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원의 성과 인권]
몸이 스펙이 되는 사회는 문제
행복한 삶을 위한 건강한 몸과
건강한 노동을 위한 몸이 중요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 엄마 곰, 아빠 곰, 애기 곰. 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 애기 곰은 아이 귀여워. 으쓱으쓱 재미있다.”
"엄마 상어 뚜루뚜루, 어여쁜 뚜루뚜루. 아빠 상어 뚜루뚜루, 힘이 센 뚜루뚜루. 할머니 상어 뚜루뚜루, 자상한 뚜루뚜루. 할아버지 상어 뚜루뚜루, 멋있는 뚜루뚜루."
남성이나 여성이나 멋지고 아름다움을 위해 끊임없이 욕망하는 사회다. 어릴 적 듣는 노래로부터 시작해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 TV를 틀면 나오는 강렬한 광고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생각의 틀을 만들었다. ‘이런 얼굴과 이 정도의 몸은 돼야지’라고.

건강한 노동을 위한, 행복한 삶을 위한 건강한 몸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의해 어떻게 보이는가가 가장 중요한 몸의 가치다. ‘보이는 몸’은 나의 자본이 된다. 몸이 스펙이 되고 외모에 등수를 매기는 사회이기에 사람들은 몸을 관리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투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남에게 보이는 몸과 얼굴을 만들기 위해 먹은 만큼 뛰고, 음식을 조절하고, 굶기도 하면서 고통을 감내한다. 사람들은 외형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많은 경우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관리를 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 돼버린다. 그리고 취업의 문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기도 한다.
이런저런 노력으로, 사람들은 후천적으로 어느 정도 달성 가능한 외모 가꾸기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자 기꺼이 돈을 지출한다. 끝없이 즐비한 성형외과, 피부과, 다이어트 시장은 식을 줄 모르는 레드 오션이다.
예부터 사람들은 남보다 더 멋져 보이고 싶어 정말 엄청난 노력을 해 왔다. 그런데 그 기준은 그때마다 달랐다. 신데렐라는 왕자님을 만나기 위해 요정이 만들어 준 멋진 드레스와 유리구두를 신고 파티에 참석했다가 자정이 되자 구두 한 켤레를 남긴 채 사라진다. 남겨진 구두는 어느 누구도 신을 수 없는 아주 작은 유리구두였다.
언니들은 그 구두에 발을 넣어보려고 하지만 발등조차 들어가지 않는다. 신데렐라는 세상 누구보다도 작고 예쁜 발을 가진 미인이었던 것이다. 송나라 때의 전족 또한 작은 발의 여성을 최고의 미인으로 꼽았던 그 시절의 관습이다. 다섯 살부터 발을 동여매면서 작은 발을 만들기 위해 뼈가 깎이는 괴로움을 견디며 사회가 요구하는 미인상에 맞추기 위해 고통을 감수했다.

외모에 대한 강박을 지고 사는 것은 비단 여성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떡 벌어진 어깨의 여심 저격 상남자’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이런 문장은 너무 자주 등장하는 자막이다. 넓은 어깨에 단단한 식스팩을 가져야만 진짜 남자인 것인 양 앞다퉈 몸을 만드는 일에 투자하는 연예인을 보여주고 있다. 몸과 얼굴을 만들어 가는 것조차 어느 정도의 시간과 돈의 투자가 따라야 만들어 낼 수 있는 결과물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미에 대한 기준이 많다는 것은 자유롭지 않고 억압이 점점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가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개성이고 다양함으로 읽혀진다면, 마르고 날씬한 모습보다 건강한 모습을 칭송하는 사람이 많다면, 미디어에서 그런 외모들이 더 많이 등장한다면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사랑하면서 더 많이 행복감을 느끼지 않을까?
미래는 이 세계의 질서를 다시 볼 것을 요구한다. 여성을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서 말이다. 인간의 자유 영역을 넓히는 일은 너무나 멋진 일이다.
케이트 밀렛 (1970) <성 정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