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동서고금]
아이비리그부터 동부·서부 전국 명문대 포진
텍사스·일리노이·플로리다·워싱턴·오하이오 등
전국구 중심도시 없는 美 ‘주마다 별개 헌법’
수도권 과밀 해소 위해 명문대 집중 해소 必

분권과 다양함의 이면에는 전국에 걸쳐 고르게 분포하는 명문대의 인적 지원이 있다. 한국은 자원과 인재의 수도권 집중이 문제다. 사진은 하버드대학교 교정. /EPA=연합뉴스
분권과 다양함의 이면에는 전국에 걸쳐 고르게 분포하는 명문대의 인적 지원이 있다. 한국은 자원과 인재의 수도권 집중이 문제다. 사진은 하버드대학교 교정. /EPA=연합뉴스

1980년대에 방영된 인기 드라마 <하버드 대학의 공부 벌레들>은 하버드 로스쿨의 강의가 얼마나 철저하게 이루어지는지 실감 나게 보여준다. 이른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통해 교수가 무작위로 학생을 지명해 난해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교수에게 실력 있는 학생으로 인정받는다. 학생들은 밤을 새워 수업을 준비한다. 드라마 속 킹스필드 교수의 날카로운 질문은 무자비하고 잔인하다. 수많은 동료 학생 앞에서 답변에 실패한 학생은 교수에게 욕설을 퍼붓고 싶은 심정이 된다.

이 드라마로 인해 하버드는 우리나라에서 미국 명문대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그 부인 미셸 오바마가 학위를 받은 곳도 하버드 로스쿨이다. 그렇다고 하여 하버드가 로스쿨 가운데 독보적인 것은 아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그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이 공부한 예일대 로스쿨의 명성이 오히려 더 높다.

최근 발표된 US 뉴스 매거진의 로스쿨 랭킹을 보면 하버드는 5위에 처져 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졸업한 하버드 경영대도 마찬가지다. 경영대학원(MBA) 랭킹에서는 시카고 대학이 1위를 차지하고 있고 하버드는 5위에 머문다. 대학 전체의 명성과 전통을 더 잘 반영한다고 여겨지는 학부 랭킹에서도 하버드는 프린스턴과 MIT에 밀려 3위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하버드가 명실상부 최고의 대학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세계 최고 부국인 미국에는 기라성 같은 대학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 대학들 가운데 거의 매번 랭킹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것 자체가 하버드의 강력함을 보여준다.

매년 US 뉴스가 랭킹을 발표할 즈음이면 대학가는 긴장감에 휩싸인다. 이 랭킹은 명성과 평판 위주로 순위를 정해 변동성이 적은 편이지만 가끔 몇몇 학교의 순위가 크게 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US 뉴스는 4000여 개에 이르는 미국 대학 전체를 단일 랭킹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박사학위를 수여하는 연구 중심 리서치 대학인지. 학부생만 모집해 강도 높은 수업에 집중하는 리버럴아츠 대학인지, 아니면 그 중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따라 미국 전체 대학을 내셔널 대학, 내셔널 리버럴아츠 대학, 그리고 지역 대학으로 구분한다.

그 가운데 박사과정 수준의 리서치를 수행하는 내셔널 대학의 숫자는 439개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대형 명문대학들은 대부분 내셔널 대학의 분류에 속한다. 이들은 명문 사립대학과 명문 주립대학으로 세분된다.

208개의 명문 사립대학 중에서도 명문대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언제나 명성이 자자한 것은 아이비리그 대학이다. 미 동북부 지역에 위치해 있으면서 상위 랭킹을 단골로 차지한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유펜, 브라운, 컬럼비아, 코넬, 다트머스 8개 대학이 그들이다.

이 중 규모가 작아 랭킹이 다소 밀린다고 여겨지는 다트머스 대학의 랭킹이 18위다. 이들 대학은 또한 매우 부유하다. 대학 수입에서 각종 운영비용을 차감하고 매년 적립해 온 대학 기금(endowment)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하버드의 기금 총액은 509억 달러(66조원)에 달한다. 미 대학 가운데 기금 규모에서 15위를 차지한 코넬대의 기금 총액도 94억 달러(12조원)다. 영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옥스퍼드 대학의 기금이 13억 파운드(1.7조원)임을 감안하면 이들 명문대학이 얼마나 부유한지 알 수 있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부유함은 주로 동문들의 기부금에서 나온다. 뉴욕 맨해튼을 출발지로 삼아 차로 이동하면 가장 멀리 떨어진 코넬대가 4시간이 걸린다. 하버드가 있는 보스턴도 비슷하다. 예일은 그보다 가깝고 컬럼비아와 프린스턴은 지척의 거리에 있다.

