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원의 성과 인권]
영화 '4등' 통해 본 선수의 인권문제
1등만 원하는 부모, 코치 체벌 용인
선수는 견디다 못해 대회 포기 선언
혼자 운동 즐기다 출전했더니 우승
이번에 나누고 싶은 인권 영화는 ‘4등’입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정지우 감독이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하여 2016년 4월 13일 개봉한 영화입니다.
수영코치로 등장하는 광수는 수영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입니다. 큰 대회가 코앞이니 연습에 매진해야 하지만 해만 지면 선수촌 담을 넘어 포장마차로 달려가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채운 뒤 주량도 모른 채 마십니다. 그런데도 다음 날 기록을 재면 전날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기도 하는, 수영에 천부적 소질을 지닌 사람입니다.
누구도 대적할 사람이 없으니 광수는 선수촌의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기만 합니다. 86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선수들이 모두 훈련에 돌입했음에도 광수는 노름판에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광수의 코치는 그를 심하게 체벌하고 그 체벌 사건이 있은 후 선수촌을 나와 버립니다.
수영에 재능을 지녔다지만 매번 대회만 나가면 4등을 하는 준호를 위해 그의 엄마는 새로운 코치 광수를 만납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1등은 물론 대학까지 장담하는 광수는 준호 엄마의 수영장 출입을 금했지만 정작 수영 코치는 하지 않고 매일 술만 마십니다.
영화에는 폭력의 대물림 속성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준호의 수영 코치가 된 광수는 준호를 때리며, 체벌을 어떤 대단한 가르침으로 이해시킵니다. “내가 잘 나갈 때도 감독 선생님들이 오냐오냐하지 않고 나를 때려서라도 더 잡아줬다면 내가 이렇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거야.”
자신이 지도자의 폭력으로 고통을 받았던 과거를 다 잊고 더 맞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이상한 괴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많은 체벌은 지금도 이렇게 이해됩니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따끔한 회초리가 지금의 이런 자랑스러운 나를 만들어 놨다고⋯.’ 당치도 않은 말입니다. 따끔한 회초리가 아닌 지지와 격려는 사람의 마음을 더 건강하고 훌륭하게 키웁니다.

국위를 선양해 줄 천재적 수영선수인 광수에게 미래의 메달 유망주로서 극진히 대접한 엘리트 만능주의는 광수를 대책 없이 안하무인이고 불성실하며 꼴통인 기이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어찌 보면 엘리트 만능주의가 만들어 낸 또 다른 피해자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직접 때리는 광수만이 준호에게 가해자일까요? 아닙니다. 너무나 많은 동조자와 방관자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1등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엄마는 준호가 4등의 성적을 낼 때마다 “4등? 너 때문에 죽겠다! 너 정말 왜 이래? 꾸리꾸리하게 살려고 그래?”라고 한다.
“난 네가 맞아서라도 1등만 하면 좋겠어.” 준호 엄마는 아이의 1등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고 합니다. 준호는 엄마의 욕망을 채워 줄 대리인이 됐습니다. 그리고 준호가 수영을 포기한다고 하자 엄마의 욕망은 준호의 동생 기호에게로 옮겨갑니다.
맞으면서 운동하던 준호는 대회에 나가 1등이 아닌 아슬아슬한 2등을 합니다. 2등을 했기 때문에 또 맞습니다. 동생 기호는 정말 궁금합니다. “형, 형은 정말 맞아서 2등 한 거야? 그전에는 맞지 않아서 만날 4등 했던 거야?”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맞았기 때문에 ‘성적이 올라갔다’며 폭력을 사실로 인정하는 순간 준호, 기호 또한 다시 체벌 옹호자로 성장할 것입니다.
동생의 제보로 엄마는 준호가 맞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준호의 몸에 있는 짙은 멍을 확인하고도 체벌을 눈감는 엄마의 장면은 1등만을 인정하고 2등, 3등, 4~99등의 노력은 아무것도 안 한 것이 돼버리는 안타까운 사회의 현실이 느껴져 너무 가슴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아이의 1등을 인생 최대 목표로 삼는 엄마만이 나쁜 사람인가요?

