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원의 성과 인권]
주야간 보호 시설 1개월 체험기
어르신들은 적절하게 돌봄 받고 있나
또 돌봄 노동에 대한 대우는 적절한가
저임금·비전문·불안전 노동 속에 존재

나는 최근 1개월 남짓 주야간 보호 시설에서 어르신들과 생활할 기회가 있었다. 평균 연령 85세인 25명의 어르신 대부분이 치매였고, 파킨슨병과 루게릭병 병증이 있는 분도 있었다. 질병을 겪으며 산다는 것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통제할 수 없으며, 그래서 더없이 불안정해 보였다.

초고령화 시대의 ‘노인’의 삶은 어때야 하는 것일까? 나도 늙어가기에 ‘늙음’을 죄악시하지 않는다. 돌보는 사람도, 돌봄을 받는 사람도 좋은 돌봄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에 닥쳐올 노년기가 공포로 느껴지지 않기 위해 더 많이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이 깊어지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 대한 돌봄이 필요하다. 오늘 하루, 건강한 노년을 맞기 위해 첫 번째 할 일은 나와 내 곁을 돌보는 일부터가 아닐까.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모두 서로에 대한 돌봄이 필요하다. 오늘 하루, 건강한 노년을 맞기 위해 첫 번째 할 일은 나와 내 곁을 돌보는 일부터가 아닐까. /게티이미지뱅크

74세인 김OO 어르신은 아침마다 활기차게 데이케어센터로 들어오신다. 치매 환자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건강한 신체와 외모를 갖고 계시다. 김 어르신은 자기 생각에 대한 명확한 의사 표현과 감정을 전달하신다. 아침마다 수영장에서 곧바로 센터로 오신다고 하셨다.

이런 분에게 왜 치매라는 진단이 나왔지?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센터에 도착해 실내화를 갈아신으면서 벗었던 신발을 다시 신는다. “앗! 어르신 그 신발이 아니고 실내화를 신으셔야지요?” 그때마다 “내가 이래” 하며 어이없는 자기 행동을 발견하고 슬픈 표정을 지으신다.

83세인 백OO 어르신은 파킨슨병을 앓고 계시고, 점점 인지 능력도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상태다. 가락동 시장에서 과일 도매상을 크게 해 돈을 무척 많이 버셔서 자식들에게 많은 재산을 나눠주셨다고 한다. 늘 휠체어에 앉아 계시는데 혼자서는 휠체어를 움직일 수도 없다. 뭐라 말을 내뱉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아 좀처럼 알아들을 수도 없다. 이렇게 벌써 6년 넘게 투병하고 계신다.

어느 날 센터 노인 중 4명이 코로나19 양성반응이 나왔다. 바로 옆에 앉아 계시던 어르신이 양성이어서 백OO 어르신도 감염되신 듯했다. 센터 관리자들은 마땅한 분리 공간이 없어서인지 백OO 어르신을 곧바로 현관문 앞으로 떨어뜨려 놓았다.

한 시간이 넘게 어르신이 탄 휠체어는 문 앞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어르신에게 그가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급기야 어르신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다. 어르신이 겪는 이 상실감은 미루어 짐작하건대 매일 겪어내도 참으로 아프고 수치스러운 경험인 듯하다.

86세인 김OO 어르신은 늘 화가 나 있다. 분노가 차올라 나에게 누가 걸리기만 해봐라는 태도다. 이런 날은 정말 조심해서 응대해야 한다. 어르신이 묻는 똑같은 질문에 친절하게 답하지 않으면 센터는 시끄러워진다. 심지어 사회복지사를 때리기도 하셨다.

어르신이 항상 묻는 말은 ‘내가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누가 나를 데리러 오는가이다. 그러면 거기 있는 모든 선생님이나 요양보호사는 “토요일 오후 2시에 둘째 딸 OOO가 데리러 온대요”라고 큰 목소리로 답해 줘야 한다. 이 하얀 거짓말은 하루에 300회 이상 반복된다.

어르신에게는 딸이 한 명 있는데, 교수라고 했다. 그가 말하길 어머니가 낮에는 데이케어에 계시지만 밤에는 돌봄이 필요해 또 돌봄 노동자를 고용해야 하니 한 달에 어머니만을 위해 쓰는 돈이 500만원이라고 한다. 벌써 5년째 어머니에게 그만큼의 돈이 들어간다고 나에게 하소연했다.

이렇듯 각자 사연을 갖고 센터를 이용하시는 24명의 노인은 오랫동안 이제 다시 어린이가 돼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아픈 몸의 위치에 놓여 있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취약함으로 현재 겪는 병의 증상도 제각각이었다. 다른 상황의 문제를 겪고 있고, 다른 이해와 다른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현재 주간보호센터의 현실은 획일적이고 빡빡한 프로그램의 무한 반복이다. 한 어르신은 하기 싫은 미술공예를 계속해야 하고, 한 어르신은 매일 트로트를 듣고 불러야 하는 상황이다. 이 교육 프로그램은 과연 어르신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일지 의문이다.

돌봄을 고귀한 것으로 숭배하지만 동시에 저임금, 비전문, 불안전 노동의 낙인 속에 존재하게 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돌봄을 고귀한 것으로 숭배하지만 동시에 저임금, 비전문, 불안전 노동의 낙인 속에 존재하게 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돌봄을 받는 자들의 상황이 이렇다면 돌보는 자들은 어떤가? 모두가 돌봄은 가족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돌봄이 공적 제도로 들어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공적 제도로 들어온 돌봄 노동에 대한 대우도 가치에 맞는 적합한 대우가 따라야 할 것이다. 돌봄이 탈 가정화하는 목적 달성을 위해 가정의 완전 무급 돌봄에서 약간의 유급 노동 형태로 경력 단절, 혹은 중노년 여성들에게 싼값으로 돌봄 노동이 유통되고 있으니 말이다. 돌봄을 고귀한 것으로 숭배하지만 동시에 저임금, 비전문, 불안전 노동의 낙인 속에 존재하게 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의 정당한 임금 체계를 재평가하고 존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돌봄의 가치에는 분명 임금으로 평가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그것은 임금의 많고 적음을 넘어서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좋은 돌봄은 돌봄을 받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여다보고자 하는 원의가 동반돼야 한다.

나는 한 달 남짓 현장에서 만나는 돌봄에서 섬뜩함을 느낀 순간이 적지 않았다. 돌봄 노동자의 돌봄 기술이나 전문성 교육이 지속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돌보는 자들을 제대로 대우하게 될 때 위에 나열한 다양한 돌봄을 필요로 하는 어르신의 헐벗은 삶에 옷을 제대로 입힐 수 있을 것이다.

하루에 수백 번 딸을 찾는 어르신의 불안 원인은 무엇일까? 평생 채워지지 않고 쌓아둔 사랑과 관심에 대한 결핍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서로에 대한 돌봄이 필요하다. 오늘 하루, 건강한 노년을 맞기 위해 첫 번째 할 일은 나와 내 곁을 돌보는 일부터가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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