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원의 성과 인권]
29살 '최미래'가 어느날 '최악의 미래'로
답을 모르겠으면 문제를 없애라구?
<십개월의 미래>는 2021년 만들어진 인디영화이다. 미쟝센 단편영화제 최우수상 출신인 남궁선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여기서 ‘십개월’은 임신 10개월을 의미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미래’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는 한순간도 생각해 보지 않은 여성이다. 영화에서는 그런 그가 임신하면서 겪게 되는 세상을 향한 질문과 마음의 갈등 등을 그렸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면서 그의 배는 점점 더 불러오게 되고, 38주는 현실이 돼 갔다.
여성들이 겪는 임신은 보통의 여자라면 당연히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으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임신이라는 현실이 한 여성의 삶에 얼마나 큰 사건으로 여겨지는지를 잘 그려놓았다. 아이가 이미 성인이 된 나로서는 내가 그 당시 느꼈을 법한 당황스럽고 왠지 불편했던 과거의 세포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으로 영화에 몰입하게 됐다.
주인공인 ‘최미래’는 예상치 못하고 있다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미래는 친구를 찾아가 임신이 판명된 임신테스트기 15개를 펼쳐 놓는다. 이 장면은 임신이라는 사실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얼마나 청천벽력 같은 일인가를 짐작하게 한다.
미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갔으나 때려치우고 나와 ‘세상을 바꿀 프로그램 개발자’로서의 꿈을 펼치기 위해 스타트업 계약직 사원으로 일한다. 직장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미래의 노력 덕분에 회사는 중국의 투자를 받게 되면서 중국으로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투자를 받기까지 ‘1등 공신’인 미래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사장에게 말하자 사장은 미래에게 화내며 계약 해지를 통보한다. 지금까지 쌓아 온 커리어는 임신으로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한편 미래의 남자친구 윤호는 미래의 임신을 계기로 미래와 결혼하고 싶어 하지만 사기를 당한다.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아버지가 하는 돼지농장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채식주의자인 윤호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자신을 마치 아기 다루듯 하는 엄마,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의 먹이가 될 돼지를 사육하는 일이 늘 고욕이었다.
윤호의 아버지는 윤호가 가업을 이어 농장 일을 이어받길 바란다. 그래서 결혼하면 미래가 시골의 돼지농장에 와서 시부모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윤호마저 자신을 이해할 만한 마음의 여력이 없는 것을 알고 미래는 결혼을 포기하고 아기를 홀로 키우기로 마음먹는다. 임신으로 인해 벌어지는 이런저런 혼돈 속에 미래의 배는 불러 가고 10개월은 지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미래는 임신으로 인해 온 세상이 달라졌다. 자신은 아이를 가졌을 뿐 몇 개월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그냥 같은 사람인데 주변 사람들은 자신을 이상하고, 나쁘고, 비정상으로 취급한다고 친구에게 말한다.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아이를 선택해야 하나? 실제 이 선택이 그리 쉬울까?

그간 매달려 온 삶의 끈들을 잘라낸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갈등을 겪고 있는 미래를 향해 남자친구인 준호는 마치 모성조차 없는 잔혹한 사람으로 대하며 ‘엄마’의 죄책감, ‘모성 신화’를 강조한다. 준호는 미래가 임신 함으로써 자신과 아이가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함을 당연하게 여긴다.
임신과 출산은 누구에게나 행복이고 축복인가? 누군가에게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일 수 있지만 미래처럼 누군가에게는 준비되지 않은 청천벽력이 되기도 한다. 윤호의 아버지는 임신한 미래에게 “이제 인생은 너의 것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그가 다니는 회사 대표는 미래의 임신 사실을 알고 ‘약속하지 않은 일을 만들었다’며 오히려 화내며 계약을 해지한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이 모든 부정의와 혼돈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한다면 누가 엄마 되기를 선택할까?
그러나 미래는 혼돈의 임신 기간을 거쳐 결국 엄마 되기를 선택한다. 태어난 아기에게 “이제 우리 둘이 잘해 보자”고 속삭인다. 아빠가 없어도 미래와 아기가 세상에서 잘해 나갈 수 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미래의 선택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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