방관자는 또 있습니다. 코치에 의한 아들의 체벌 소식을 들은 아빠는 “감독이 선수를 때려?” 한순간 분노하지만 또다시 눈을 감고 맙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1등만 하면 된다”는 이 경쟁주의가 정작 가장 가까이에서 준호를 보호해야 할 부모마저 준호를 아동학대 상황에 밀어 넣고 있습니다. 구타보다 더 섬뜩한 방임입니다. 준호가 맞고 있는 상황에서 그 누구도 준호를 건져내지 않고 있습니다.
대회만 나가면 4등을 하는 만년 4등 준호. 학교가 끝나면 행복한 마음으로 수영장으로 달려가는 평범한 소년입니다. 준호는 그저 수영을 좋아하는 아이이지 4등은 별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구타를 견디지 못한 준호는 수영을 그만두겠다고 선포합니다. 수영장을 가지 않게 되자 준호는 수영장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그립습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그는 혼자 몰래 수영장으로 갑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레일이 없는 곳에서 준호는 자유롭게 넓은 그곳의 물과 빛 에너지를 느끼면서 수영하며 행복해합니다.
준호는 엄마의 강요나 광수의 코칭도 더는 필요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뒤 대회에 출전합니다. 광수는 준호에게 이 수경을 쓰고 메달을 많이 땄다면서 자신의 수경을 건네줍니다. 대회 당일 준호는 책상 위에 있는 광수의 수경과 자신이 쓰는 수경을 바라봅니다. 행운의 부적이라 생각했던 광수의 수경 대신 자신의 수경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1등을 하지요. 코치 광수의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수영을 해보겠다는 준호의 다짐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준호는 자신이 맞아서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준호가 1등을 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토록 하고 싶은 수영을 쭉 하려면 엄마가 원하는 1등을 해야 계속 수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태껏 1등을 한 아이보다 4등을 한 아이를 더 많이 칭찬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나도 4등에 대한 격려보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1등을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에 대한 말을 더 자주 했던 것 같습니다.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의 아이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 사회는 모든 것에 등수를 부여합니다. 청소년은 교육의 대상이고 교육은 곧 입시라는 명제 앞에 교육의 본질은 접은 채 끝없는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1등을 하지 못하면 노력하지 않은 것이고 경쟁에서 실패한 것이 되며 조롱, 멸시, 모멸감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준호의 엄마는 더 큰 돈을 마련해 사교육 코치를 영입합니다. 내 자식이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옆집의 누구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있기에 자녀의 폭력까지도 눈을 감습니다. 1등을 하는 것이 너무 중요한 세상에선 4등을 해도 훌륭하다는 것, 그리고 과정의 노력과 참여를 통해 얻어낸 가치에 대해선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자신감은 점점 떨어지겠지요.

영화 속에서는 수영하는 준호가 등장하지만 사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아이는 준호의 모습과 비슷한 처지에 있지 않을까요? 비록 신체적 폭력에는 노출돼 있지 않더라도 끝없는 경쟁 앞에 놓인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의 50.6%는 ‘학업 성적으로 인한 차별을 경험’ 3.5%는 '학업 성적에 따르는 차별을 거의 매일 경험'한다고 합니다. -2019 아동인권 당사자 모니터링 사업 결과 보고서(국가인권위원회, 국제아동인권센터)
“경쟁이 없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누가 노력을 하겠어! 모두가 베짱이처럼 게을러 질 거야”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1등만을 인정하는 과열 경쟁에서는 우리가 모두 불안합니다. 1등은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까 봐 두렵고 나머지 사람은 정상으로 가야 한다는 불안감이 있고 혹은 포기한 사람은 희망이 없어서 두렵고⋯ 모두가 행복할 수 없는 조건이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준호는 수영대회에서 1등을 합니다. 1등을 한 준호 그리고 2등, 3등, 4등을 한 준호 친구들 모두가 등수로 인해 고통받지 않고 수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영화 속에서 누구의 인권이 어떻게 침해됐나요?
-준호의 엄마는 왜 그렇게 1등을 요구할까요?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은 과연 진실일까요?
-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아동 최상의 이익 원칙에 의거해 준호가 행복하게 수영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싶다면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준호에게 편지를 써 주세요.
-모두가 1등, 2등, 3등, 4등⋯으로 줄을 세우는 사회는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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