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원의 성과 인권]
왜 나는 늘 상대에게 사과할까?
왜 늘 상대에게 변명을 늘어놓지?
일방적·강압적 관계 벗어날 방법은
주변인의 알아차림과 지지가 중요

1948년 잉그리드 버그먼과 샤를르 보와이에가 주연한 흑백 스릴러 영화 <가스등>은 70년 전의 작품이지만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영화다. 남편은 여자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한다. 남편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불의 조도를 점점 낮게 만든다. 그 집의 가스등은 남편이 외출한 후엔 흐릿해지며, 그 집의 다락방에선 발소리가 난다.
“두려워요. 저녁이 되면 불이 흐릿해져요. 그리고 가끔 발자국 소리가 들려요.” 남편은 그때마다 “당신이 너무 예민해서 그래. 당신의 착각이야. 그저 상상일 뿐이야!”라고 말한다.
남편은 상속받은 아내 폴라의 유산을 갈취하고자 의도적으로 주변 상황을 조작하고, “네가 문제야”라고 대응한다. 아내는 처음엔 아니라고 우겨보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된다. 하루는 부부가 외출 준비에 분주할 때 남편은 어머니의 유물이라며 브로치를 선물한다. 소중한 선물을 잘 간직하고 외출했는데 브로치는 온데간데없다. 남편의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미안함과 원망에 아내는 남편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른다(남편이 의도적으로 브로치를 숨긴 것을 모른 채···).
이런 사건들이 반복될수록 아내는 신경쇠약증에 걸리고, 점점 자신이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자존감은 낮아지고 남편의 정신적 덫에 갇히게 된다. 이 상황들은 영화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 남자는 사랑이란 가면 뒤에서 끔찍한 정서적인 강압적 지배를 하고 있다.
심리치료사 로빈스턴은 이 영화 제목을 인용해 ‘Gaslight Effect’라는 심리 용어를 등장시켰다. ‘가스라이팅’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상대의 행동을 통제하고 조종해 스스로를 의심하고 가해자에게 의존하게 되는 일종의 심리적 학대라고 할 수 있는데, 정서적 지배 상황에선 자신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나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인간은 수많은 관계의 끈을 갖고 살아간다. 가스라이팅은 수많은 관계 안에서 발생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수직적 관계에선 권력이 형성돼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권력에 위협을 느끼도록 만들기도 하고, 혹은 상대를 쉽게 조종하고 싶은 욕구로 가스라이팅을 한다.

“다 너를 생각해 하는 말인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은 안 만나는 게 좋아”, “너 왜 사과 안 해?” “이게 그렇게 화낼 일이야?” 등 가스라이팅은 내 의견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모두 가스라이팅을 당하기도 하고 또 하기도 한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될 것이다.
그런데 조언이나 관심의 말을 넘어 이런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말들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면 가스라이팅을 의심할 수 있다. ‘어? 내가 틀렸나? 혹시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은 잘못된 것인가?’ ‘나 자신에 대해 의심하게 만드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로 인해 상대가 이득을 취하려 한다면?’ 나도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은 항상 상대방의 방식대로 일이 진행된다? 왜 나는 늘 상대에게 사과할까? 왜 늘 그 상대 앞에서 변명을 늘어놓지? 상대방을 만날 때는 숨기는 것이 많아지고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나를 점검하게 되지?”···
이렇듯 가까운 부부관계, 부모와 자식, 친구나 연인 관계 등 친밀한 관계에서 가스라이팅은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관계는 수평적이기보다 비대칭적 권력으로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하려 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많은 경우 가해자 자신도 스스로가 가스라이팅을 한다고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혹시 가스라이팅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나?’라고 생각될 때 할 수 있는 첫 번째 대응은 “No”라고 자신의 의견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내 생각이 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친밀한 관계에서 경계를 짓는 것이다.
권력적 관계 안에서 반복적 질타의 대상이 된 피해자는 스스로를 비합리적이고 무능하다고 인식하게 되면서 ‘과연 내 말이 맞는가?’ 하고 자기 스스로를 의심한다. 그다음 단계에선 저항의 의지마저 잃게 된다. 결국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의 의지에 순종하는 수동적인 사람이 돼 가는 것이다.

과거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사연을 들을 때 “아니 왜 맞고 살아? 그 지긋지긋한 곳에서 왜 나오지 못하는데?”라며 가정폭력 피해자를 비난했다. 그러나 많은 가정폭력 피해자의 내면엔 이런 강압적 지배와 함께 대부분의 경우 물리적인 폭력에 의한 무기력증이 발목을 잡고 있다.
폭력적인 배우자나 애인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진 심리는 구원 환상(Rescue Fantasy)의 심리가 작동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억압하는 상대에게 자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자랑스럽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떠나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될까?’ ‘나라도 이 사람을 어떻게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착각 속에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한국의 정서적 가정폭력이 처벌로까지 이어지진 않는다. 특히 가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가스라이팅은 일일이 드러내지 못하는 사소한 가정사로 치부된다. 매 맞는 아내가 가정폭력이라고 신고했을 때도 이를 형사사건으로 처리하지 않고 계도와 상담 조건부 기소유예로 용서받는 경우가 훨씬 많은 상황이다.
이미 강압적 폭력에 놓인 약자는 세상에 맞설 용기를 이미 잃었고, 경제력이 없는 상황이라면 더욱 폭력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비대칭 관계에서 나올 방법은 주변인의 알아차림과 지지일 것이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지지해 줄 수 있는 이웃과 친구 등이다. 생각해 보자. 나는 친밀한 관계의 상대와 수평적인 관계 맺기를 잘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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