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원의 성과 인권]
아동학대 발생 전 단계인
무시, 비난, 조롱, 차별 등
부주의한 지도도 아동학대
'Near Miss'를 경계하자

닫힌 공간에서 물리적으로 약한 아동은 약자입니다. 16개월 정인이, 열한 살 아동이 쇠사슬에 묶이고 지붕으로 탈출했던 사건, 아홉 살 아이를 여행 가방에 넣고 벌을 세운 사건⋯ 그때마다 우리는 분노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끔찍한 아동학대는 멈추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해마다 40명 안팎의 아동이 하늘에 가서야 비로소 안전하게 되는데, 이는 통계 속 학대 사망의 숫자이고 실제로는 4배나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소리 높여 말하고 인지함에도 왜 끊이지 않는 걸까요?
아동학대라 함은 뉴스에서나 봄직한 위에서 말한 끔직한 학대만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동학대의 시작은 무시와 비난과 조롱과 협박, 거친 접촉에서 시작됩니다. 약한 존재인 아동을 쉽게 제압하는 방식의 이런 태도는 조금씩 커지면서 더 큰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호의 글은 아동학대의 작은 씨앗인 부적 요소가 무엇인지를 점검해 보고, 아동학대 사건 후의 대처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차, 사고 날 뻔했다!
# 저희 집은 엄격한 편이라 잘못한 일이 있을 때 회초리로 엄하게 다스리는 편이었습니다. 어려서는 아버지가 그렇게 원망스러웠는데 저도 부모가 돼 보니 왜 그렇게 때리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그때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신 부모님 덕분에 제가 이렇게 잘 자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강하게 키우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도 부모님이 회초리를 드셨지만 지금 이렇게 잘 살잖아요?”
“심하게 때리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도 안 되나요?”
# 너무 화가 난 저는 아이의 뺨을 세게 내리쳤습니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책상 위의 30cm 자로 아이 손바닥을 또 다섯 대 때렸습니다. 얼마나 세게 내리쳤는지 플라스틱 자가 부러져 두 동강이 나버렸습니다. “다시 한번 남의 물건에 손댔다가는 손모가지를 잘라버릴 거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저는 계속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준상이는 “다시는 절대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을게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라며 싹싹 빌었습니다. 한바탕 전쟁 같은 시간이 흐른 후 각자 방으로 들어갔어요. 흥분이 조금 가라앉으니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 이게 아닌데··· 내가 지금 애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렇게 심한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순간 감정이 폭발해 체벌하고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준상이가 더 이상 남의 물건에 손대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도록 따끔하게 버릇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제 분을 못 이겨 때리고, 세상 끝난 것 같은 절망의 말을 쏟아부었던 겁니다. 무서운 위협은 이미 아이의 마음에 큰 상처가 됐고, 주워 담을 수도 없게 됐습니다. 저는 부모로서도, 교사로서도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례 출처: <존중받지 못하는 아이들> 손민원 공저
위의 사례들은 부모님과의 교육에서 자주 등장하는 질문 내용입니다. 위 사례는 ‘사랑의 매는 아이를 잘 성장시키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고, 아래 사례는 감정에 치우쳐 험한 말을 내뱉고 수습이 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아이가 잘못해 훈육 차원에서 때린 것이지 학대한 것이 아니다”는 말은 그동안 체벌에 관대했던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인이 성인을 때리면 폭력으로 인식하고 신고하지만, 성인이 아동을 때리면 “맞을 짓 했나 보네” “오죽하면~”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라는 말로 아동에 대한 체벌을 정당화하곤 합니다. 세상에 맞을 만한 아이는 없습니다. 또 ‘맞을 짓’이라는 것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요? 성인이 잘못하면 아동이 때려도 되는 걸까요? 왜 우리는 아동을 때려도 된다는 인식을 하는 걸까요?
체벌은 아동으로 하여금 “너는 맞아도 되는 존재야. 너는 소중하지 않은 존재야. 시키는 대로 하고 생각하지 마라. 성장하지 말라”라는 무서운 인식을 심어주게 됩니다. 1958년 제정 이후,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던 민법 915조 징계권 조항이 2021년 1월 8일 삭제됐습니다. 이에 따라 ‘아동 폭력 근절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Global Partnership to End Violence against Children)’이 아동에 대한 체벌을 금지한 62번째 나라로 대한민국을 발표했습니다(2021년 3월 26일 세이브더칠드런 발표).
‘Near Miss’란 사격이나 포격 등에서 표적에 가까운 착탄(着彈)을 뜻하는 군사용어로, 폭격이나 사격에서 명중하진 않았지만 그에 상응한 피해를 줄 수 있을 만큼 표적에 가깝게 탄환이 떨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나아가 ‘Near Miss’는 안전관리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근로자의 부주의나 현장 설비 결함 등으로 사고가 발생할 뻔했으나 직접적으로 인적·물적 피해 등이 발생하지 않은 ‘아차 사고’를 말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생산라인에 있는 근로자가 박스를 들고 현장을 걸어가다가 바닥이 패어 있어 넘어질 뻔했다고 생각해 본다면 이 근로자는 위험 요소를 신고하고 위험 요소를 제거해 더 이상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자발적 안전 보고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동에게 안전한 세상을 위해서는 아동 안전을 위한 ‘Near Miss’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동학대 발생 이전 단계의 행위들을 ‘부주의한 지도’라 정의하며 사후 대응이 아니라 사전 예방이 필요합니다. 가정 또는 시설이나 학교에서 발생하는 부주의한 지도를 아동학대의 ‘Near Miss’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부주의한 지도가 무엇일까요? 무시, 비난, 조롱, 차별 등 부정적 지도의 요소들을 ‘부주의한 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안에 따라서는 이 부주의한 지도도 아동학대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자기 경계가 와해된 습관적 비난, 무시 조롱, 차별적 언행은 심각한 아동학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훨씬 커지겠지요.