오랜 기간 동문들이 막강한 돈의 힘을 바탕으로 세계 금융을 쥐락펴락했던 월스트리트에 진출하면서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위상도 넘사벽이 되어갔다. 인터넷이 나오기 전 월가에 취업하려면 당일 안에 운전해 가서 면접을 볼 수 있는 아이비리그가 단연 유리했다.

명문 사립대에 아이비리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부의 명문 스탠퍼드, 하버드에 인접한 MIT, 남부의 듀크나 존스 홉킨스 등도 랭킹이나 기금 규모 면에서 아이비리그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 US 뉴스 랭킹에서 스탠퍼드는 톱 5에 든 지 오래고 듀크와 존스 홉킨스도 톱 10에 든다.

물론 대형 명문대 반열에는 227개의 명문 주립대학도 포함된다. 이 가운데 버클리, UCLA, 미시간,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대학은 전통과 연구 면에서 명문 사립대에 버금간다. 이들은 지역 명문을 키우려는 각 주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바탕으로 뛰어난 연구 성과를 보인다.

오히려 사립대를 우대하는 US 뉴스 랭킹에서는 이들 명문 주립대가 과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이들 주립대도 또한 부유하다. 버지니아 대학의 기금 규모는 코넬을 능가한다. 그 밖에도 텍사스, 일리노이, 플로리다, 워싱턴, 오하이오 등 전국에 걸쳐 명문 주립대가 즐비하다.

미국은 전국을 호령하는 중심 도시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다. 한국은 자원과 인재의 수도권 집중이 문제다. 2023학년도 입학식이 열린 서울대학교 정문 앞에서 학부모와 같이 참석한 한 입학생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은 전국을 호령하는 중심 도시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다. 한국은 자원과 인재의 수도권 집중이 문제다. 2023학년도 입학식이 열린 서울대학교 정문 앞에서 학부모와 같이 참석한 한 입학생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한, 한국에는 덜 알려져 있지만 최고의 교육을 원하는 부모가 자녀들을 기꺼이 보내는 명문 리버럴아츠 대학들이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한 최고의 대학 리스트를 보면 톱10 대학에는 프린스턴, MIT 등과 함께 3개의 리버럴아츠 대학이 위치해 있다.

높은 수준의 사고력과 지도자로서 품성 그리고 자녀의 안전을 원하는 부모들은 학생 수와 캠퍼스의 규모가 작은 리버럴아츠를 선호한다. 오랜 역사를 지닌 리버럴아츠 대학은 집안 대대로 자녀를 입학시키는 열성 동문으로 넘쳐난다.

이들 중 다수가 강도 높은 학부 교육을 마친 뒤 대학원에 진학해 전문가나 사업가 또는 학자의 길을 걷는다. 석사과정과 프로페셔널 과정이 있어 지역 대학으로 분류된 대학 가운데에도 뛰어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가 수두룩하게 존재한다.

미국은 전국을 호령하는 중심 도시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다. 워싱턴이 정치적 수도이기는 하나 각주는 또 별개의 헌법과 수도를 두고 일상을 지배하는 각기 다른 법률과 제도를 시행한다. 뉴욕이 금융의 중심지라고 하나 시카고와 샬롯도 선물시장과 대형 은행의 본점을 두고 있다.

이런 분권과 다양함의 이면에는 전국에 걸쳐 고르게 분포하는 명문대의 인적 지원이 있다. 한국은 자원과 인재의 수도권 집중이 문제다.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려면 정부와 공공기관이 아니라 생산을 담당하는 기업의 집중이 해소돼야 한다. 그러려면 기업이 원하는 인재의 집중이 해소돼야 한다. 명문대의 수도권 집중 현상이 우선 해소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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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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