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카페에 모여 남편 뒷담화하는 젊은 주부들 보니
호주 사는 아들집 갔을 때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우리들이건 젊은 주부건 수다의 소재는 똑같아

 마음의 평화를 주기도 하는 달달한  차 한 잔의 여유 /게티이미지뱅크
 마음의 평화를 주기도 하는 달달한  차 한 잔의 여유 /게티이미지뱅크

약속이 있어 카페를 가니 젊은 주부들이 어찌나 많은지 빈자리가 없다. 겨우 한 자리 구해 앉아 있으려니 옆에서 하는 대화가 너무 또렷이 들린다. 주부들인 만큼 각자가 거느리고 있는 가족들의 뒷담화다.

수다 중 핫한 화제는 ‘남편은 왜 혼자서는 아무것도 안 하려 하나? 철부지 아이로 변해가는 남편’ 뭐 그런 주제다. 나이 들수록 씩씩해지는 그녀들의 대화를 엿듣다 보니 그냥 내 아들이 도마에 올라앉은 듯해 겸연쩍었다. 그나마 남편들 뒷담화는 미운 자식 자랑하듯 좋게 끝맺음을 해준다. 다행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호주 사는 아들네 갔을 때 일어난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큰집으로 이사를 했으니 꼭 한번 다녀가라며 초대장을 보내왔다. 타국에서 열심히 일해 차고가 두 개나 있는 넓은 집을 마련했으니 아들 혼자 이룬 성공같이 대견했다.

여기저기 집 안팎을 돌며 구경시켰다. 아이들도 기차놀이를 하며 장난감을 자랑했다. 온 방을 구불구불하게 만들어 놓은 기찻길 위에서 기차는 스위치만 누르면 레일 위를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달렸다. 그들의 인생길도 기차같이 순조롭게 달려가기를 기원하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아들의 가오에 내 어깨에도 시어머니라는 허세가 들어갔다.

수다는 마음속에 숨어있는 인내라는 잡동사니를 끄집어내어 마음을 청소해 주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수다는 마음속에 숨어있는 인내라는 잡동사니를 끄집어내어 마음을 청소해 주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날 밤, 각자 방으로 들어가고 아이들 코 고는 소리가 은은히 들렸다. 나는 낯선 곳이라 그런지 늦은 밤까지 잠이 안 왔다.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는데 조용한 적막을 뚫고 무언가가 투둑, 사브작거리는 소리가 연속으로 조용히 들렸다.

순간, 가슴이 쾅쾅 뛰고 숨이 막혔다. 도둑이 들어 온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어두운 방에서 더듬더듬 문을 열고 기어 나오니 며느리도 저쪽에서 방문을 열고 기어 나오는 중이었다. 표정이 하얗게 질려 있는 게 컴컴한 중에도 보이는 듯했다.

심장 소리도 울릴까 봐 두 사람은 숨을 멈추고 살금살금 복도를 지나 소리 나는 곳을 가 보니 아이들 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낮에 놀다가 쌓아놓은 기차 장난감이 떨어지면서 스위치가 켜진 것이다. 기차가 레일을 달리며 가야 하는데 방바닥을 여기저기 부딪치며 나는 소리는 도둑이 캄캄한 방안을 헛딛으며 걷는 소리 같았다. 그제야 형광등을 켜고 며느리와 나는 서로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아니 100키로가 넘는 마당쇠 남편은 어디 있고 네가 도둑을 잡겠다고 나온 거야?”

민망한 내가 물었다.

“그이가 놀라서 이불을 뒤집어쓰더니 날 보고 나가 보래요. 호호.”

“에라이~~ 종이호랑이 같은 놈.”

너무 민망하고 겸연쩍어하는 나에게 며느리가 하는 뒷말이 더 웃음을 주었다.

“어머니, 남편이 그러는데 남자는 적군을 무찌르는 데 앞장서는 거고 적군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은 여자가 하는 거래요. 호호호.”

부인, 아내, 와이프, 마누라, 집사람이란 호칭은 엄마라는 카테고리에 걸린 명사다. 가족이 탄 기차가 탈선해도, 도둑이 들어와 무섭게 위협해도 엄마는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내 가족을 보호할 준비가 되어있는 원더우먼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어도 철부지 같은 남편을 추켜 세워주는 아내가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그날 이후 나는 며느리를 우리 집 서열 1위로 대우하고 있다.

대화가 있는 집단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소통이 빠르다. /게티이미지뱅크
대화가 있는 집단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소통이 빠르다. /게티이미지뱅크

전화한 아들에게 손자들과 며느리의 안부를 물었더니 “엄마 며느님은 친구들이랑 수다 떨러 나가셨답니다”라는 말이 그나마 위안이 되는 날이다. 수다는 인내라는 켜켜이 쌓인 묵은 때를 씻어내는 마음 청소 약이기도 하다.

소곤소곤 들리는 대화 주제가 시어머니로 바뀌었다. ‘헉, 우리가 주인공이닷!’ 우리는 서로 눈짓을 신호로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길 건너 공원 벤치에 앉아 실내에서 나눈 대화를 이어서 했다.

고령인이 된 남편에 대하여, 생존하고 계신 사대천황(최고령 양가 부모님)에 대하여, 아직 집을 안 나가고 버티는 늙은 자식에 대하여···. 일상의 주제가 어쩜 이리 똑같은지, 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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