“손으로 음식 먹는 것 아니야. 포크로 먹어야지!” “빨리 자야지. 저기 경찰 아저씨에게 ○○이 잡아가세요~ 해야겠다.” “너, 나이가 몇 살인데!” “너 계속 이렇게 하면 외출 금지야!” ⋯
이런 부적 요소들이 난무한다는 것은 자기 경계가 무너진 것이고, 사안에 따라서는 아동학대로 판단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아동을 만나는 양육자로서 자기 경계를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사람을 대할 때 어리다고 해서,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부적 요소를 남발하고 있다면 자기 경계가 무너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적 요소가 아닌 아래와 같은 존중의 언어를 채우면 어떨까요? “조금 기다려 줄게.” “너의 생각을 말해 봐, 들어보고 싶어.” “선생님(나)의 생각은 ~~~인데, 너의 생각은 어때?” “네가 말한 것은 ~~~이유로 힘든 상황이니 대신 ~~~은 어때?”
부적 요소 대신 이런 존중의 언어로 채워 넣어야 할 것입니다. 일상에서 아동을 존중하는 태도는 상호존중의 시작이니까요. 아동을 만나는 가정과 보육시설, 학교에서 부모와 교사가 ‘Near Miss’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하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학대, 그다음은?
아이들의 죽음은 힘겹지만 그 죽음들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 안에서 더 이상 비극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10월, 마음 아픈 ‘정인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아동학대에 대한 심각성을 더 명확하게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그 사건의 대책 중 하나로 2021년 아동학대 ‘즉각 분리 제도’가 시행됐습니다. 기존 아동학대처벌법의 응급조치는 보호기간이 72시간으로 짧고, 학대가 잘 확인되지 않으면 보호자로부터 분리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어 가정으로 돌아간 아동이 더욱 심각한 학대 피해를 당한다는 문제 제기가 있어 왔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아동복지법을 개정(2021.3.30.)해, ‘즉각 분리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즉각 분리는 1년에 2회 이상 학대 신고된 아동의 경우 재학대의 우려가 있으므로 지자체의 보호조치 결정이 있을 때까지 아동을 곧바로 분리해 일시 보호하는 제도입니다. 아동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아동을 가정에서 분리해야 하는 상황들은 반드시 필요한 제도일 것입니다. 아동 스스로는 악마의 굴레에서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분리’돼야 하는 상황을 판단하는 것은 아동에게는 정말 중요한 결정이 될 것입니다. 아동학대 처분에 있어 피해 아동에 대한 원가정 보호 혹은 즉시 분리 보호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것은 아동의 건강과 보호받을 권리를 최상으로 실현할 조건이며, 아동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입니다.
아동은 어른만큼 자신의 상황을 드러내 도움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맞고 있더라도 자기 부모로부터 사랑을 갈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록 나를 자주 때리기는 하지만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또한 갖고 있지요. 아동이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 싶어요’라는 말은 ‘엄마와 아빠와 함께 안전하게 살고 싶어요’라는 욕구가 담겨 있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동의 심리적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2회 이상 신고된 사안은 무조건 분리한다고 할 때 또 다른 문제점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어린 아동이 분리돼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지내야 하는 것 또한 아동학대가 되지 않을까요? 단순한 기계적 분리가 아동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고려되지 않은 제도라 생각됩니다.
즉, 즉각 분리 여부의 적격성을 파악할 세부 지침과 실무 관련자의 전문성이 같이 선행돼야 이 제도의 실효성은 담보될 것입니다. 만약 아동이 즉각 분리됐다면 어디에, 어떻게 격리시킬 것인가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아동의 특성에 맞는 보호시설이 필요할 텐데, 지금 한국에서는 나이, 연령, 성별, 정서적 안정, 장애 유무 등을 고려해 아동을 분리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 그렇게 잘 갖춰지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피해 아동을 분리하고, 분리 후 다시 원가정으로 돌아가 안전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과정은 아동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준비돼야 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동학대 가해 부모는 가해 행위자이기도 하지만 자녀를 위해 꼭 변화돼야 할 교육 대상자이기도 합니다. 행위 부모에 대한 교육, 최소한의 심리 치료, 원가정 복귀 후 아이가 안전한지 관리감독, 이 모든 것이 같이 이뤄질 때 아동이 원가정에서 안전한 보호 속에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은 40여 년 전부터 ‘아동 사망 검토 제도’를 만들어 18세 이하 아동 사망(학대, 안전사고, 자살 등)에 대한 사례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각 전문가가 아이의 전 생애에 어떤 일이 일어났고, 위험 요인을 파악해 어떻게 학대 피해를 막을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유사 사고를 막는 수많은 대책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이 제도로 인해 수천 명의 아동 사망을 예방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국회입법조사처가 ‘아동 사망 검토 제도’ 법안 도입을 국회에 발의했지만 의결되거나 진전이 없는 상황입니다. 아동 사망을 멈추기 위해서는 시민의 아동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정부의 정책적 제도 마련 또한 아동학대 근절의 중요한 시작점이라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