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의 귀농귀촌 이야기]
귀농 15년차 박용범 대표, 평창 사과 선도
올해부터 팜크닉 시설 마련 치유농업 준비
맨발로 황톳길 걷고 산양삼 피자도 먹고

“평창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다니까 다들 깜짝 놀라더라고요. 그게 10년 전이고 지금은 고랭지 사과라고 더 찾아요.”

10년 전만 해도 평창, 정선과 같은 강원도 산골에서 사과 과수원을 한다고 하면 다들 의아해했다. 사과는 역시 경상북도 안동이나 청송이 주산지라고 생각하니 몹시 추운 고장인 평창은 사과는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대접이 다르다. 아는 사람은 찾아 먹는 강원도 산골 사과가 되었다. 서서히 다가온 기후 변화는 강원도와 경기도 일대에 사과 농장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 

평창 천지애농원 박용범 대표 /사진=김성주
평창 천지애농원 박용범 대표 /사진=김성주

평창으로 귀농한 지 15년. 천지애 농원 박용범 대표는 평창 사과를 선도하고 있다. 평창에서 사과를 하는 곳은 130여 농장이 있는데 박용범 대표가 두루두루 사람들을 살피며 돕고 있다. 덕분에 평창으로 귀농한 이들 중에는 박 대표 덕에 사과 농사를 시작한 이들이 있다.

그는 서울에서 여러 사업을 하다가 우연한 계기에 평창의 산과 계곡에 반하여 평창군 대화면에 베이스캠프를 치게 되었다. 그가 베이스캠프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처음부터 번듯한 집을 짓고 산 것이 아니라 움막 같은 숙소를 짓고 생활하였기에 베이스캠프라 한다. 귀농이나 귀산을 한 사람들은 안다. 처음에 텐트로 시작한 사람들이 꽤 있다. 농막이나 컨테이너에서 시작한 사람들은 양반이다. 제대로 된 밭이나 과수원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 집은 나중에 짓게 된다. 귀농인은 밭이 우선이고 귀촌인은 집이 우선이다. 

천지애농원을 가꾼지 10년만에 아름다운 집을 지었다. /사진=김성주
천지애 농원을 가꾼 지 10년 만에 아름다운 집을 지었다. /사진=김성주

볕이 좋은 산을 구하였으니 산 속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하고 사과 과수원으로 조금씩 일구어 나갔다. 제대로 모양을 갖추는 데 몇 년이 걸렸다. 덕분에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방송에도 나갔다. 그의 외모는 자연인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말쑥한 이미지라 어떻게 그 방송에 나갔냐고 했더니 꼭 원시인처럼 살아야 그 방송에 나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진짜 자연 속에서 자연에 순응하고 살고 있다 보니 섭외가 왔다고 한다. 

필자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쯤이다. 황토방을 짓고 강아지들과 살고 있었다. 그가 내게 도움을 준 일이 있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집으로 갔다. 선물로 양주 한 병을 들고 갔다. 나름 ‘블루’라는 타이틀이 있는 좋은 술이었다. 이걸 꺼내면 정말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에 황토방 마루에 앉아 인사를 하자마자 양주를 꺼냈다. 그런데 웬걸. 푸른 딱지의 양주를 반기기는커녕 그걸 들고 건넌방으로 들어가더니 다른 병을 들고 나온다. 담근 술이다. 산에서 나온 약초로 만들었다. 산에서 오래 생활했더니 양주는 이제 맛이 없다며 약초 술을 건넸다. 생각해 보니 자연인 같았다.

당시에는 그냥 귀농해서 과수원 좀 하나 보다 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만나보니 많이 달라졌다. 적어도 농촌융복합산업에 충실한 농업경영인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천지애농원의 산야초 담근술 콜렉션 /사진=김성주
천지애 농원의 산야초 담근 술 컬렉션 /사진=김성주

박용범 대표가 운영하는 천지애 농원은 사과뿐만 아니라 산채 재배도 제법 한다. 워낙 청정지역이니 과수원 옆 산비탈에 산양삼과 산채들이 잘 자란다. 주 작물인 사과 매출이 겨울에만 일어나기 때문에 일 년 내내 소득을 얻을 방법이 필요해서 산채 농사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과도 원물만 파는 것이 아니라 사과주스를 만들어 연중 판매한다. 주변에 좋은 가공 공장이 있어서 OEM으로 생산한다. 사과와 비트, 당근을 섞어 만든 ABC주스가 인기가 좋다. 

