대한 신규 투자,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비약적인 상승 등으로 전력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전력 공급의 ‘모세혈관’인 전력망 건설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16일 여성경제신문이 국회와 정부, 산업계를 종합 취재한 결과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을 위한 법안은 이달 말 종료되는 21대 국회 임기 내 처리가 사실상 무산됐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은 “전력망 특별법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현실적으로 이번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다음 국회인 22대 국회에서 최우선 과제로 상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수립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최대전력은 100.8GW(기가와트)로 집계돼 처음으로 100GW를 넘겼고 2051년에는 두 배가 넘는 202GW로 치솟을 전망이다.

이는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산업에 대한 대규모 신규 투자가 일어나는 현상이 반영된 결과다. 에너지 전환에 따라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는 점도 무관하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4월 AI 기술 분야에서 주요 3개국(G3)으로 도약하고 2030년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10% 이상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AI와 AI 반도체에 2027년까지 9조4000억원을 투자하고 AI 반도체 혁신 기업을 돕는 1조4000억원 규모 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AI 시대 필수 시설인 데이터센터는 일명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린다. 인프라의 규모 자체가 커지는 면도 있지만 AI가 이미지나 음성, 영상까지 포함하는 멀티모달 형태로 고도화면서 전력 사용량이 덩달아 증가하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각국은 AI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앞다투어 전력 설비와 전력망 확충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13년 만에 전력망 규칙을 대폭 개정했다. 관련 사업자가 20년 후까지 내다보고 전력망 건설 계획을 수립해 조속히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게 개정 내용의 핵심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2035년까지 자국 내 송전망을 최소 2배 이상 늘려야 유지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도 남의 일이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수도권 일대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 증설 계획을 발표한 상태로 대규모 전력망 확충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산업부는 “2028년부터 원전과 재생에너지 전력을 송전선로를 통해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업계 한편에서는 벌써부터 불신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정부의 송변전 설비계획이 당초 계획대로 추진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2년 준공 목표였던 동해안 송전망 사업은 이제야 착공에 들어간 상황이다. 이를 고려하면 2028년부터 송전선로를 통해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말에 기업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동해안 송전망이 이제 착공한 상황을 고려하면 고압송전 설비가 육상에 다수 만들어지는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 계획이 원활하게 진행되겠느냐는 의문이 있다”며 “송전망 확충이 만만치 않다면 공장 인근에 발전소를 지어달라는 것이 기업들의 요구인데 원자력 정책 등과 상충되어서 제대로 추진이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우려했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태양광이든 원자력이든 어떤 발전소를 어디에 짓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송전선로를 제때 연결하는 것”이라며 “전력망 적기 구축은 4차 산업 발전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관건이며 국가 백년대계인 에너지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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