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동서고금]
룰 중시하는 美 교육 스포츠 열광 기인
체육 중요 과목 분위기 부정행위 안 해
명문대학 대원칙 중시 韓 세부 원칙 무시
인간답게 사는 규칙 잊어 법치마저 경시
전세 사기·주가조작도 규칙 도외시 결과

미국 넷플릭스의 인기 시트콤 드라마 <영 셸든>의 배경은 미국 남부 텍사스의 어느 조그만 시골 마을이다.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는 고등학교 풋볼팀의 감독이다. 단란한 가정에는 큰아들이 있고 밑으로 아들과 딸의 이란성 쌍둥이가 있다.
쌍둥이 가운데 남자아이 셸든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나이가 아홉 살인 이 아이는 때로는 천진난만하다. 그러나 그는 아인슈타인에 맞먹는 천재적 두뇌를 가지고 있다. 이런 천재 소년을 아들로 둔 셸든의 부모는 무척이나 행복할 듯하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셸든의 어머니는 항상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다. 너무나 실력이 뛰어나 중학교를 뛰어넘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들에게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이 어머니가 좌불안석인 이유는 비단 아들이 어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들은 실험한답시고 냉장고를 고장 내기 일쑤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항상 100점만 맞아오고 미 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나 유명 물리학 교수와 토론을 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아들이 냉장고를 고장 냈다면 한국의 부모는 어떻게 할까?
아마도 그까짓 냉장고가 대수겠냐며 아들이 공부에 흥미를 잃지나 않을까 더 염려할 것이다. 그러나 셸든의 부모는 단호하게 “네가 냉장고를 고장 냈으니 아르바이트해서 수리비를 벌어 오라”라고 냉정하게 지시한다.
어린 셸든은 조그만 몸으로 폭우가 내리는 밤에 신문 배달을 하느라 낑낑대고 이 모습을 또 어머니는 무척 불안한 눈길로 바라본다. 하지만 부모가 대신 신문을 배달해 주지는 않는다. 바로 미국 중산층 부모의 자녀 양육(parenting)은 철저히 규칙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가 아주 어릴 때부터 귀가 시간이나 TV 시청 등 지켜야 할 규칙(룰, rules)을 명확하게 정하고 알려준다. 아이가 수업을 빼먹고 놀러 간다든지 하면서 룰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벌칙을 가한다. 이를 ‘그라운드에 처한다(grounded)’고 한다.
아이가 그라운드에 처하는 벌을 받게 되면 외출이 금지되거나 TV 또는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기본예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예의에 어긋나는 언어를 사용해도 어김없이 그라운드가 뒤따른다. 이런 룰에 기반을 둔 가정교육은 학교로 이어진다.
미국 학교의 교장은 대개 젊다. 교장은 각종 행사나 잡일을 돌본다. 또한, 룰을 위반한 학생을 불러 훈계하고 처벌을 직접 내리는 것도 교장이다. 이런 교육을 제대로 받고 대학에 진학한 미국 학생들은 룰을 치켜야 한다는 생각이 체화되어 있다. 감시를 제대로 하지 않아도 대개는 부정행위를 할 엄두를 내지 않는다.
미국 교육이 룰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데에는 스포츠도 큰 몫을 한다. 미국 학교에서 체육은 매우 중요한 과목이다. 대부분의 학교가 학생들에게 반드시 한 가지 이상의 스포츠팀에서 활동하도록 요구한다. 방과 후 아이들은 감독과 코치의 감시하에 엄격하게 훈련하고 다른 도시를 여행하면서 경기한다.

대학 입시에서도 체육활동을 제대로 했는지는 중요한 평가 항목이다. 풋볼(미식축구)과 같은 어려운 스포츠팀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한 학생은 강한 리더십과 정신력을 갖추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스포츠 경기는 규칙 위에서만 시행이 가능하다. 스포츠팀에서 강한 단련을 받으면서 체력이 향상되는 동시에 법치에 대한 존중 의식이 커진다.
룰에 대한 존중은 책임 의식의 증진으로 이어진다. 내가 잘못을 저질렀으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 않고 깔끔하게 인정하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 회사든 학교든 가정이든 명확한 룰과 책임이 확립되어 있으면 보상의 기준이 명확해져 불만이 적어진다.
반면, 모호한 원칙에 기반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사회에서는 법치가 경시되고 구성원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저하될 가능성이 커진다. 예를 들어 학업성적이 우수해야 한다는 원칙이 중요한 교육의 목표로 제시되었다고 하자.
부모와 선생님은 이 원칙을 달성하기 위해 아이들을 공부에 내몰고 때로는 혹사하기까지 한다. 명문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대원칙에 봉사하기 위해 다른 중요한 세부 규칙들은 무시된다. 아이들도 그 원칙에 동참하는 한 다른 룰들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훌륭한 시민의 품성을 갖추기 위해 요구되는 예절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는 부차적이고 케케묵은 가치로 전락하게 된다. 학교나 가정이 큰 원칙에만 매달리다 보니 일상의 사소한 규칙 위반은 대부분 눈 감아준다.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배려심도 약해진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문제 되는 전세 사기나 주가조작도 이런 원칙 숭배와 규칙 무시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돈을 버는 것이 최고라는 원칙이 광범하게 받아들여지면서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타인의 이익을 짓밟고 법을 어겨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

중국의 고전인 삼국지나 초한지에는 온갖 사기와 협잡이 판치고 수십만의 생명을 희생시키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모습이 종종 나온다. 과거 독일의 나치가 수백만의 유대인을 희생시킬 때도 마찬가지다.
바로 대의 또는 큰 원칙이라는 미명 하에 민주적 질서와 인간답게 사는 규칙들을 깡그리 무시했기 때문이다. 최근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사회에 대한 불만도 같이 고조되고 있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 바탕이 되는 규칙들을 하나하나 재정비해 나가야 할 때다. 국가가 나서지 않아도 배려와 도움이 넘치는 분위기가 가장 튼실한 사회안전망인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