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중재자 나섰지만
韓 "첫술에 배부를 수 없어"
전공의 복귀 명분 살리기 관건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 간담회에 참석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 간담회에 참석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발표와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불거진 의정(醫政) 갈등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갈등을 수습하고자 소방수 역할을 자임했지만 의료 대란을 막기엔 역부족인 모습이다.

전국 의대교수들은 25일 예정대로 사직서 제출에 돌입했다. 교수들은 사직서가 수리될 때까지는 진료하면서도, 외래진료와 수술에 관한 근무 시간은 주 52시간으로 줄일 예정이다.

고려대의료원 산하 고대구로·안산·안암병원의 전임·임상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이날 안암병원 메디힐홀·구로병원 새롬교육관·안산병원 로제타홀에 모여 "부족한 근거와 왜곡된 수치를 바탕으로 추진하는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이에 따른 의료 사태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며 “의대생·전공의와 함께 바른 의료정책으로 향하고자 25일 사직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이날 '빅'5' 병원인 서울아산병원을 비롯해 울산대병원·강릉아산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두고 있는 울산대 의대 교수 430여 명도 사직서를 냈다. 서울대를 비롯해 19개 의대가 참여하는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이날부터 대학별로 사직서를 내겠다고 결의한 바 있다. 

앞서 한동훈 위원장은 전날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단과 회동한 뒤 대통령실에 전공의 면허 정지 처분을 유연하게 처리해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보고받은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수용했다. 그동안 한덕수 국무총리,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이 의료계와 대화에 나섰지만 한 위원장의 첫 행보로 물꼬가 트인 셈이었다.

이에 한 위원장이 절충안을 도출하면 총선에 정치적 호재를 가져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1987년 6·29 선언처럼 여권 2인자인 한 위원장이 극적 타결의 주인공으로 등극하면 총선 리스크인 의료 대란을 불식하고 본인의 국민적 인기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의대 교수 줄사직이 현실화되자 한 위원장은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이라며 “지켜봐달라. 어떻게 한 번에 모든 게 다 끝나겠나”라는 유보적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선거대책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그분들(의료계)도 그동안 입장이 있을 것 아닌가. 한 단체가 아니라 다양한 단체가 있다”며 “의사 선생님들께 시간이 좀 필요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해온 방향성(정원 확대)에 대해선 많은 국민이 동의하고 계실 것”이라면서도 “어떤 방향성을 제가 제시하는 건 혼란을 가져올 거다. 이 문제에 있어 건설적 대화의 중재자로서, 그 문제를 조정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정치의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여당은 의료개혁 장기화에 대한 피로감이 높은 상황에서 총선 전 출구 마련을 모색하고 있다. 관건은 전공의 복귀 명분을 살려주는 것이 꼽힌다. 윤 대통령이 면허정지 처분과 관련해 '유연한 처리'를 당부한 만큼, 당초 예고됐던 26일 처분 강행은 이루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여권 일각에선 국민의힘 안철수 공동선대위원장, 국민의미래 인요한 선대위원장 등 여권 내 의사 출신 인사들을 의정 갈등 중재에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의대 교수들은 정부에 구체적 내용을 가지고 대화에 임하자고 요구했다.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은 전날 한 위원장과 간담회에 대해 "입학 정원은 논의할 가치가 없었다. 정부가 발표한 2000명 증원안은 현재 의과대학에서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저희는 그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의료 위기 상황을 빨리 해결할 수 있길 바란다. 총선 전이면 좋고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고 했다.

한편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9개 환자단체가 함께하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환자의 불안과 피해를 더하는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 장기화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의료진의 빠른 복귀는 물론이고 양측이 환자 중심의 의료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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