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물가 하락 호재 연착륙 기대감
미국인 구매력 시들 각종 세금↑
1조 달러 카드 빚 역대 최고치
실직 수당 청구 급증 침체 궤도

새옹지마의 고사가 시사하듯 아주 나쁜 소식도 좋은 귀결로 이어질 수 있다.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불상사가 생겼지만, 그 덕택에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비행기를 놓쳤더니 탈 뻔했던 비행기가 추락하는 경우도 있다.
역으로 오늘의 굿 뉴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는 나쁜 소식이었음이 밝혀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지난 화요일 발표된 10월 미국 소비자물가 지표도 증권 투자자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좋은 소식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소비자물가가 전월과 비교하여 오르지 않았다.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ore CPI)도 예상보다 낮은 0.2% 상승에 그쳤다. 향후 전망도 나쁘지 않다. 10월 물가를 밀어 올린 주된 요인을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주택과 월세(rent) 가격의 상승이었다.
그런데 모기지 금리가 8%를 넘어서면서 주택에 대한 가수요가 꺾였다. 그간 시세 상승과 렌트 수입을 목적으로 주택을 매수했던 기관투자자들도 손해를 보면서까지 집을 내놓고 있다. 주택공급이 부족하다 하여도 이런 추세라면 집값과 더불어 렌트가 서서히 꺾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물가에 그늘을 드리우던 유가와 에너지 가격도 크게 안정되었다. 중고차 가격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속도로 물가가 안정세를 지속한다면 물가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고금리를 고집해 온 연방준비제도(연준)도 정책 방향을 슬그머니 바꿀 듯도 하다.
물가로부터의 이와 같은 호재를 바탕으로 채권 수익률은 크게 내렸고 주가는 초강세 흐름을 지속했다. 한편, 주가는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는다. 지난날의 고금리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주식의 가치가 미래에 창출될 현금흐름의 현재가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주가의 랠리는 연준의 내년 상반기 금리 인하를 예상하면서 이를 주가에 선반영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논리에 힘을 더해주는 지표가 또 나왔다. 미국의 10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월과 비교해서 0.5%나 하락했다.
대개 공장 출하 가격 또는 도매가격인 생산자물가는 소비자물가에 선행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년이 넘게 지속된 인플레이션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서광이 비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연준이 금리까지 인하해 준다면 만사가 순탄할 것도 같다.
그렇게 고강도로 금리를 올렸는데도 주택시장은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 고용시장도 견조하게 버티고 있다. 경제성장률도 5% 부근까지 오르면서 호황을 과시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경기가 좀 나빠진다 하여도 소프트랜딩(연착륙)이 가능하고 골디락스의 재현도 가능해 보인다.
과연 그럴까?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까? 미 경제와 시장은 꽃길을 달릴 수 있을까? 좋은 뉴스의 이면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렇게만 볼 수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최근 미국의 경제성장은 강력한 소비지출이 견인했다. 최근까지 내구재 수요는 1990년대 초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미국인들은 왕성하게 여행을 하고 여가 활동을 즐겼다. 이런 이른바 반드시 구매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사치품∙자동차∙여가 활동∙가구 등과 같은 재량적 소비재(discretionary goods)에 대한 강력한 수요가 미국 경제성장의 튼튼한 버팀목이 되었다.
그런데 식료품∙주택∙이자∙세금과 같이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비 재량적 소비재에 대한 비용이 증가하면서 소비자의 왕성한 구매력이 시들고 있다. 지난 10월 소비자물가 지표에서도 식료품 가격은 두드러지게 올랐다. 거기다 전기세와 각종 공과금도 크게 상승했다.
집값이 고공행진을 지속하면서 집값의 1% 이상을 내야 하는 주택 보유세의 부담도 급증했다. 반드시 들어야 하는 자동차, 주택, 의료 등 필수 보험료도 눈에 띄게 상승했다. 이를 반영해 지난달 소매 판매(retail sales)도 전월 대비 감소세로 돌아섰다.

특히 대형 소매점인 타겟(Target)과 월마트 등도 값비싼 이른바 빅티켓 제품에 대한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들을 포함한 소매점 대부분이 모두 전 분기 수익이 시장 예상을 상회했지만 향후 실적에 대하여 암울한 전망을 내리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또 하나 소비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은 신용카드 채무의 급증이다. 미국 가계의 신용카드 빚은 2008년 금융위기 이전만 해도 3000억 달러 안팎이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의 여파로 카드 빚은 8500억 달러 수준으로 급등했다.
한편, 팬데믹 기간에는 정부의 경기부양 지원금의 덕택에 카드 빚은 7500억 달러 아래로 하락했다. 그런데 경기가 좋다고 하는 최근 가계의 신용카드 빚은 역대 최고 수준을 지속적으로 경신하면서 1조200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평균 금리가 20%가 훌쩍 넘는 카드 빚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가계경제가 뭔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카드론 연체율이다. 카드대출 연체율은 작년까지만 해도 역대 최저 수준이었지만 최근 팬데믹 이전 수준을 뛰어넘었다. 문제는 카드 연체율이 가파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은행 수지에도 큰 악영향을 초래한다.
그런데 고용시장이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는 한 가계 소비는 그런대로 양호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겉으로 견조한 듯 보이는 미국 고용시장도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서서히 바람직스럽지 않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달 초 발표된 고용 지표가 보여주듯 신규고용(non-farm payrolls)도 평균치를 밑돌기 시작했다. 일 년 전과 비교하면 신규고용이 54%나 감소했다. 전체 일자리 숫자 대비 신규 고용률도 팬데믹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무엇보다 실직 수당 청구자 숫자(jobless claims)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주 신규 실직 수당 청구자 수는 예상보다 1만명 많은 23만명에 달했다. 기존 실직 수당 청구자 숫자도 3만명이 늘어 186만명을 돌파했다. 예상과 달리 일자리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실업률은 몇 개월 새 3.9%로 치솟았다. 한번 상승 추세를 잡은 실업률은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추세로 고용시장이 둔화한다면 소비도 크게 위축될 것이다. 소비가 위축되면 기업 실적도 나빠지고 경기도 침체를 면하지 못하게 된다. 좋은 뉴스를 액면 그대로 볼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 숨겨진 진실을 면밀하게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주 가드너웹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퍼먼대학교에서 재무 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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