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동서고금]
예수 탄생 피지배층에 위안과 자유
중세교회 염증 유럽인 북미로 탈출
풀뿌리 민주주의가 미국의 DNA로
한국에선 소수에 권력 집중 심화돼

일 년의 마지막 휴일인 성탄절이 왔다. 거리에는 형형색색의 밝은 전등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가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백화점에서 고급 케이크와 와인을 사 들고 종종걸음으로 집을 향하는 직장인과 고급 식당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으로 붐빈다.
그러나 2023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뜻은 흥청망청 유행을 과시하는 당신의 생일을 선물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의 말씀은 온갖 제도적, 관습적 속박 아래 신음하는 핍박받는 다수의 피지배층에게 위안과 자유를 주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하지만 서구 역사는 지난 수천 년간 그리스도를 팔아 사익을 취한 무리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다윗과 같은 지략으로 군대를 이끌어 로마의 폭정에서 이스라엘을 독립시킬 메시아를 고대하던 유대인들은 예수의 메시지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 하여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로마의 네로 황제는 당시로서는 이질적인 유일신을 믿는 하층 기독교인을 검투사의 경기장에서 살해하고 박해하면서 힘을 가진 로마 시민의 인기를 얻고자 했다. 그에 비해 콘스탄틴 황제는 역으로 기독교를 공인해 세계 최강 로마의 국교로 삼으면서 망해 가던 로마를 통합하고자 했다.
자신이 공의회를 주도해 성경을 편찬하고 교회의 수장이 되어 재통합된 로마의 정치와 신앙을 동시에 지배하고자 했다. 그의 바람대로 그가 제국의 수도로 건설한 동서양을 잇는 최고의 도시 콘스탄티노플과 동로마 제국은 1453년 오스만 제국에 망하기 전까지 천년을 넘게 존속했다.
그러나 현재의 이탈리아가 중심이 된 서로마 제국은 서기 500년이 되기 전 게르만인이 중심이 된 야만족의 침략으로 멸망한다. 그 영향으로 고도로 발전했던 고대 로마 문명은 철저히 파괴됐다. 로마의 폐허 위에 야만족은 점차 세력을 확장해 서유럽을 점령했다.
서기 800년 이들은 전혀 신성하지도 않고 전혀 로마와 닮지도 않은 신성로마제국을 건립했다. 구전으로 전하는 관습법에 의존하고 문맹이었던 새로운 제국은 유럽을 통치하기 위해 가톨릭교회의 도움이 절실했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권력은 법령을 장악한 교회의 차지가 됐다.
중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온 진정한 뜻과는 어긋나게 교회법이라는 칼날을 휘두르며 민중을 예속시키고 재산과 권력을 독차지했다. 심지어 재산과 권력을 늘리고자 성지 회복이라는 미명 하에 군대를 일으켜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고 숱한 인명을 희생시켰다.
교회는 자신들이 세운 엄격한 룰에 어긋나게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에게 모두 이단이라는 혐의를 뒤집어씌워 처형하고 재산을 빼앗았다. 이런 중세교회의 전횡에 염증을 느낀 일부 종교 지도자와 군주들이 새로운 교회를 세우면서 유럽은 기나긴 종교전쟁의 질곡에 빠졌다.
그 와중에 종교적, 정치적 탄압을 피해 많은 유럽인이 북미대륙으로 건너갔다. 이들은 자유롭게 교회를 세우고 전도 활동을 하면서 종교의 자유를 누렸다. 자유와 인권은 이들 북미에 건너온 유럽인들의 DNA에 깊이 새겨진 가치가 됐다.
신생 미국이 대영제국과의 전쟁을 통해 독립을 획득한 지 십여 년이 지난 1791년 발효한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종교의 자유, 표현과 출판의 자유, 집회와 저항의 자유를 천명했다. 오늘날 세계 대부분 국가의 헌법에 포함된 이 기본적, 인권적 자유가 최초로 성문화됐다.

