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금리 인하 시사
인플레이션 우려→침체·실업 방어 전환
美 소비 불씨·중국과 유럽 회복이 관건
조기 금리 인하 시 '리플레이션' 부작용

제롬 파월 연준 의장(사진)이 FOMC 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쏟아낸 경제와 물가에 대한 각종 발언은 FOMC 성명문의 피벗 기류를 여러 각도에서 보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AP=연합뉴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사진)이 FOMC 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쏟아낸 경제와 물가에 대한 각종 발언은 FOMC 성명문의 피벗 기류를 여러 각도에서 보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통화정책 결정 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를 지난 12월 13일 공개했다. 연준은 예상대로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 목표치를 5.25%~5.50% 범위로 동결했다. 은행의 연준 예치금에 대하여 지급하는 금리 수준 등 여타 통화정책의 수단에도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FOMC 회의는 2022년 3월 이후에 열렸던 수십 차례 통화 정책회의 가운데 가장 중요한 메시지의 변화를 동반했다. 향후 통화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연준의 메시지는 FOMC 결정을 공식적으로 언론에 발표하는 성명문(statement)과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구체화한다.

우선 FOMC 성명문을 보면 경제와 정책에 대한 연준의 입장에 세 가지 큰 변화가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지난 11월 초 FOMC 성명문에서 연준은 미국경제가 강한 성장세를 보인다고 평가했으나 이번 FOMC 성명문에서는 경제 성장세가 둔화했다고 서술했다.

둘째로, 지난 FOMC 성명문에서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은 상태라고 평가했지만 이번 성명문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지난 1년간 완화되었다고 기술했다.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은 상태라는 문장을 반복했지만, 그 앞에 완화(eased)라는 문구를 의도적으로 끼워 넣었다.

마지막으로, 성명문에서 언론의 눈길을 사로잡은 한 단어가 있었다. 영어 원어민 구사자가 아니면 알아채기 어려운 미묘하지만 중요한 뉘앙스의 차이를 주는 단어였다. 지난 성명문들과 같은 단어들이 연준의 정책 입장을 설명하는 문장에 상투적으로 나열된 가운데 새로 추가된 ‘any’라는 단어 하나가 파문을 던졌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율의 목표치인 2%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추가적 정책의 범위를 결정함에 있어서 긴축정책의 영향과 정책 효과의 시차 등을 고려할 것이라 서술해 왔다. 그런데 필요한 추가적 정책 앞에 문제의 단어인 ‘any’를 위치시켰다. 그 단어는 다분히 “물가를 잡기 위해 더 이상 추가적으로 정책이 필요하다면···”라는 회의적 뉘앙스를 풍겼다.

다시 말하면, 연준이 any를 통해 이제 아마도 추가적 긴축 수단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말은 향후에는 더 이상 금리 인상이 있을 것 같지 않음을 조심스럽게 시사한 것이기도 하다. 즉, 이번 성명문의 문안 변경은 연준 통화정책 방향의 변경을 뜻하는 피벗(pivot)을 강하게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제롬 파월 의장이 FOMC 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쏟아낸 경제와 물가에 대한 각종 발언은 FOMC 성명문의 피벗 기류를 여러 각도에서 보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파월 의장은 연준의 목표가 물가 안정과 완전고용이라는 듀얼 맨데이트(dual mandate, 쌍두마차 명령) 임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러면서 연준이 물가 안정면에서 커다란 성과(progress)를 거두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FOMC 위원과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로 이루어진 연준의 고위 관계자들이 써내는 향후 경제예측요약(SEP)을 토대로 내년 말까지 인플레이션이 2.4%로 내려올 것이라 진단했다.

무엇보다 팬데믹 기간 인플레이션을 견인했던 공급 측면(supply side)에서 물가 상승 압박 요인이 상당히 개선되었다고 평가했다. 가계의 소비지출이 여전히 강력함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공급망의 회복과 팬데믹 기간 일터를 떠났던 상당수 노동자의 일자리 복귀, 그리고 이민 문호 복구 등으로 인한 해외 노동자의 활발한 유입 등이 물가 안정에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미 실업률은 내년 말에 4.1% 안팎까지 상승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그간 연준은 팬데믹 이후 일손 부족으로 인해 만성적 구인난을 보이며 임금 인상 압박에 놓여 있던 고용시장의 불안을 상당히 염려해 왔다.

식을 줄 모르는 강력한 고용시장의 현황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발표될 때마다 연준은 피벗의 가능성을 일축해야 했다. 그런데 파월은 기자회견에서 고용시장이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실업률뿐만 아니라 매우 많은 측면(so many measurements)에서 고용시장이 구인난을 벗어나 더욱 정상화하고 있다고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파월 의장(사진)은 기자 회견 내내 금리 인하나 피벗 선언에는 매우 조심스러웠지만 미국 물가와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표정이었고 자신감이 넘쳤다. /AFP=연합뉴스
파월 의장(사진)은 기자 회견 내내 금리 인하나 피벗 선언에는 매우 조심스러웠지만 미국 물가와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표정이었고 자신감이 넘쳤다. /AFP=연합뉴스

파월 의장은 기자 회견 내내 금리 인하나 피벗 선언에는 매우 조심스러웠지만 미국 물가와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표정이었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면서도 경기 침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여전히 침체의 가능성이 있다고 대답했다.

따라서 FOMC 성명문과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 발언을 종합해 볼 때 연준 내 기류가 인플레이션 우려에서 경기 침체와 실업 증가 방어로 옮겨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준이 실질적으로 정책 방향을 긴축에서 완화로 피벗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연준 앞에는 내년 금리 인하 시기를 언제로 할 것인가라는 커다란 질문이 놓여 있다. 파월의 진단대로 부동산시장 붕괴로 금융위기에 접어든 중국의 수출 물가 급락과 미국 생산자물가(PPI) 하락이 공급 측면에서 인플레이션 완화에 큰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인플레이션이 급격하게 재발하는 현상은 당분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연준이 인플레이션 퇴치의 일등 공신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가계의 소비수요는 여전히 왕성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의 수요 측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율이 하락하는 최근의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 현상은 연준의 업적이라기보다는 경기 침체를 보이고 있는 중국과 유럽을 비롯한 해외 경제 부진이 초래한 어부지리의 측면이 강하다.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낮지만 중국 경제의 소비가 다시 불붙거나 유럽 경제가 침체에서 강하게 탈출하면 인플레이션이 복귀하는 리플레이션(reflation)이 역습을 가할 수도 있다. 연준의 조기 금리 인하는 리플레이션의 가능성을 높이는 불쏘시개로 작용할 수도 있다.

물론 연준이 금리 인하에 나서면 경기 침체의 가능성은 줄어든다. 연준이 더 빨리 금리 인하에 나설수록 침체의 가능성도 그만큼 줄게 된다. 그러나 연준이 침체를 예방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과거 리플레이션의 경험이 있는 연준으로서는 매우 조심스럽게 금리를 인하할 것이다. 결국 연준이 과감한 금리 인하에 나선다면 이는 경기 침체를 확인하는 이벤트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주 가드너웹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퍼먼대학교에서  재무 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