천지애농원이 생산하는 고랭지 청정 평창 명품 사과즙 /사진=김성주
천지애 농원이 생산하는 고랭지 청정 평창 명품 사과즙 /사진=김성주

그리고 올해 준비한 새로운 상품이 있으니 바로 ‘치유농업’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농촌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것을 업그레이드하여 누구든지 와서 편히 쉬고 치유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농장에는 제대로 된 팜크닉을 즐길 수 있도록 대형 텐트와 테이블을 들여놓고 마음껏 고기를 굽고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진=김성주

컨셉은 팜크닉이다. 팜크닉이란 farm(농장)과 picnic(소풍)을 합친 말이다. 농장에서 즐기는 소풍이다. 도시민에게 농장은 좋은 소풍 공간이 된다. 지금 도시 외곽에는 캠프닉 장이 성업 중이다. 많은 직장이 저녁에 술을 마시는 회식보다는 오후에 고기를 구우며 게임을 하며 노는 소풍을 선호한다고 한다. 

얼마 전 필자도 다른 방문객들과 함께 천지애 농원의 팜크닉을 체험해 보았다. 농장에는 제대로 된 팜크닉을 즐길 수 있도록 대형 텐트와 테이블을 들여놓고 마음껏 고기를 굽고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었다. 텐트 안에는 조리도구와 바비큐 시설이 있다. 심지어 전자레인지도 있다.

숲의 건강함을 한껏 느끼라고 황톳길을 만들었다. 맨발로 황토를 밟고 가니 발바닥이 자극되어 기분이 좋아졌다. 황톳길은 덩굴 터널 안에 만들어 놓아서 햇빛 걱정은 없었다. 8월 한여름에도 그늘 속에 있으니 시원했다. 역시 평창은 시원하다. 

맨발로 황톳길을 걷고 나니 족욕을 준비해 주었다.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도록 해 주었다. 족욕 물은 산야초를 우려내었다. 양구 시래기 축제를 가면 시래기 우린 물에 족욕을 하는 체험이 있다. 시래기보다 더 좋은 산야초 물이다. 그리고 허브티를 한 잔 내어 주니 상큼하다. 이것이 치유로구나.

숲의 건강함을 한껏 느끼라고 황톳길을 만들었다. 맨발로 황토를 밟고 가니 발바닥이 자극되어 기분이 좋아졌다. 황톳길은 덩굴 터널 안에 만들어 놓아서 햇빛 걱정은 없었다. /사진=김성주

치유가 여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산양삼이 토핑으로 얹힌 피자가 간식으로 나온다. 체험객들이 함께 만들었던 피자가 이제 오븐에서 구워져 나온 걸 가져온 것이다. 산양삼 피자는 생전 처음 본다. 피자를 한 조각 나누어줘서 평상에 누워 먹었다. 역시 드러누우니 세상 편하다. 옆에는 해먹이 있었다. 해먹으로 옮겨가 누웠다. 해먹은 흔들거리는 맛이 있어서 좋다. 잠이 스르르 온다. 이것이 치유로구나.

계절별로 야생화밭과 산야초밭을 걷고, 사과 농사를 거들며 치유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설명을 해 주었다. 사과가 열릴 때 오면 사과를 따서 갈 수 있다. 마무리 즈음에는 스트레스 지수 측정 시간이 있다. 검지 손가락에 센서를 끼우고 앉았다. 몇분 지나서 측정 결과지를 읽어 보니 스트레스 지수가 정상 범위에 있다. 다행이다. 치유가 되었나 보다. 

치유농업을 준비하는데 평창군 농업기술센터가 많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농업기술센터라는 조직은 농업인들에게 등불 같은 존재다. 박용범 대표는 이미 나이가 칠십이 넘었다. 그런 그에게까지 새로운 기회를 주니 고마울 수밖에 없다. 농촌 지역이 고령화되어 동력이 없다고 하는데 오히려 시니어 농업인들은 기회만 준다면 더욱 열심히 한다. 농촌의 지금 주력 세대는 시니어 세대이다. 그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청년 농이 중요한 만큼 시니어 농민의 노하우와 열정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박용범 대표는 평창으로 귀농귀촌한 사람들과 ‘‘평창사랑’이라는 관광두레 사업체를 함께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구성원들은 모두 50대 후반에서 70대까지의 귀농귀촌인들이다. 6명의 시니어가 모여 평창 관광 활성화를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올가을부터 당일 여행과 1박2일 여행상품을 새롭게 만들어 운영할 예정이다.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들은 평창 천지애 농원에 가 보기를 추천한다. 심심하게 앉아서 먹고 마시고 누워보라. 세상 행복하다. 

평창군 귀농귀촌인이 모여 만든 '평창사랑' 관광두레 사업체 멤버들이 모여 평창군 관광명소를 답사하고 있다. /사진=김성주
평창군 귀농귀촌인이 모여 만든 '평창사랑' 관광두레 사업체 멤버들이 모여 평창군 관광명소를 답사하고 있다. /사진=김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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