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총선 예비후보 검증 작업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든 가운데, 이른바 '자객'으로 꼽히는 친명 인사들이 줄지어 검증대를 통과했다. 비명으로 분류되는 현역 의원 지역구에 친명 자객이 칼바람을 예고하고 있어 공천 갈등은 더욱 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친명 인사로 분류되는 정봉주 민주당 교육연수원장은 검증위 관문을 넘어선 뒤 연일 현역이자 비명계 재선 박용진 의원과 날 선 공방전을 이어오고 있다.

정 원장은 17대 국회 서울 노원갑 의원을 지냈고 MB 저격수로 통했다. 2020년 총선에선 여대생 성 비위 의혹이 해소되지 않아 공천 배제됐다가 2021년 대법에서 무죄를 확정받아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2022년 대선 국면에서 이재명 후보를 돕다가 이번 총선엔 서울 강북을에 출사표를 던졌다. 

정치 거물에 맞서 참신한 정치신인을 맞붙게 하는 ‘자객 공천’은 일본 정계에서 효과를 검증받은 방법이다. 신속하게 잠입해 상대를 쓰러트린다는 당의 전략이다. 정 원장은 사법 리스크를 털어낸 만큼 총선 행보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정 원장의 성 비위 사건은 피해자에 대한 행위가 무죄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다툼의 여지가 남아있다. 정 원장은 성추행 의혹을 보도한 한 인터넷 매체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 등에서 무죄를 받은 것이었다. 민사 판결에서는 "'성추행 사실이 없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정 원장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형사에서는 성추행 여부를 전제로 하지만 민사에서는 돈을 줄 필요가 있냐 없느냐를 따지기 위한 과정"이라며 "성추행 여부는 민사에서 한 얘기를 인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용진 의원은 같은 라디오에 출연해 정 원장을 겨냥 "성 비위 의혹의 3인방, 이 트로이카가 당의 공천 국면을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이면 정말 큰일 난다"며 지도부의 즉각 조치를 요구한 바 있다. 이런 공세에 정 원장은 명예훼손이라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일부 강성 당원들은 박 의원이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며 윤리심판원에 징계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출신 비명계
강북을 2번 낙선 2번 당선

강북을은 박 의원에게 정치적 고향이다. 그는 전북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때 강북으로 전학해 온 이후 쭉 강북 주민이었다. 2000년 29세의 청년 정치인으로 민주노동당 강북을 지구당 위원장을 맡았고 16대, 18대 총선에 도전했다가 낙선했다. 

박 의원은 2012년 민주통합당으로 당적을 바꾼 이후 비로소 큰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고 국정감사에서 유치원 비리를 공론화하는 등 활약하다 2020년 재선에 성공했다.

현재 민주당 내부의 세대교체론인 97세대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이며, 조국 사태 때 다른 목소리를 내는 등 당내 주류 의견에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2021년 대선후보 경선에 나와 4위를 기록하는 등 차기 대권 주자로 주목받기도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23일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이재명 대표의 입장에서 박용진 의원은 위협적인 존재"라며 "586 용퇴론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586과 차별화된 대권주자급이기 때문에 살려두면 두고두고 쓴소리를 가하면서 치고 올라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원장은 강북을에서 박 의원과 경선하면 자신이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21일 JTBC 인터넷 방송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해 "지난 5개월 동안 제 출마 지역구에 대한 당원들의 의사를 물어봤더니 60~70% 정도가 강북을로 가라고 했다"며 "지역 주민 만나봤는데 반응은 '(박용진) 잡으러 잘 왔다'가 대세였다"고 했다.

친명 인사가 지역 연고가 없음에도 비명계 의원 지역구로 옮겨 출마하는 사례가 강북을 뿐만은 아니다. 이수진 의원은 서울 서대문갑 출마를 포기한 지 하루 만에 윤영찬 의원이 출마할 경기 성남 중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김우영 강원도당위원장은 강병원 의원 지역구인 서울 은평을로 출마해 지도부 경고를 받았음에도 검증 문턱을 넘었다.

李 "자객 공천은 언어도단"
친명 줄줄이 검증위 통과

이재명 대표는 당내에서 공천과 관련한 잡음이 끊이질 않자 진화에 나섰다. 이 대표는 17일 당무 복귀 일성으로 "많은 논란이 있지만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통합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정한, 혁신적인 공천을 통해 우리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드릴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 대표는 기자들과 가진 차담회에서 "공정하게 경쟁을 붙이는 건데 왜 자객 공천이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며 "자객 공천은 예전에 일본에서 늙은 정치인들을 떨구려고 미모의 여성 정치인들을 꽂았을 때 유래된 것이다. 자객 공천은 언어도단"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 검증위의 10차에 걸친 검증 과정에서 폭행 등 전과 이력, 1심 실형, 뇌물혐의, 미투 파문 등이 있음에도 '적격' 판정을 받은 후보가 대체로 친명계로 분류된다. 황운하 의원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으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불복해 항소했다. 뇌물·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는 노웅래 민주당 의원도 적격 판정을 받았다. 대장동 의혹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도 마찬가지로 적격 판정을 받았다.

민주당 원로인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19일 MBC 라디오에서 당내 분열상과 관련 “이재명 대표와 당 지도부가 더 노력해야 한다”면서 당 통합과 공정한 공천에 힘써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