미국은 예수가 이 땅에 온 지 1800년이 지나서야 그가 전파한 자유를 힘없는 서민 대중에게 부여한 거의 최초의 나라가 된다. 이런 자유의 전통과 DNA를 가진 미국에서 풀뿌리 민주주의 정신은 모든 정치와 사회제도의 기초가 될 수밖에 없다.
공동체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주는 주요 사안의 결정은 대부분 명망 있는 전문가와 지도급 인사가 참여하는 위원회(committee)를 통해 이루어진다. 회사와 단체 그리고 학교에서는 이사회(board 또는 trustee)라 불리는 조직에서 토론과 표결을 거쳐 주요 의사가 결정된다.
회장 또는 대표라 불리는 힘 있는 한 개인이 온갖 인사권과 경영권을 틀어쥐고 그 개인에게 결재받기 위해 긴 시간을 대기해야 하는 한국의 조직문화와는 운영의 근본부터가 다르다. 한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될 경우 회의와 토론을 해야 하는 시간과 자원이 절약된다.
1인 독재적 조직 운영은 분초를 다투며 의사를 결정하고 밀어붙여야 하는 성장 지상주의 시대의 ‘빨리빨리’ 문화에서는 조직의 효율성을 극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 1인이 합리적 의사결정 능력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조직 전체가 생존을 위협받는 위기에 몰리게 된다.
회의와 토론은 때로는 답답하고 고통스럽지만, 합리적 의사 결정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다수가 모여 토론하고 표결을 통해 결정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비효율적이지만 조직을 흥망의 고비로 몰고 가는 극단적 선택의 가능성을 줄이는 민주적 통제장치다.
그래서 미국에서 제대로 된 조직의 의사 결정은 제대로 된 이사진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회사도 비영리단체도 학교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이사들은 서로를 견제하고 불량한 이사를 솎아내고 견실한 인물을 새로운 이사로 받아들인다.
그 가운데 가장 명망 있고 능력 있다고 다수가 인정하는 인물을 최고 의사 결정자인 CEO로 선임한다. 그것은 정치도 마찬가지다. 조그만 도시의 시장에서부터 대통령까지 밑바닥 주민 다수의 지지와 동의와 승인을 거쳐야 후보가 되고 당선자가 된다.
현대 정치는 정당을 통해 이루어진다. 정당은 거대하고 바쁜 현대사회의 간접 정치제도를 대표하고 상징한다.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양대 정당은 오랜 기간 유권자의 지지를 받아온 정치의 필수 요소이자 정책과 예산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장 중요한 조직이다.
그래서 선거에 나서려면 정당의 공천이 필수적이다. 물론 무소속으로 선거에 나가 당선될 수도 있지만 이는 신인이 하루아침에 유명 가수가 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런데 그런 정당의 공천이 한두 사람의 입김에 의해 좌우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것도 국가 전체의 예산을 심의하고 정책을 토론하고 법률을 결정하는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 공천이 스타 정치인 한두 명의 픽(pick)으로 좌우된다면 그것은 민주적이고 효율적일까? 당연히 민주적이지도 않고 심지어 효율적이지도 않다.
공천심사가 온갖 정치적 이해관계와 정실 관계에 엮여 사천이 되고 말았음을 한국의 지난 수십 년 역사는 똑똑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혹자는 물갈이가 필요하니 정당의 중앙 집중적 공천 제도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물갈이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 자체가 과거의 공천 제도가 실패했다는 반증에 다름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는 정당 공천을 유권자와 주민에게 돌려줄 때가 됐다. 여러 대안이 있겠지만 미국은 프라이머리(primary)라는 예비 선거제도를 시행한다. 정당 후보가 되어 본 선거에 뛰기 전 정당 후보가 되기 위한 선거에 이겨야 한다. 선거 관리도 본 선거와 똑같이 엄격하게 이뤄진다.
그래서 자기 사람이 후보가 되려면 정략이 판치는 중앙정치에서 온갖 술수와 정략으로 살아남아 공천관리위원회를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각지를 돌면서 지원 유세를 벌여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옥석이 가려지고 국가를 빛낼 정치 지도자가 탄생한다. 건국 이래 초유의 경제 사회 위기에 노출되고 있는 한국 정치가 프라이머리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